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한 달 살아보기
#1. 알파마Alfama 언덕 꼭대기 동네 - 고래군
목요일인 오늘 그녀와 나는 해가 서쪽으로 한참 기울어질 때까지 집에 있었다. 아마도 우울한 화요일에 이어 아제냐스 두 마르Azenhas do Mar가 보여주는 유토피아처럼 아름다운 수요일을 보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맑다가 흐림을 반복하는 날씨 속에서 그녀와 나의 기분은 한없이 깊은 바닥을 향해 추락해버린 이유가 말이다.
해가 지평선 너머로 숨어들기 직전이 되어서야 비로소 우리는 집 밖으로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집에서 편히 입고 있던 옷을 그대로 입고, 편히 신고 있던 슬리퍼를 지익- 지익- 끌면서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가만히 손을 잡고 그라싸 수도원의 성당Igreja e Convento da Graça 앞 전망대로 걸어갔다. 그리고 서쪽의 먼 지평선 너머로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면서 하루가 저물어가는 시간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잠시 깃들어 둥지를 마련한 동네, 그라싸Graça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일단 ‘Graça’는 우리말로는 ‘은혜’나 ‘은총’ 정도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유래는 아마도 위에 이야기한 수도원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2. 알파마Alfama 언덕 꼭대기 동네 - 미니양
처음 리스본에 내려 아파트를 찾아가는 길, 지도만 봐서는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예전에 왔었던 익숙한 동네를 발견하고 엄청 반가워했던 곳이, 이 곳 Graça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달동안 우리가 지낼 곳이라 더 반가웠다. Graça는 알파마 가장 높은 곳이라 외출하고 돌아올 때마다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고 또 올라야 하지만, 끝까지 올라오면 전망 하나는 끝내준다. 집 앞 흔한 공원도 전망대로 만들어버리는 동네 높이의 위엄. 물론 28번 트램을 타면 집 앞까지 편안하게 올라오지만, 워낙 인기있는 노선이라 사람이 너무 많아 잘 타고 올라오지는 않게 된다.
사실 동네에 있다보면 굳이 아랫(?)동네까지 내려갈 필요성도 느끼지 않게 된다. 슈퍼, 정육점, 수산물상점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상점이 있고, 커피 한 잔을 즐길 수 있는 카페와 FADO 공연을 하는 바도 있고, 이발소에 옷 가게까지. 없는 게 없다. 오늘같이 귀찮은 날이면 그냥 동네산책만 해도 재미가 있다. 소방서 앞 작은 광장에 앉아서 사람구경도 하고, 출출해지면 카페에서 커피 한 잔에 파스텔 데 나다를 먹고, 전망대로 걸어가 멍하니 앉아 있다, 슈퍼에 들러 장을 보고 집에 돌아오면 된다.
이 동네에서 지낸지 벌써 3주가 다 되어 간다. 이제는 더이상 꼭대기까지 언덕을 오르는 일이 힘들지만은 않고, 오늘은 이 슈퍼에는 뭘 할인 하더라, 저 카페에 사람이 많더라, 저 가게는 문을 닫았더라... 이런 저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시간은 가속화가 되어 점점 빨리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제 이 곳 Graça에서 보낼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는 않아 흐르는 시간이 안타깝기만 하다. 한 달짜리 동네주민이지만, Graça에서 일상 비슷한 것을 살게 되기까지 잘 보듬어준 이 동네가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