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한 달 살아보기
#1. 가끔은 우울한 날도 있지 - 미니양
리스본에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하는 일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발코니 창문을 열고 오늘의 날씨를 확인하는 일. 그런데 오늘은 아침부터 날이 좋지가 않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보여주는 하루가 대부분이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은 날이다. 어제 축구장에 가느라 늦게 아파트로 돌아온 탓에 몸도 무겁고, 날씨도 좋지 않으니 어디로 나서기가 영 귀찮다. 어차피 정해진 것은 없으니 그냥 늘어져 있어 보기로 마음먹고 있는 힘껏 게으름을 피우며 소파와 한 몸이 되었다. 아침을 챙겨먹고 늘어져있다가 문득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지만, 멀리 나가고 싶진 않았다. 예전에 대성당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힘껏 늘어져있었던 기억이 있어 그 곳에 가보기로 했다.
그 곳의 이름은 'POIS' 그 사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서 꽤나 유명해진 것 같았다. 블로그 후기도 많이 보이고, 추천카페로 검색되는 것을 보면. 대충 옷을 주워입고 대성당 골목으로 내려갔다. 28번 트램길을 피해가니, 조용하고 여유롭게 걸어갈 수 있었다. 도착한 카페에서 커피 2잔과 간식거리를 시켜놓고, 책도 보고 그림도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날씨 탓인지 기분도 바닥을 치고,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림도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기분. 내가 여기에서 뭘하고 있나? 어차피 2주 후에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텐데... 현지인처럼 지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별별 우울한 생각이 다 들었다.
그렇게 카페에서 꽤나 긴 시간을 보내고, 다시 아파트로 돌아왔다. 이 우울한 기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억지로 웃고 싶지는 않았다. 난 우울한 날은 그냥 우울한 채 내버려 둔다. 억지로 기분전환을 해보려해도 쉽지 않으니, 그냥 우울할 만큼 우울해지고 나면 다시 기분은 올라오도록. 내일 날씨가 화창해지면 내 기분도 화창해지겠지.
#2. 가끔은 그녀가 우울한 날도 있지 - 고래군
그녀와 나의 공통점이 몇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를 찾자면 바로 계절과 날씨를 많이 탄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면, 일단 계절이 바뀌어갈 때 그 계절의 냄새를 먼저 맡는다. 겨우내 차갑고 건조한 공기를 숨쉬고 있다가 문득 봄의 따사로운 햇살이 얼어붙은 땅을 녹이면서 스며나오는 그런 봄 내음 한 줄기가 숨결에 섞여 들어오는 순간 봄이 가까이 다가왔음을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뭐 올 해 봄 냄새의 경우에는 리스본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한가득 퍼져있던 상태였기는 했지만…
어쨌든 해맑은 햇살이 잠든 우리를 간질여 깨우는 아침에 익숙해져있다가, 구름 가득 캄캄한 리스본의 풍경 속에서 잠으로부터 벗어나려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이대로 침대에서 밤을 맞이하겠다는 생각에 겁이 덜컥 들고 나서야, 간신히 몸을 침대에서 꺼내 커피를 내리고 잠을 털어내기 시작했다.
"오늘 뭐 하지?"
나의 이 물음이 담긴 목소리도, 그리고 "글쎄…"라고 말하는 그녀의 대답도 오늘 따라 짙은 회색 하늘처럼 음울했다. 검은 빛이 뒤섞인 구름 색을 가장 많이 닮은 것은 그녀의 목소리 뒤에 진득하게 들러붙은 어눌한 침묵이었다.
한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침묵만을 건넸다. 구름 사이로 햇살 한 줄기라도 새어나오면 나아지겠건만…. 집 안 가득 찬 침묵은 점점 더 무거워져만 갔다. '아마 이대로 조금 더 무거워지면, 어쩌면 언덕 아래까지 꺼져 내려가버리고 말 거야.' 하는 생각이나 하면서 소파에 파묻혀 있을 때, 그녀가 말했다.
"우리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