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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Mar 17. 2017

[D+13] 구구절절 축구이야기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한 달 살아보기

#1. 유럽축구? 보러 가지, 뭐 - 미니양


"유럽에 왔으니, 축구는 한 번 봐줘야지!"

"왜?"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

"그래? 그럼 보자."


 이렇게해서 우리는 유럽축구를 보러 가게 되었다. 사실 고래군이 그냥 유럽 왔으니 보러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지만, 속에 담긴 의미는 난 잘 알고 있다. 고래군은 내가 축덕이라고 부르는 축구덕후이다. 모든 경기를 다 챙겨보고, 축구용품을 모으거나 하지는 않지만 축구를 참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유럽축구. 그 덕분에 축구에 관심없던 나 역시 주말마다 EPL 경기를 함께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고래군이 축구를 보러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두 번째 리스본에 왔을 때 나의 숙소는 스포르팅 리스본의 홈 경기장이 있는 캄포 그란데 근처였다. 오며가며 경기장을 보는데 그 경기장 참 멋지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리스본에 고래군과 오게 된다면 축구장에 한 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축구를 보러 가기로 했는데, 스포르팅 리스본 홈 경기가 없는 것이다. 


"오빠! 이번 주에 스포르팅 홈 경기가 없어. 다음주에 보러 갈까?"

"이번 주에 보고 싶은데......"

"그럼 어쩌지?"

"벤피카 경기 보러 갈까?"

"벤피카?"

"응. 그 때 우리가 갔던 쇼핑몰 옆에 있던 축구장."


 EPL 경기만 겨우 보는 나는 포르투갈 축구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무리뉴나 호날두, 페페밖에 없으니, 스포르팅 리스본 경기말고 다른 경기를 보러 갈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벤피카 홈 경기를 보러 가기로 했다.








#2. 우여곡절 축구 관람기 - 미니양


 벤피카 경기장까지는 아파트에서 버스가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경기장 근처까지였지만, 이전에 Colombo 쇼핑몰까지 가본 적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다. 능숙하게 예매해 둔 티켓을 찾고 경기시간까지 근처를 배회하며 기다렸다. 이윽고 경기시간이 임박하고 입장하려는데, 우리 티켓만 판독이 안되는 것이었다. 입장할 때 바코드를 찍으면 지하철 개찰구처럼 녹색신호가 뜨고, 들어갈 수 있게 문이 열린다. 그린라이트가 켜져야 하는데, 자꾸 레드라이트만 켜지는 것이다.


 당황한 우리는 관리직원한테 물어봤지만, 그 쪽은 아예 영어를 못한다고 하고. 어쩌지 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영어를 할 수 있는 입장객에게 관리직원이 통역을 부탁했다. 티켓오피스에 가서 다른 티켓으로 바꿔오라고. 우리는 수많은 입장객 인파를 뚫고, 티켓오피스를 찾아가서 티켓이 안된다고 바꿔달라고 했다. 하지만 티켓오피스에서 몇 번 체크해보더니, 티켓에는 문제가 없단다. 같은 티켓을 들고 다시 입장하는 곳으로 가는 길. 계속 걱정만이 앞섰다.  


"오빠! 우리 어떻게 해? 티켓을 안바꿨으니, 계속 레드라이트가 켜질텐데 어쩌지?"

"그러게."

"우선 가보자. 안되면 그냥 집에 가지, 뭐."


 다시 입장하는 곳으로 갔고, 티켓을 판독시켰지만, 티켓을 바꾸지 않았으니 여전히 레드라이트만 들어왔다. 관리직원 중에 제일 높아 보이는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티켓을 이리저리 뜯어보고, 난 티켓오피스에서 티켓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는 말을 전했다. 짧은 영어로 설명하고, 할아버니는 못 알아들으시는 것 같고. 이 말 저 말 다 내뱉다 "노 프라블럼"이라고 외쳤는데, 그 말이 포르투갈어 단어 problemas랑 비슷해서 알아들으시는 것 같았다. 그 사이 경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할아버지는 들고있던 무전기로 어딘가와 소통하기 시작했다.


 우리 티켓을 들고 바코드 번호도 불러주고, 한참을 얘기하셨다. 그 사이 경기는 이미 시작되었고, 골을 넣었는지 큰 함성도 들려왔다. 그렇게 기다린지 15분쯤 지났을까? 티켓을 판독시켰는데!! 

 드디어 우리가 기다리던 그린라이트가 켜졌다. 우리는 너무 감격한 나머지 할아버지한테 안겼다. 할아버지께서도 웃으시며 우리를 꼭 안아주셨다. 기쁜 마음으로 우리도 축구장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3. 축덕이 얘기하는 구구절절 축구이야기 - 고래군


 한국에서 살면서, 간혹 이런 농담을 누군가에게 하고는 했다. ‘내가 만약 미국에 살았다면 농구 팬이 되었을 테고, 유럽에 살았다면 매 주 축구장을 찾아다녔을 거야.’라고 말이다. 어린 아이가 조부모나 부모의 손에 이끌려 축구장을 찾기 시작하고, 그 아이가 성인이 되어 자기 자식의 손을 붙잡고 다시 축구장을 찾아간다는 이 동네의 축구 이야기는 나에게 있어 언제나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일종의 환상이었다. 동경하면 동경할수록 내가 살아가고 있는 공간은 결코 그곳이 아니라는 사실만 더욱 선명해졌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지금, 아주 짧은 잠시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지금-여기 리스본에 머물며 일상을 표방하며 사는 동안에는 그들 사이에 어색하게나마 깃들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축구장을 찾는다. 평소 내가 가지고 있던 환상을 익히 들어왔던 그녀가 나를 위해 예매해준 것이다.


 리스본을 연고지로 하는 팀은 모두 셋이다. 먼저 흔히 ‘스포르팅 리스본’으로도 부르는 “스포르팅 CP(Sporting Clube de Portugal)”가 있으며, 리스본 북동쪽의 캄포 그랑지Campo Grande에 있는 조제 알발라데 구장Estádio José Alvalade을 사용한다. 그리고 리스본의 남서쪽 벨렝Belém을 연고지로 하는 “CF 벨레넨스스(Clube de Futebol Os Belenenses)”가 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의 바로 북쪽에 있는 헤스텔루 구장Estádio do Restelo을 연고지로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우리가 찾아가는 리스본 북서쪽에 있는 빛의 구장Estádio da Luz을 연고지로 하는 “SL 벤피카(Sport Lisboa e Benfica)”가 있다.


 아, 설명 길다. 아무튼 축구장을 직접 찾아가서 축구를 본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첫 번째는 어린 시절 한국에서였는데, 잠실주경기장에서 열린 한국 대표팀의 친선경기였다. 그런데 이것이 내게는 ‘축구는 직접 가서 볼 필요가 없다’는 편견을 가지게 만든 경험이었다. 필드가 너무 멀어서 도저히 경기를 ‘보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이번에 축구장을 찾아가면서도 사실 나는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저 여기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축구장을 찾아가는 경험에 조금 더 무게를 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객석에 앉아 필드를 내려보는 순간, 잠실주경기장이 내게 남긴 과거의 끔찍한 기억은 사라지고야 말았다. 


 2017년 3월 13일 월요일 오후 여덟 시. 리스본을 연고지로 하는 두 팀인 SL 벤피카와 벨레넨스스가 빛의 구장, 에스타지오 다 루즈에서 지금 나의 두 눈 앞에서 격돌한다. 그리고 이럴 수가!! 경기 전체가 이렇게 선명하게 보이다니!! 선수들 등번호까지 전부 읽을 수 있잖아!! 그동안 TV와 모니터로만 축구를 봤던 나에게, 직접 전체 경기를 보고 소리 질러 응원하는 경험은 환희 그 자체였다.


 등번호 4번을 달고 있는 민머리의 장신 수비수 루이장Luisão은 언제나 가장 필요한 위치에서 가장 필요한 수비를 하며 팀 전체를 이끌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등번호 18번을 달고 있는 살비오Salvio는 측면과 중앙을 활발하게 오가며 안정적인 볼 키핑과 번뜩이는 드리블 돌파, 그리고 때때로 창의적인 패스를 찔러 넣으며 팀의 공격을 주도했다. 등번호 11번의 미트로글루Mitroglou는 최전방 원톱으로 출전했다. 다소 투박한 볼컨트롤과 패싱 능력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활동량으로 필드를 넓게 커버하며 자기 역할을 충분히 수행해내고 있다.


 아무래도 리스본에 있는 동안, 적어도 나는 벤피카를 응원하는 한 명의 팬이 되어버릴 것만 같다. 평일 경기, 그것도 월요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끝난 후 집으로 걸음을 재촉하는 수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 젊은 또래 무리들, 아버지와 어머니 손을 잡거나 또는 안겨서 집을 향하는 어린 친구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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