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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Mar 15. 2017

[D+12] 일요일, 굴벤키안 파묻히기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한 달 살아보기


#1. 일요일의 리스본- 고래군


 리스본에서 일요일을 즐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는 굴벤키안이라는 사람의 수집품들을 전시한 박물관과, 그가 세운 재단이 운영하는 미술관을 찾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이곳은 일요일 오후 두 시부터 박물관과 미술관이 무료로 공개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박물관과 근대미술관은 아름다운 정원Jardim이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한가로이 산책하는 것 역시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음, 어쩐지 뭔가 문체가 번역체처럼 되어버렸다.


 뭐 어쨌든 우리는 지난 주 ‘1일권의 굴레’ 덕분에 산책에 그친 굴벤키안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일요일인 오늘 이곳을 다시 찾기로 했다. 그것도 숙소에서 한 시간 정도 걸어서 말이다. 오후 두 시부터 무료로 개방되기 때문에, 우리는 일찌감치 길을 나섰다. 지난 주 질려버릴 정도로 길게 줄을 선 관람객들 때문에 발길을 돌렸던 기억 때문이다.


 걸어서 찾아가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으로 넉넉하게 여유를 두고 출발했다. 일요일이기 때문인지 대부분의 가게들은 문이 닫혀 있다. 대강 방향을 잡고 우리는 그저 길을 걷는다.

그녀와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하려는데 자동차 몇 대가 우리 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인다. 나는 잠시 멈추기 위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런데 그녀가 돌아보며 묻는다.


“왜!?”

“아니, 차 온다고.”


그런데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걸으며 그녀가 말했다.

 

“그게 뭐!?”


이윽고 자동차들이 속도를 줄여 멈추어 선다. 우리가 먼저 건너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적어도 그 도로 위 공간에서 차가 지나가고 건너겠다고 생각한 것은 오직 나뿐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리스본에서는 그런 내가 이상한 편에 속하나 보다.


아니. 그냥 차 온다고.








#2. 굴벤키안Gulbenkian에서 만나게 되는 것들 - 고래군


 일주일 전 일요일 비가 흩뿌려지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3월의 두 번째 일요일을 맞이하는 리스본은 파란 하늘과 쏟아지는 햇살에 더해 강렬하게 휩쓰는 바람으로 도시 공간을 채우고 있다. 그리고 대조적인 것은 또 한 가지가 더 있다. 이번 주에는 전시관에 줄을 설 정도로 북적이지는 않은 것이다.


 굴벤키안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박물관 Museu Calouste Gulbenkian이다. 이 공간에는 재단 설립자가 수집한 유물과 수집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그중에는 램브란트나 루벤스처럼 우리에게도 익숙한 화가들의 몇몇 작품들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덕분에 나는 그들의 작품을, 물리적 실체를 가진 실존하는 형태로 직접 감상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근대 미술관Museu Calouste Gulbenkian- Coleção Moderna이다. 이곳 역시 많은 근대 예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3. 굴벤키안Gulbenkian에서 만나게 되는 것들 - 미니양


 굴벤키안은 일요일을 보내기 위해 좋은 장소라는 생각은 이번에도 변함이 없었다. 박물관과 미술관 그리고 산책로와 그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카페테리아와 식당까지. 이 곳에서 리스본에서의 하루를 보내도 아깝지 않을 그런 곳이다. 리스본에 올 때마다 여유롭게 머물게 되는데, 이번에는 한 달이니까 조금 더 여유롭다. 저번 주에는 빗방울도 떨어지고 사람도 많아서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다시 방문한 이번 주는 훨씬 여유가 있다. 박물관을 둘러보고 산책로를 따라 미술관을 보러 가는 길에 배가 고픔을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미술관에 있는 식당에서의 추억이 떠올랐다. 



 많은 음식들 중 4가지 혹은 6가지 먹고 싶은 음식과 음료, 디저트를 골라서 계산하는 시스템의 식당. 6년 전, 그 당시 아무런 정보없이 사람들을 따라 줄을 서고, 곁눈질로 식당의 시스템을 익혀 무사히(?) 식사를 했던 추억. 그 추억을 고래군에게도 심어주고 싶었다. 


 쟁반과 냅킨을 가지고 음식들이 정렬된 레일(?)을 지나가며 내가 먹고 싶은 걸 손짓으로 가르켜 접시를 채우며 지나갔다. 뒤따라 오던 고래군은 어떻게 하려나 지켜봤는데... 너무나도 간단하게 이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었다.


저거랑 똑같이 주세요.


 음식들을 가르키는 대신 내 접시를 가리키며 말하는 것이 아닌가? 편안하게 주문하는 모습을 보며, 뭘 먹을까 고뇌하거나, 음식 앞에서 당황하는 고래군의 모습을 기대하던 나는 김이 빠져버렸다. 결국 똑같은 음식 두 쟁반을 가지고 자리에 앉았다. 음식 앞에서 당황하는 고래군의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6년 전이나 지금이나 난 이 식당이 좋다. 그리고 굴벤키안에서의 일요일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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