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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Mar 15. 2017

[D+11] 리스본, 쉼의 형식에 대한 단상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한 달 살아보기


#1. Jardim은 ‘정원’이고, 아마 우리는 ‘공원’이라고 합니다- 고래군


 비센테 성당São Vicente de Fora의 뒤편, 화요일과 토요일에 도둑시장이 열리는 동네의 이름은 산타 클라라Campo Santa Clara이다. 그리고 이 동네는 공원 하나를 둘러싼 형태로 되어 있다. 공원의 이름은 보또 마차도 정원Jardim Botto Machado이다.


 갑자기 공원 소개는 왜 하냐고? 안 그래도 지금부터 그 이유를 말하려고 한다.

어제 카스카이스를 다녀오고 나서 집에 돌아오자, 나는 내 안의 에너지가 다시 비어버렸음을 느낄 수 있었다. 뭐랄까… 최대한 아껴 마시면 한동안 갈증을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마음껏 마실 엄두는 나지 않을 정도의 물이 담긴 물병처럼 되어버렸다고 하면 되려나?


 그리고 다행히(?) 그녀에게도 어제의 근교 나들이는 적잖은 피로를 남긴 모양이다. 여전히 아침 햇살은 더없이 눈부시고, 그 파랗게 빛나는 하늘은 나에게 집에만 틀어박힐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다. 그래서 우리는 책 두 권, 그리고 약간의 간식과 물이 조금 담긴 물병을 챙겨들고 동네 공원에 널부러지기로 했다.

맞다. 우리가 향하는 공원이 앞서 말한 바로 그 보또 마차도 공원이다.





#2. ‘쉼’의 형식- 고래군


 형제처럼 보이는 두 남자 아이들이 축구공을 차며 놀고 있다. 어떤 엄마는 두 아이와 함께 나무 아래 담요를 깔고 누워서 이야기를 나눈다. 카페테리아에서 펼쳐놓은 테이블에 둘러 앉아 커피와 담배, 그리고 수다를 나누는 할아버지 한 무리를 다시 보니,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 남쪽 가장자리 울타리 난간에는 홀로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이 앉아 있다.


 우리는 늘어선 벤치 중 하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각자 챙겨온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알랭 드 보통의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이라는 책을 골랐다. 한국에서 떠나오기 직전 헌책방에서 발견한 책이다. (이 책은 지금도 읽고 있다.)


 문득 그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왜 한국에는 이렇게 쉬는 사람들이 없을까?”

“한국에는 이런 공원이 없잖아.”

“하긴… 서울이었으면 이런 공간에 건물 하나 더 올릴 생각을 했겠지….”


 어쩌면, 아니 확실히 한국의 삶 또는 서울의 삶은 대체로 ‘쉼’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평일에는 잠들기 직전까지 탁한 햇살을 대신하는 밝은 전기등의 빛에 휩싸인 채 깨어있어야만 한다. 주말과 휴일에 시간을 보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려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인가를 더하기 위한’ 이라는 말로 수식할 수 있는가처럼 보인다. (심지어 그것이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반면 그녀가 내게 말한 ‘이렇게 쉬는’이라고 표현한, 공원에서 사람들이 보여주는 모습들은 


무엇인가를 빼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충전’이라는 한국어가 가지고 있는 ‘무엇인가를 채우다’라는 뉘앙스 때문에 한국의, 서울의 ‘쉼’의 형식에는 ‘빼기’가 결여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3. ‘쉼’의 형식- 미니양


 만약 이 곳이 서울이었다면, 그래서 누가 주말에 나에게 '쉬어봐!'라고 했으면 그냥 쭉 누워서 지냈을 것이다. 우선 10시간 이상 늘어지게 잤을 거고 대충 밥을 챙겨먹고 또다시 누웠을 거다. 누워있는 내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있었을 거다. 게임을 하거나, 궁금하지도 않은 가십거리들을 읽거나. 그런 모습이 나의 쉼 형태였다. 하지만 이 곳, 리스본에서는 그렇게 있고 싶지 않았다. 서울에서의 나는 디지털 노예나 마찬가지였으니, 적어도 스마트폰한테는 자유롭고 싶었다. 책을 들고 나간 공원에는 책 말고도 재미있는 풍경들이 많았다.


 동네공원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말도 안되는 풍경과, 여유롭게 차 한 잔, 맥주 한 잔을 하는 어른들, 신나게 뛰어놀던 아이들. 그리고 뭐가 그리 재미난지 깔깔거리며 피크닉을 즐기는 모습까지. 내가 서울에서 경험하던 토요일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그 모습 안으로 나도 슬며시 들어가 하나가 되고 싶어, 공원 귀퉁이 벤치에 누워 책을 펼쳤다. 책을 읽으면서 난 무언가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이런 쉼의 방식도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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