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논어 원전을 읽게 되었다. 논어를 읽으면서 든 생각이 하나의 주제로 엮기에는 어려워서 주제별로 나누어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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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전에서 만난 '재사가의'
공야장에서 나오는 구절 '계문자삼사이후행 자문지 왈: 재사가의'은 내게 의미가 있는 구절이다. 학창 시절 한 번의 실수, 오답을 줄이기 위해 다 풀어낸 시험지를 2번이고 3번이고 제출할 때까지 반복해서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생긴 관성이 꽤 오래도록 이어졌다. 잠근 문도, 잠근 가스밸브도 여러 번 확인하기 일쑤였다. 그게 불편하면서도 쉽게 극복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만난 논어 관련된 책에서 만났다. '재사가의' 두 번 생각하면 충분하다는 공자의 이야기가 위로가 되었다. 성인이라 불린 공자가 한 이야기이니 2번만 앞으로 확인하자 생각했다. 그 문장을 원전에서 다시 만나니 반가웠다.
-. 통치론으로서의 논어
논어는 개인이 자신을 갈고닦는 수양론으로서는 적합하지만, 논어를 기초로 국가를 운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를 운영하려면 현실에 기초한 학문과 이론이 필요한데, 논어는 형이상학적인 가치에 대한 공자의 생각이 조금씩 제시되고 있다. 이것을 기초로 국가를 운영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성리학의 나라 조선은 조총을 받아들인 왜구에 국토를 침탈당했고 이후에도 회복되기 어려운 국력의 쇠락을 겪었다. 그로부터 300년 뒤 미국에 의해 개항되고 근대국가로 나아간 일본에 이번에는 강점당한다. 단순히 조선이 유교의 국가였기에 망했다고 보기에는 논리의 비약이 있지만, 그래도 그것이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조선의 근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음이 35년의 강점기, 그리고 국제질서에 의한 국가분단, 한국전쟁으로 이루어지는 역사를 보며 항상 아쉽고 안타까웠다. 조선이 형이상을 추구하더라도 국가 운영은 실리적으로 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 인문학의 가치
위 내용과 이어지는 이야기로 인문학이 나에게, 우리에게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생각했다. 분명히 의미가 있다. 인문학은 '어떻게 좋은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고 해답을 찾아주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 옆에 꼭 두어야 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진로를 정하지 못해 헤매었던 나는 나에 대해, 삶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아산서원이라는 인문학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 시간을 거치고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가지며 좋은 삶, 좋은 사람에 대해 나름의 생각과 가치관을 정립했다.
그럼에도 사회에 나와 내가 관심을 가진 인문학이 실무에서는 크게 의미가 없다는 점, 그로 말미암아 '문송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이 뼈아프다. 그런 생각에 이르니 20대 초반에 인문학보다는 투자 동아리에 들어가 항산(恒産)을 마련할 능력을 키우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인문학 수업보다는 변화하는 시대를 이해하고 컴퓨터공학과 수업을 들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지나간 시간이어서 후회는 의미 없지만, 그 경험에서 반추하자면 기술과 지식에 의미를 부여해 줄 인문학을 배우는 것만큼이나 삶에 밀접한 기술과 지식을 쌓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두 개가 함께 가야지 하나에만 치우쳐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비중을 따지자면 시작은 실리에 대한 지식을, 끝으로 갈수록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