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탄생'을 보고
어렸을 때부터 역사를 참 좋아했다. 역사적 사실을 폭넓게 알고 있는 것(외우고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외웠던 사실에서 다루지 못한 역사 속 개인의 삶을 다룬 이야기가 점차 좋아지고 있다.
영화 '탄생'이 그러했다. 김대건 신부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신부'라고만 인식되어 있던 그에 대해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영화였다. 개봉할 당시에 예고편을 보고 저 영화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몇 년이 지나 이제야 보게 되었다.
영화는 김대건 신부가 신부가 되는 과정, 그리고 조선에 돌아와 순교하는 과정에 대해서 상세하게 다룬다. 내가 놀랐던 점은 19세기 조선인이 중국 마카오, 필리핀 등에서 신부 서품을 받기 위해 교육을 받고 활동을 했다는 점이었다. 내가 아는 그 당시 조선은 세도정치의 시대였고, 천주교를 박해했고, 서양과의 수교를 거부했던 국가였다. 그러한 경계를 뚫고 새로운 세상에 나아가 천주교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서양의 언어(라틴어, 프랑스어)와 서양의 역사, 천주교에 대해 폭넓게 배운 김대건 신부는 그 당시 조선에 둘도 없는 지식인이었다.
그랬기에 김대건 신부가 체포되고 나서 조선 조정에서는 서양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국가 실리를 위해 김대건 신부를 살리자는 주장도 있었다. 물론 배교를 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였다. 결국 김대건 신부는 순교를 택했고, 스물다섯 꽃다운 나이에 순교하였다. 이 부분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명나라가 망한 지 오래였고 청나라는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고, 이웃나라 일본 또한 그러한데, 성리학 이념에 잡혀 실리를 놓쳤다. 그러는 사이 조선에는 망국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근대화와 제국주의라는 시대의 흐름은 강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한편, 종교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먼 타국에서 다양한 학문과 지식을 익히고, 포교를 위해 조선 국경을 넘나든 김대건 신부가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천주교를 믿지 않기에 교리의 전파에 대해서 논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김대건 신부는 자신이 믿고 행하는 것을 위해 자신을 둘러싼 규율과 한계를 넘었다.
가끔 어쩌면 자주, 나를 둘러싼 규율과 한계에 맞추느라 나는 더 큰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지 못한 때가 많다. 영화 '탄생'은 당시 조선의 선택과 김대건 신부의 선택을 보여주며, 규율과 한계 너머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야겠다는 마음을 일깨워주었다.
조만간에 이탈리아로 여행을 간다. 로마에서 바티칸 투어를 하는데 그때 조선의 도포를 입은 김대건 신부의 동상을 보면 기분이 묘할 것 같다.
※ '탄생' 영화 포스터 출처는 '다음 영화'(https://movie.daum.net/)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