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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수하 Jul 16. 2018

우리들의 '개시건방진' 혐오

아주 독립적인 여자 강수하

 지난 서울 시장 선거였다. 아마도 우리나라 최초겠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표방하는 후보가 출마했다. 이에 반가워하기도 전에 먼저 들었던 생각은, 이래도 되나? 분명히 욕먹을 텐데? 하는 걱정이었고, 두 번째 생각은 서울시에 여자만 있는 것도 아닌데 왜 페미니즘을 메인 공약으로 내세우지?였다. 나의 걱정처럼 신지예 후보는 수십 장의 벽보가 훼손되는 수모를 겪었고 경찰은 범인을 열심히 찾지 않았다. 우야 된 동 나는 경찰 이야기 따위나 페미니즘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 안의 혐오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다른 이의 혐오를 먼저 말해 보겠다.




 그 선거 기간, 박훈이라는 인권 변호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신지예 후보의 포스터와 함께 글을 하나 올렸다. 그리고 후보를 포스트모더니즘의 신녀성과 비유하며 '개시건방지다.', '저 오시하는 눈빛'이라며 비난했다. 그는 신지혜 후보의 공약을 말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녀의 표정과 눈빛을 비난했다.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점 투성이었다. 


 일단 나는 오시하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검색해 봤지만 그것이 왜 나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국어사전
오시 하다 (忤視--) [오ː시 하다] 다른 뜻(1건)
[동사] 상대편의 위세에 눌리지 아니하고 흘겨보다. 
출처: 네이버


 그리고 나는 후보의 눈빛과 표정의 무엇이 문제인지 몰랐다. 내게는 그저 당차고 똑똑해 보이는 젊은 여성의 이미지일 뿐이었다. 세 번째로 나는 왜 사회적 명예를 가진 사람이 다른 이를 공개적으로 혐오하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그는 어떻게 그래도 그의 명예가 훼손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을까? (실제로 그는 조롱을 조금 받긴 했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계속 활동하는 듯하다.) 


 그런데, 나는 최근 저 치가 왜 신지예 후보의 표정이 '개시건방지다.'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회사에서 팀을 옮긴 후 확실히 '아저씨 혐오 병'에 걸렸다. 조금 오버해서 말하자면 중장년의 아저씨들이 숨만 쉬어도 싫다. 몰려있으면 더 싫다. 지들끼리 킬킬거리면서 웃기까지 하면? 내 눈과 귀를 버리는 느낌이다. 거기에 담배까지 꼬나물면 정말 '개시건방지다.' 마치 '여기가 내 나와바리야. 나만이 여기서 이렇게 크게 떠들면서 짝다리 짚고 담배연기를 뿜어댈 권리가 있다구. 킬킬.'이라고 하는 것 같다. 정말이지 '개시건방지다.' 사회는 그런 '개시건방진' 자를 싫어하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고 내가 모든 아저씨들과 잘 지내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나의 측근들은 언제나 진중하고 저렇게 아무 데서나 크게 떠들거나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무도 잘못이 없다. 목소리 좀 크고 담배 좀 피운다고 잘못은 아니니까. 혐오에 물든 내 마음이 잘못이다.


 그러고 다시 앞서 말한 사건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결국 나나 저 박훈이라는 치나 똑같은 작태들이다. 나는 (나의 기준을 벗어나는) 늙은 남성을 혐오하고 그는 (그의 기준을 벗어나는) 젊은 여성을 혐오한다. 우리들의 혐오가 일방통행이 아님이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각자는 이 사실을 모른다. 자신만이 혐오의 피해자라 생각한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대체로 쌍을 이루므로 필연적으로 누구도 피해자이기만 할 수 없고 가해자이기만 할 수도 없다. 이 혐오의 시대에는 당연하게도 누구나 혐오의 피해자가 되기 쉬운 것만큼 혐오의 가해자가 되기도 쉽다. 과연 누가 누구를 비난할 수 있을까. 과연 누가 이 '개시건방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혐오는 어디서나 발생하고 언제나 '개시건방진' 얼굴을 하고 있다.




 그는 논란 직후 사과문을 올렸지만, 선거가 끝나자마자 아래와 같은 글과 댓글을 통해 그 사과문이 거짓이었고 후보를 혐오했음을 입증했다. 그리고 나의 아저씨 혐오에 근거 한 점을 더 얹어주었다.







<아주 독립적인 여자 강수하>

 - 냉정한 분노로 나를 지키는 이야기


“강수하는 강한 사람도 아닌 주제에, 

너무나 꿋꿋하다.

강수하가 너무 독립적이지 않아도 되도록, 

함께 옆에 서서 가고 싶다.”

- 서늘한여름밤(《나에게 다정한 하루》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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