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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챗쏭 Oct 20. 2019

두 번째 하프마라톤을 뛰었습니다.

2019. 서울달리기대회 하프마라톤 참가기

이제 16km를 달렸다는 알람이 손목에 찬 시계를 통해 진동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남은 거리는 5km.


이제껏 달려온 다리와 몸이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싶은 두려움이 몰려왔다. 현기증인 것 같았다. 이 상황을 버텨 낼 뭔가 마음을 새롭게 할 다짐 같은 것이 떠올라야 했다. 마음을 다잡는 것에도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온 마음을 그러모아도 '조금 더 힘을 내자'하는 생각조차 쉽지 않았다.


애초에 생각해뒀던 달리기 계획(?)에 따르면, 나는 16km부터는 앞서의 거리와 다른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남은 5km는 나름의 '버티기'로 달릴 생각이었다. 1km, 1km를 하나씩 채워가며 한걸음, 한걸음이 더 늦어지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말이다.


계획이 그러할 뿐, 작년의 경험에 따르면, 그리고 그 전 주말에 연습삼아 달린 21km 고통의 기억으로는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 구간이 될 터였다. 앞으로 맞게 될 5km는 고통의 구간이 될 것이고 인내심의 한계를 오갈 것이다. 나는 잘 버텨낼 수 있을까.


2019.서울달리기대회, 종로를 지나는.지점




나는 작년에 처음 하프마라톤을 뛰었다. 풀코스 마라톤을 뛰는 수많은 동호인들이 있고 달리기 좀 한다는 사람들이 하프마라톤은 쉽게 뛰는 것을 보면, 두 번째 하프마라톤을 뛰는 나는 말 그대로 '달리기 햇병아리', '초보러너'였다. 그마저도 매일같이 달리기 연습을 하고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장거리 연습을 했다면 좋았으련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한 달에 10번 정도 달렸을까. 작년 10월 이 대회를 뛰고 나서 앞으로 꾸준히 달리기를 하겠다고 해 놓고서는 추운 날엔 추워서 못 뛰었고 미세먼지가 심한 날엔 그래서 또 못 뛰었다. 여름이 되면 더운 날씨가 겁이 나서 달리지 못했다. 5월부터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했는데, 6월에는 66km, 7월 12번 90km, 8월 5번 43km를 뛰었다. 대회를 한 달 앞둔 9월에도 11번, 모두 다 해 70km 정도를 뛰었다.


연습량 부족은 16km가 넘어서니 티가 났다. 대회를 일주일 앞두고 장거리 연습 부족이 걱정되어 혼자서 21km를 달려봤다. 실제 페이스보다 느리게 뛰었지만 16km를 지나니 무척 힘이 들었고 목표했던 21km를 간신히 뛰었다. 기록은 1시간 54분. 혼자서 연습한 성과는 있었다. 일단은 완주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 또 한 가지는 나름의 구간별 목표를 생각해 둔 것이다.


그렇게 세운 목표는 이랬다. 11km까지는 5분 이하의 페이스로 무리하지 않는 호흡을 유지하고, 11km부터 16km까지는 페이스가 떨어지지 않게 관리하면서 5분 10초대를 뛰는 것, 16km부터 21km까지는 5분 20초 ~ 5분 30초대의 페이스를 버텨보자는 것. 그렇게 달릴 수 있다면 나는 작년 이 대회 나의 기록을 조금 단축하거나 그렇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만큼의 기록을 받아 들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다.


이번 하프마라톤에서 내가 목표로 세운 것은 한 가지였다. 남들과의 경쟁이나 순위가 아니다. 목표는 단지 작년의 나를 뛰어넘어 완주하는 것이었다. 작년 이 대회 나의 기록은 1시간 48분 18초. 21km를 1km 당 평균 5분 8초의 페이스로 달린 기록이었다. 대회를 앞두고 작년의 기록을 꼼꼼하게 복기했다. 기록을 보니 11km까지는 4분 50초에서 5분대로 달렸고 15km까지는 5분 10초를 오갔다. 16km부터 페이스는 점차 느려졌고 5분 30초대를 넘나 들었다. 첫 하프마라톤 치고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좋은 기록이었다. 나는 꼭 이 기록을 넘어서고 싶었다. 만일 그러지 못한다면 이 기록은 나의 첫 하프마라톤 기록임과 동시에 개인 최고 기록이 되고 마는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았다. 나는 과연 작년의 나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대회 전날 나름 생각한 컨디션 조절은 오로지 잘 쉬는 것뿐이었다. 과식을 하거나 기름진 음식을 먹지 않으려 했고 물을 충분하게 마셨다. 마치 시험 전날처럼 잠도 충분하게 자려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간신히 잠이 들어서는 깼다가 다시 잠들었다가 몇 번을 그렇게 뒤척였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긴장하고 조바심을 내는 것일까.


대회날 이른 아침 버스를 타고 서울시청으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 다리도 주무르고 긴장감을 풀어보려고 음악을 듣고 그렇게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어젯밤 남겨 둔 생각이 여전히 머릿속을 헤매고 있었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이제 3년째다. 마라톤이나 장거리 달리기를 하면서 느낀다는 러너스 하이를 경험해 본 적도 없다. 달리기는 여전히 고통의 인내와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조금 더 일찍 달리기를 만났으면 좋았겠다 싶을 만큼 달리기의 매력에 빠져 있다.


한발 한발 내 두발로 다 디뎌내지 않고서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는 정직함. 터질 듯한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으며 뛰는 인내의 과정. 달려본 사람만이 아는 쾌감이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달리기가 가진 정직함의 매력이 좋다. 노력한 만큼, 꾸준히 연습한 만큼 나타나는 노력의 결과물은 고스란히 몸에 기억된다. 아무리 체력이 좋고 건장한 사람이라도 달리기를 연습하지 않으면 장거리를 뛰기 어렵다. 연습하지 않으면 할 수 없고 즐길 수 없다. 요령도 없다. 그저 묵묵히 두발로 내달려 목표에 골인하는 것뿐이다. 달릴 수 있는 거리를 점차 늘려가서 결국에는 달리려는 거리를 뛰어내고야 마는 것. 뛰기 전에는 5km든 10km든 혹은 21km 42.195km가 사람이 달려서 도달할 수 있는 거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면 자동차나 자전거가 아닌 두발로 뛰어서 달려갈 수 있는 거리가 된다는 것이 내게는 달리기가 가진 큰 매력이었다.


10km를 처음 달릴 때도 그랬고, 작년 하프를 앞두고도 그랬다. 나는 끝까지 잘 달릴 수 있을까. 나는 왜 긴장하는 것일까. 그렇게 긴장했다가 10km를 달려 골인하고 하프마라톤을 완주하고 나면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완주했다는 그 기쁨은 목표한 바를 이뤄냈다는 커다란 성취감이었다. 생각해보면 이처럼 무언가 목표를 두고 몇 달에 걸쳐 준비할 일이 없었다. 일주일에 두 번은 달리기를 해야 했고 저녁 약속이 몰리게 되면 약속을 조정하거나 미뤘다. 퇴근을 하고 뛰었는데 저녁식사를 많이 하면 더부룩해서 뛰기 어려웠다. 가능하면 저녁식사를 일찍 하고 잠시 시간을 두었다가 달리고는 했다. 주말에 한강에 나가서 장거리 연습을 하려면 전날 술자리 약속이 있어서도 안됐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챙겨 나서야 했다. 달리기 클럽에 가입한 것도 아니고 동호회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모든 것을 혼자서 계획하고 준비했다. 몇 달을 이 대회에서 완주하기 위해 틈틈이 준비했다.


내가 긴장하고 조바심을 내는 것은 그 준비과정의 노력 때문이다. 그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 그것 때문이었다.

대회를 일주일 앞두고는 연습삼아 21km를 달렸다.






출발 전, 서울시청 앞 광장


출발 전에 가볍게 몸을 풀었다. 보통은 1km를 달리면서 호흡도 적응하고 천천히 페이스를 끌어올렸는데, 미리 워밍업을 하면서 그 1km의 과정을 시작했다. 서울시청에서 출발한 레이스는 종로, 동대문을 지나 한강으로 이어졌다. 첫 1km가 평소보다 20초 정도 빠른 5분 20초대가 나왔다. 2km는 4분 50초. 초반에 무리하면 장거리 레이스를 할 수 없으므로 페이스보다 중요한 것은 무리하지 않는 것이었다. 호흡도 그랬고 손목에 찬 시계로 확인되는 심박수도 마찬가지였다. 초반에 생각해둔 심박수는 150 미만이었다. 10km까지는 심박수 160을 넘기지 않으려고 했다. 3km, 4km를 지나면서 페이스는 여전히 4분 50초 미만이 유지되고 있는데, 심박수는 165~ 168을 오갔다. 무리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페이스를 떨어뜨려야 했다. 그런데 기분 탓인지 느낌으로는 힘들지 않았다.


11km까지 4분 50초대의 페이스를 유지했다. 생각보다 페이스가 빨랐다. 호흡도 크게 가쁘지 않았다. 다만 심박수가 160 후반대를 넘나드는 것이 걱정스러웠다. 수치상이지만 이렇게 심박수가 빠르게 올라가면 레이스 후반에는 버티기 힘들다. 11km를 지나 14km까지 5분 미만, 4분 50초 후반대의 페이스가 계속되었다. 이렇게 뛰면 16km가 지나 5분 10초, 20초대를 유지하더라도 1시간 45분이 채 안 되는 기록이 나올 것 같았다. 기록이 그렇게까지 나오면 나는 다음번 목표를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 나를 비웃듯 14km를 지나니 다리가 무거워졌다. 페이스도 떨어졌다. 5분 10초대의 페이스로 떨어졌다. 조금 더 끌어당기고 싶었지만 1, 2초만 더 당겨서 뛰어도 심박수는 금세 170을 넘었다. 그렇게 반환점을 돌고 16km. 도착점인 뚝섬이 직선으로 보이는 한강변 도로로 들어섰다. 가슴은 터질 것 같고 달리기 하면서 처음으로 어지럽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기록은 고사하고 완주는 할 수 있는 것일까.


17km, 18km를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다. 페이스도 놓쳤다. 기록을 계산하던 머릿속은 하얀 건지 까만 건지 아니면 노래진 건지조차 알지 못할 만큼 정신이 없었다. 3km가 남았다. 평소 같으면 3km쯤이야 어떻게든 뛸 수 있는 거리지만 지금은 도착점에 나를 그대로 가져다 놓는다 해도 몇 발짝이나 더 뛸 수 있을까 싶었다.


19km를 지나는데 앞서 가던 누군가가 쓰러졌다. 주변의 사람들이 몰려와 구급차를 부르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 뛰면서 나는 남일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걸어야 할까. 버틸 수 있을까.


20km를 지나니 다리는 땅바닥에 붙어가듯 끌려갔다. 달리고는 있었지만 누군가 걷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 해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페이스는 5분 45초. 뛰고 있다는 것은 오로지 손목에 찬 시계로만 확인할 수 있었다. 남은 1km. 만일 도착점에 아내와 아이들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면 나는 걸었을지도 모르겠다.


걸어 들어오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었다. 있는 힘을 다해 뛰었다고도 못하겠다. 있는 힘은 이미 다 써버렸으니까. 100미터쯤 남았을까. 아내와 딸아이가 도착 선보다 앞서 기다리고 있었다. 반가움에 손을 흔들었지만 조금 더 힘을 내기도 벅찼다. 그렇게 골인.



기록은 1시간 47분 32초였다. 작년의 기록을 40초 당겼다. 기록은 당겼지만 작년의 레이스보다 잘 뛰었다고는 못하겠다. 16km를 넘어 5km를 그렇게 뛴 것은 분명 초반 오버페이스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보다 연습부족이 낳은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후반까지 마음먹은 대로 뛸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번 하프마라톤을 일주일 앞두고 혼자서 한번 뛰어보고는 자신감이 생겨서인지 아내에게 그렇게 말했다.

"내년에는 풀코스를 한번 뛰어볼까 봐."


그랬던 나는 골인점에 들어오고 나서 숨을 고르자마자 아내에게 말했다.

"풀코스는 못 뛸 것 같아."


재작년 달리기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5km를 달리는 것도 벅찼다. 8km까지 늘리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10km를 부담스럽지 않게 생각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랜 이야기가 아니다. 작년 하프를 처음 앞두고는 어땠는가. 완주를 할 수 있을지 얼마나 두려워했던지.


언젠가 나의 달리기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다면 하프마라톤을 쉽게 뛸 수 있는 날도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21km를 넘어 30km, 35km를 연습하고 나의 달리기 능력이 42km도 달릴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나는 드디어 '마라토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이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알게 된 한 가지는 '한계를 뛰어넘는 방법'이다. 무슨 일이든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내가 저것을 할 수 있을까 싶은 한계선이 생길 때가 있다. 그 한계를 뛰어넘는 방법은 연습이다. 할 수 있는 능력치를 점차 늘려가서 결국에는 한계를 넘어서는 것, 그것은 연습뿐이다. 연습이 가진 놀라운 힘을 나는 달리기를 통해 느끼고 있다.


나의 두 번째 하프마라톤은 끝이 났지만 나는 어제의 나를 뛰어넘을 새로운 목표를 가지고 새로운 연습을 시작했다.


 '마라토너'가 되는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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