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챗쏭 Nov 10. 2019

아내를 달리기의 매력에 빠지게 하는 법

'함께 달리는 가족'이 되기 위한 첫 번째 미션, 아내를 달리게 하다.

좋은 것은 함께 해야 한다.

낯 간지러운 자기 자랑이지만, 나는 좋은 것을 대할 때면 늘 가족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혼자서 좋은 곳을 갔을 때도, 어디선가 가족과 함께하지 않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그렇다. 아내와 함께한다면, 아이들과 함께 왔다면, 부모님을 모시고 왔더라면 하는 생각을 곧 잘한다. 운동도 예외는 아니어서 좋아하는 운동도 아내와 함께하고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어 한다.


연애할 때부터 생각해봐도 아내와는 등산을 함께하기도 했고 내가 한참 수영에 빠져 있을 때는 아내도 덩달아 수영을 배웠다. 다른 것은 내가 하는 것을 보다가 쉽게 “나도 한번 해볼까”하더니 달리기만큼은 엄두가 안 났던가 보다. 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지 벌써 2년이 되어 가는데도 단 한번 지나가는 말로도, ‘나도 한번 달려볼까’ 한 적이 없었다. 나 역시 강요하지 않았다. 운동이란 것이 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도 흥미를 느끼지 않으면 오래 지속할 수 없는 것이어서 ‘좋은데 정말 좋은데, 한번 해봐’ 하는 얘기를 밖에 나가서는 몇 번이고 했지만 집에 와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건넨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의지를 드러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뜬금없이 러닝화를 사준 적도 있고 운동복을 주문해 준 적도 있다. 그러고 보니 스마트워치를 사주기도 했다.


이게 다 오늘 같은 날이 오리라는 것을 생각하고 깔아 둔 포석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내를 달리게 만드는 방법


아내는 5km 완주를 이제 500m 앞에 두고는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우와 그동안 달린 것보다 훨씬 빨리 달렸어. 나 최고 기록이야.” 그래 봐야 1km를 7분에 가까운 속도로 달리고 있지만 평소보다 빨리 달리면서도 힘들지 않다는 것에 스스로 놀라워하고 있었다.


아내는 어쩌다가 생애 첫 5km 달리기 대회에서 뛰고 있는 것일까.


평소에 내가 밤에 달리기를 하러 집 뒤의 도로에 나갈 때면 아내는 혼자 걷기라도 한다며 따라나서고는 했다. 몇 번은 조금씩 뛰어보라며, 가볍게 뛰면 다이어트에 훨씬 효과적이라고 하면서 달리기를 해보자고 꼬드겼지만 아내는 힘들다면서 쉽게 넘어오지 않았다. 아내의 손목에 찬 값 비싼 스마트워치는 만보기의 역할만 묵묵히 수행하고 있었다.


아내의 변화가 느껴진 것은 내가 지난 9월 하프마라톤을 준비하던 때였다. 매번 걷기만 하던 아내는 ‘운동을 어떻게 하면 살이 빠질까’ 물어왔다. 하프마라톤을 준비하던 나는 별다른 식이조절 없이도 몸무게가 3~4kg 빠졌고, 주변에서도 살이 빠졌다는 말을 자주 건넸다. 그런 나를 부러워하던 아내의 말이었다.


“조금씩 달리면 돼. 5km씩 20번만 달려봐.”

“그래? 정말 20번만 달리면 살이 빠질까?”


스무 번을 달리면 몸무게가 줄어들 거라고 장담했지만 그건 나도 알 수 없었다. “빠지는 것”은 몸무게가 아니라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몸무게야 먹지 않으면 빠지는 것이고 스무 번을 달리면 몸무게가 빠지기 전에 달리기의 매력에 빠질 테니 말이다. 아내가 숨을 헉헉거리며 몇 번 5km를 달렸을 때, 나는 11월에 있는 5km 달리기 대회에 함께 나가자고 했다. 중학교 1학년 아들도 덩달아 함께 하자고 하는 덕에 나, 아내, 아들, 이렇게 셋이서 5km 달리기 대회에 참가 신청을 했다. 그렇게 신청을 하고 나더니 5km를 달릴 일이 겁이 났는지 아내는 시간 나는 대로 집 뒤의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기록과는 상관없는 일.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아내는 5km씩 꾸역꾸역 달렸다.


드디어 오늘. 아내는 내가 10km를 처음 달리던 그날처럼 설레 보였다. 어제는 긴장된다며 마치 시험을 앞둔 날처럼 일찍 잔다고도 했다. 여의나루 역에 도착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을 보면서 연신 “으, 떨린다.”며 출발선을 앞둔 마음을 나타냈다.


나는 아내와 보조를 맞춰 5km를 같이 달렸다. 출발을 하고도 흥분된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던 아내는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5km를 완주했다. 누가 보면 하프마라톤이라도 완주한 걸로 착각할 만큼 도착점에서 아내는 양팔을 하늘로 뻗으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집에 와서 아내는 몇 번이고 완주의 기쁨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고도 하고 정말 뿌듯하다고 했다. 거리가 얼마든 간에 스스로의 두 발을 내디뎌 차로만 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리를 달려 도착한 그 성취감에 흠뻑 빠져있는 듯했다. 그 기쁨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2년 전 처음 10km를 뛰고 나서의 내가 그랬고 하프마라톤을 처음 완주했을 때 내가 그랬으니 말이다. 내가 함께하고 싶었던 것은 단지 달리기가 아니었다. 정말 함께하고 싶었던 것은 이 기쁨, 이 설렘, 달리고 난 후의 이런 성취감이었다.


나는 슬며시 내년엔 10km를 같이 뛰자고 했다. 1년 동안 꾸준히 달려서 10km를 한번 완주해 보면 더 큰 성취감이 오리라는 말도 건넸다.


아내는 내년 봄에 경주에서 있는 대회에서 첫 10km를 달릴까, 9월 서울에서 첫 10km를 달릴까 묻는다. 아내는 달리기의 매력에 빠진 것이 틀림없다. 작전 성공!!





*이 글은 다음 글과 함께 쓴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직 달리고 있지 않으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