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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yooe Oct 10. 2019

'조커'는 내게 영웅이 아니다

<조커>를 보고


LA 타임스 엔터테인먼트 팟캐스트 ‘THE REEL’에 출연한 영화 전문 기자 소냐이아 켈리(Sonaiya Kelley)는 <조커>를 보는 동안 재밌었지만 출구를 확인해야만 했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그는 자신이 그러한 행동을 한 이유에 대해 덧붙였다. “두려웠습니다.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와 관객들을 죽이려고 시도할 것 같았거든요.”


나도 기자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우선 재밌었다. 와킨 피닉스가 제 몸을 붓 삼아 그려낸 <조커>는 발산하는 연기가 주는 짜릿함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그리고 두려웠다. 기자와 달리 나의 두려움은 극장 바깥에 있었다. 현실에서 아서 플렉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떡하지. 그런 미세한 불안감은 영화를 보는 내내 계속됐다. <조커>는 한동안 내가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저 깊숙이 묻어두었던 ‘별안간 죽음’에 대한 공포를 끄집어냈다.      


출처 = IMDb <Joker>


그 남자 말고 그 여자 입장에서 본다면

소피 두몬드(재지 비츠)에게 감정 이입한 나로서는 아서 플렉(와킨 피닉스)을 조커로도 영웅으로도 부를 수가 없었다. 내게 그는 그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옆집 남자다. 어머니와 단둘이 살며 직업 광대 일을 하는 청년 아서 플렉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어린 딸과 함께 탄 소피 두몬드와 처음 마주친다.      


엘리베이터의 노후함에 관한 가벼운 대화가 오고 간 뒤 아서 플렉은 소피 두몬드에게 호감을 갖는다. 그리고 병적 웃음으로 정신과 약물을 복용 중이었던 그는 곧바로 소피 두몬드를 상대로 연애망상에 빠진다. 아서 플렉의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아서 플렉을 사랑하는 소피 두몬드는 그와 함께 길을 걷고 그의 무대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그의 어머니가 누워있는 병실에 찾아가 슬퍼하는 그를 위로한다.      


출처 = IMDb <Joker>


도저히 보기 힘든 장면들

나는 매일 아침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밥을 먹는다. 매일 보는 저녁 뉴스에 하루도 빠짐없이 무작위적 폭력과 살인 사건이 보도되면서부터 생긴 나의 모닝 루틴이다. 이런 내게 아서 플렉의 행동은 망상이라 할지라도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전반부에 아서 플렉이 출근하는 소피 두몬드를 미행하는 장면과 소피 두몬드가 집 문을 열자마자 아서 플렉이 달려들어 키스하는 장면, 후반부에 아서 플렉이 소피 두몬드의 집에 무단 침입해 소파에 앉아있는 장면은 모두 나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무심히 지나가는 전반부의 두 장면과 아서 플렉이 망상을 인지하는 데에 사용된 후반부의 한 장면에서 소피 두몬드의 안전은 너무나 쉽게 무시된다. 무단 침입한 아서 플렉에게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방에 아이가 있다고 말하는 소피 두몬드의 떨리는 목소리를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물론 이 순간의 소피 두몬드는 아서 플렉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잔뜩 겁먹은 표정을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장르영화의 여성 인물이라면 잠자코 받아들여야 하는 예외적 수난이 아니다. 현실의 평범한 내가 날마다 느끼는 어떤 공포의 재현이다.

   

출처 = IMDb <Joker>


그 여성을 기억하시나요

머레이 쇼에 출연한 아서 플렉이 스튜디오 안에 들어서자마자 여성 패널 닥터 샐리(손드라 제임스)에게 강제로 입을 길게 맞추는 장면은 어떠한가. 아서 플렉은 초반 기선 제압과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할 방법으로 여성에게 모욕감을 주는 방식을 택한다.      


매우 당혹한 표정을 짓는 닥터 샐리를 아무렇지 않게 스쳐 지나가는 카메라는 쇼의 두 주인공, 아서 플렉과 머레이 프랭클린(로버트 드 니로)에게 집중한다. 그리고 이후 아서 플렉이 머레이 프랭클린을 죽이면서 발생한 충격은 앞서 닥터 샐리가 당한 일의 충격을 소멸시킨다. 조커의 강렬한 표정들로 빼곡한 이 영화에서 닥터 샐리의 그때 그 표정을 떠올릴 수 있는 관객이 있을까. 아니 애초에 그런 여성이 등장한다는 것을 알까. 주인공이 전부인 영화에서 나는 자꾸 주인공이 아닌 인물들을 바라본다.      




[chaeyooe_cinema]     

조커 JOKER

감독 토드 필립스 Todd Phillips



스스로를 피해자 중의 피해자라고 느낄 때 탄생하는 굴욕감의 영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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