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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yooe Dec 14. 2019

'결혼 이야기'에는 내년도 남녀 주연상 수상자가 있다

<결혼 이야기>를 보고


스칼릿 조핸슨과 애덤 드라이버가 공연하는 <결혼 이야기>가 결혼(한 남녀가 이혼하려는) 이야기라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엉뚱한 상상을 했다. 부부싸움 중에 감정이 격해진 스칼릿 조핸슨. 단번에 애덤 드라이버의 어깨 위로 올라가 다리로 그의 목을 조르자 애덤 드라이버. 허리춤에서 광선 검을 꺼내는데…… 알고 있다. 불가능한 전개라는 걸. 이 영화는 블랙 위도우(<어벤저스>)와 카일로 렌(<스타워즈>)의 결혼 이야기가 아니니 말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결혼 이야기>


지구에 발붙인 영화, 히어로가 아닌 스칼릿 조핸슨

노아 바움백이 두 번째로 연출한 넷플릭스 영화 <결혼 이야기>는 배우에게 코스튬을 입혀 그린 스크린 앞에 세우는 블록버스터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영화다. 8살 아들을 둔 예술가 부부 니콜(스칼릿 조핸슨)과 찰리(애덤 드라이버)는 거처지인 뉴욕과 니콜의 고향인 LA를 오가며 각자의 변호사와 함께 이혼 소송이란 현실적 절차를 밟는다. 두 주연 배우의 연기는 직업 배우가 아닌 사람도 그들의 역할을 맡고 싶다는 욕심이 생길 만큼 감탄스럽다. 속출하는 대단한 장면들은 배우들의 좋은 합이 만들었다는 감상에 앞서 각자가 잘한 결과물처럼 느껴진다.      


두 배우 중 연기를 보는 즐거움을 좀 더 주는 쪽은 스칼릿 조핸슨이다. 모처럼 편안한 헤어스타일과 복장을 하고 감정을 실컷 표현하는 그는 해방감에서부터 오는 에너지를 관객석에 전달한다. 영화 속 태연히 클로즈업되는 니콜의 얼굴에는 <판타스틱 소녀백서>(2001)의 레베카의 녹녹해 보이지 않는 얼굴과 <사랑도 통역의 되나요>(2003)의 샬롯의 멜랑꼴리한 얼굴이 있다. <결혼 이야기>는 스칼릿 조핸슨이 다양한 표정을 지을 줄 아는 배우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먼저 실력 발휘하는 스칼릿 조핸슨

니콜이 소개받은 LA의 백전백승 변호사 노라 팬쇼(로라 던)와 처음 만나는 장면은 스칼릿 조핸슨이 보여줄 놀라운 연기의 중요한 서막이다. 힐과 재킷을 벗는 것으로 의뢰인의 인생사를 들을 준비를 마친 노라를 보며 니콜은 입을 뗀다. LA에서 뉴욕으로 가게 된 사연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니콜의 긴 독백이 전혀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배우가 악센트를 주는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스칼릿 조핸슨은 대사를 읊는 동시에 소파에서 일어나 걸으며 휴지에 코를 풀고 가방에서 립밤을 찾아 바른다. 사무실에 딸린 화장실에 들어가지만 카메라가 쫒아 가지 않아 화면에서 잠시 사라지기도 하고 돌아와서는 서비스용 쿠키를 집어 먹으며 대뜸 맛있다고 품평한다. (이때 싸주겠다는 대사를 치는 로라 던의 타이밍이 압권이다) 이러한 작은 삑사리들은 마치 마라톤 선수에게 생수를 공급하는 체크 포인트처럼 기능한다. 찰나의 휴지기를 통해 배우와 관객 모두는 숨을 고른 뒤 계속 상황에 집중한다.      


출처 =  <The Hollywood Reporter> How 'Marriage Story' Production Designer Depicted a Divorce Tale


모두가 탈진하는 이 장면

찰리의 LA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무폭력 부부 싸움 장면은 반드시 올해의 장면에 넣어야 한다. 여태껏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 정제된 언어만 쓰던 니콜과 찰리는 대화 도중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예의가 벗겨진 말들을 서로의 가슴에 때려 넣는다.


서로의 장점으로만 종이 몇 장을 채울 수 있는 두 사람은 그만큼 서로의 약점도 잘 안다. 니콜은 찰리가 언급하길 극도로 꺼리는 그의 아버지를 입에 올리고 찰리는 이해를 바라는 니콜에게 나는 매일 눈을 뜰 때마다 네가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되는대로 말한다.      


영리한 배우들은 사람이 극도의 분노 상태에 이르렀을 때 얼마나 바쁘게 자신의 신체를 움직이는지를 안다. 대화 초반 휑한 거실에서 각자의 소파에 앉아 머리카락을 넘기거나(조핸슨) 턱을 괴는(드라이버) 등 손만 조금 쓰던 두 사람은 주방에서 방안으로 자리를 옮기고 목소리를 높일수록 팔을 벌리거나 고개를 젓는 등 적극적으로 상체를 쓴다.      


그리고 마침내 감정을 최고조로 끌어올려 거실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들은 거실을 무대 삼아 휘저으며 위로 껑충 뛰거나(조핸슨) 주먹으로 벽을 치는(드라이버) 등 온몸으로 분노를 표출한다. 이 전쟁은 곰 같은 체격의 애덤 드라이버가 주저앉아 왜소한 스칼릿 조핸슨의 다리를 끌어안으며 끝이 나는데 에너지를 쏟아낸 배우만큼이나 지켜본 관객 역시 탈진 상태가 된다.          


출처 = IMDb <Marriage Story>


그 지경의 애덤 드라이버

스칼릿 조핸슨에게 앞서 언급한 독백 장면이 있다면 애덤 드라이버에게는 후반부 출혈 장면이 있다. 찰리는 아파트를 방문한 양육 평가 조사원이 열쇠 꾸러미에 달린 작은 칼을 의심하자 그것이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 조사원 앞에서 그 칼로 자신의 팔목 안쪽을 긋는다. 그리고 찰리는 피를 과하게 본다.  

    

조사원을 피로 배웅한 뒤 시작되는 찰리의 셀프 수습은 애덤 드라이버 고유의 빠르지 않은 리듬 때문에 애잔한 분위기를 띤다. 출혈 부위를 싱크대 수도꼭지에 갖다 댄 상태로 찬장에서 밴드를 꺼내고 치아와 발을 이용해 키친타월을 잡아 뜯어 지혈하는 전 과정은 분명 신속하게 진행되나 배우의 리듬에 압도되어 모든 동작이 한 박자 늦은 듯한 착각을 부른다. 이러한 엇박자는 나름대로 애쓰지만 점점 더 나쁜 쪽으로 향해 가는 찰리의 현 상황과도 묘하게 일치한다.       


쓰러진 연기 또한 일품이다. 키친타월로 휘감은 팔목을 감싸 안은 채 바닥에 엎어져 꼼짝 못 하는 애덤 드라이버는 침대에 편히 누워 있었던 <패터슨>(2017)의 그와 비교되어 딱함을 더한다. 이때 애덤 드라이버의 눈은 케이오 패를 당한 프로레슬링 선수 그것과 같아 시선을 끈다. 누구든 그 눈을 바라본다면 적어도 앞으로 양육권이 누구에게 갈지 정도는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출처 = IMDb <Marriage Story>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소설가 윤성희를 올해 김승옥 작품상 대상 수상 작가로 뽑은 이유를 다음처럼 요약했다. ‘모든 작가들이 자신만큼 잘 해냈지만 윤성희는 윤성희보다 더 잘 해냈다’ 나는 이 문장을 빌려 <결혼 이야기>의 두 주연 배우에게 지지를 보낸다. ‘스칼릿 조핸슨은 스칼릿 조핸슨보다 더 잘 해냈고 애덤 드라이버 역시 애덤 드라이버보다 더 잘 해냈다’       




[chaeyooe_cinema]

결혼 이야기 Marriage Story

감독 노아 바움백 Noah Baumbach



이제 스칼릿 조핸슨과 애덤 드라이버가 쓸 트로피 스토리가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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