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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yooe Nov 28. 2019

한 번에 보길 권하는 3시간 29분짜리 넷플릭스 영화

<아이리시맨>을 보고


아이리시맨의 정보를 찾아본 사람이 가장 먼저 했을 행동은 짐작건대 러닝 타임 209분을 몇 시간 몇 분으로 바꾸는 작업이 아니었을까 싶다. 3시간 29분. 과한 결과에 놀란 나는 급히 지난 삶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살면서 이 정도의 시간 동안 무언가 한 가지만 계속한 적이 있었던가. 없었다고 결론 내릴 찰나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이 손을 흔들었다. 181분. 쪼개면 3시간 01분. 기억으로 이 영화의 시간은 내게 수월했다. 결국 나는 마블 영화보다 고작 28분 긴 <아이리시맨>을 예매했다. 그리고 그 결정은 탁월했다고 며칠 뒤 미래의 나는 상영관을 빠져나오며 생각한다.        


출처 = IMDb <The Irishman>


실제 사건, 실존 인물

마틴 스코세이지의 최신작 <아이리시맨>은 앞서 개봉한 쿠엔틴 타란티노의 최신작 <원스 어 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2019)처럼 역사상 잘 알려진 실제 사건을 스크린에 끌고 들어온 영화다. 타란티노가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백한 배우 샤론 테이트 살해 사건(1969)을 선택한 것과 달리 스코세이지는 피해자는 사라지고 가해자는 알 수 없는 지미 호파 실종 사건(1975)을 선택했다.


그러나 <아이리시맨>에는 미제 사건의 범인이 등장하며 심지어 그자가 영화의 주인공이다. 이름은 프랭크 시런. 직업은 러셀 버팔리노(조 페시)가 보스인 거대 마피아의 조직원이자 청부 살인 업자. 역시 실존 인물이며 무엇보다 그는 아일랜드계 미국인 즉 아이리시맨이다.   

  

출처 = IMDb <The Irishman>


다시, 로버트 드 니로

지미 호파를 죽인 건 나였다는 프랭크 시런의 고백이 담긴 찰스 브랜트(프랭크를 변호한 적이 있는 변호사 출신 작가다)의 논픽션 「I heard you paint houses」(2004)를 읽고 마틴 스코세이지에게 영화화를 제안한 사람은 다름 아닌 프랭크 역의 로버트 드 니로다.


43년생인 그는 최근 10년간 제니퍼 로렌스, 앤 해서웨이, 와킨 피닉스 등 할리우드 젊은 배우의 대표작에서 아버지 또는 유사 아버지 롤을 맡아 서포트에 충실해 왔다. <택시 드라이버>(1976)의 불끈하던 청년이 이제는 의자에 누운 듯 앉아 있는 모습이 잘 어울리는 70대가 된 것이다. 그런 그가 <카지노>(1995) 이후 약 24년 만에 찍은 스콜세이지 장편 영화의 제1 주인공으로서 뉴욕 곳곳을 뛰어다닌다. <아이리시맨>에서 그는 오랜만에 로버트 드 니로가 아니면 안 되는 연기를 보여 준다.     


출처 = IMDb <The Irishman>


그가 혼자가 되어 가는 과정을 빠짐없이 지켜보라

<아이리시맨>은 시청자가 얼마든지 영화의 시간을 멈출 수 있는 넷플릭스 영화이지만 되도록 통으로 보길 권한다. 이 영화의 페이소스는 노인 프랭크 시런의 회고 내러티브에 따라 그의 과거를 한 번에 훑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청자는 오프닝에서 만난 양로원의 휠체어 탄 노인과 후반부에서 재회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다. 한 사람의 삶이 졸여지고 그을음이 앉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스코세이지는 기다리는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할 능력이 있는 감독이다. 프랭크가 옛날 옛적에로 입을 열면 스코세이지는 들은 것 중에 쓸 만한 것을 추려 순서를 결정한 뒤 자신의 스타일을 입혀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시청자의 작심을 요구하는 부피를 가진 작품이 나왔지만 이 영화에서 불필요한 숏을 찾기 힘들다. 따라서 러닝 타임 209분은 <아이리시맨>이 어쩌다 보니 길어진 영화가 아니라 반드시 그만큼이 시간이 필요한 영화라는 증거가 된다.


출처 = IMDb <The Irishman>


스코세이지는 문을 열어 두었다

<아이리시맨>은 살짝 열린 양로원 1인실 문 사이로 조그맣게 보이는 프랭크 시런의 모습으로 끝난다. 마지막 장면에서 내가 주목한 건 프랭크가 아닌 열린 문이다. 그 문은 그냥 열린 것이 아니다. 의도적으로 완전히 닫히지 않는 상태에 놓인 것이다. 프랭크가 자신을 찾아온 사제에게 나갈 때 문을 조금만 열어 두라고 부탁했고 사제가 그 부탁대로 행동한 결과다.

    

마틴 스코세이지는 왜 문을 완전히 닫지 않은 채로 영화를 끝냈을까. 나는 그것이 변화하는 영화 산업에 맞추어 어쨌든 열린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겠다는 감독의 태도처럼 느껴졌다. 스코세이지는 60년대에 영화를 시작하고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대표로 호명되는 감독이다. 그런 그가 지난 4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대로 마블 영화 같은 영화는 시네마가 아니기에 그런 영화를 만들 수는 없겠지만 이미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넷플릭스 영화가 추가됐다.


방 안에 있는 프랭크 시런은 틈새로라도 바깥세상을 내다볼 것이고 밖에 있는 자 역시 오가며 그의 모습을 들여다볼 것이다. 어쨌거나 열어 두면 안과 밖은 단절되지 않고 연결된다. 마틴 스코세이지와 지금의 관객도 그렇게 연결될 것이다.




[chaeyooe_cinema]

아이리시맨 THE IRISHMAN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 Martin Scorsese



성호를 긋고 묵념. 그러나 아직 문을 닫을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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