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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yooe Dec 25. 2019

'백두산'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았어야 했다

<백두산>을 보고



<백두산>의 청와대 민정수석 민유경(전혜진)은 백두산 폭발을 막겠다는 의지를 끝까지 굽히지 않는 인물이다. 본인이 직접 외쳤듯 그는 “이 나라에 미련이 많아서” 이 나라를 포기할 수 없다. 민유경처럼 국가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도 미련을 두고 있는 것이 있다. 한국 상업 영화다. 만족감보단 아쉬움을 주로 주지만 ‘한국 영화’이기에 포기할 수 없다.      


이해준, 김병서 감독이 공동 연출한 <백두산>은 <신과 함께> 시리즈를 제작•투자한 덱스터 스튜디오의 신작으로 순 제작비로만 260억 원이 든 하반기 대표 한국 상업 영화다. (참고로 <신과 함께-죄와 벌>(2017)의 순 제작비는 약 180억 원이다) 대작이니만큼 거대하고 확실한 재미를 주는 동시에 지정 등산로를 벗어나는 모험은 하지 않는다. 예상한 길을 가는 <백두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나는 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백두산>


한반도의 운명에 관심 없는 한국 재난 영화 주인공

<백두산>은 폭발물 처리 요원 조인창(하정우) 대위의 운수 좋은 날로 시작한다. 그는 행복한 남자다. 오늘은 바라던 전역 날이며 아내 지영(배수지)이 출산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 시작 6분 만에 조인창은 불행한 남자가 된다. 백두산 폭발의 여파로 한국이 재난 상황에 빠지자 정부가 추가 폭발을 막기 위한 작전을 수립하는데 그 작전에 차출되는 날벼락을 맞기 때문이다. 심지어 작전 장소는 북한이다. 조인창은 울며 겨자 먹기로 만삭의 아내와 떨어져 부대로 복귀한다.              


그저 집에 빨리 가고 싶은 남성에게 재난 영화의 영웅 역할을 맡겼다는 점에서 <백두산>은 흥미롭다. 조인창은 자신이 리더로 있는 백업팀이 비행기 추락으로 전원 사망한 알파팀을 대신하게 되자 울기 직전의 표정을 짓는데 그것은 그가 작전 수행 내내 짓는 표정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조인창은 임무의 무게를 묵묵히 견디는 운명론자가 아니다. 하기 싫은 티를 팍팍 내고 심지어 접선한 북한의 리준평(이병헌)을 붙잡고 너무 힘들다며 징징대기도 한다. 조인창은 또다시 울며 겨자 먹기로 사격 훈련을 해본 지 한참 된 팀원들과 함께 주춤주춤 북한 땅을 밟는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백두산>


이 영화는 계획이 다 보이는 구나

그러나 <백두산>은 전역 대기자가 부대 복귀한다는 초반 설정을 제외하면 놀랄 거리가 없는 영화다. 극 중 예상된 백두산 폭발은 네 차례인데 영화 시작 6분 만에 일어난 1차에서 2차, 2차에서 3차, 3차에서 막은 4차 폭발의 시간 간격은 35분에서 40분 사이로 일정하다.


완벽하게 계산된 시간대 안에서 중심인물은 준비한 유머와 눈물을 꺼내고 만나야 할 사람을 때마침 만난다. 예컨대 큐티쁘띠란 단어는 유행어로 만들겠다는 듯 반복해서 코믹한 상황을 만드는 데 사용되고 웃음 포인트에서 눈물 포인트로 바뀌는 레몬 사탕의 활용법 역시 계산적이다. 관객인 나는 어디선가 시간을 재는 타이머 소리가 들리고 관객이 웃고 울어야 할 지점이 표시된 그래프가 보이는 순간부터 집중력을 잃고 만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백두산>


결국 아버지를 위하여

<백두산>이 주려는 감동은 리준평의 마지막 대사 “가서 아버지 하라”로 요약할 수 있다. 예비 아버지(조인창)와 아버지 노릇을 못 한 아버지(리준평)를 짝지은 영화는 후반부에 폭발적인 가족애 피날레를 노리지만 안타깝게도 분위기는 달아오르지 못한다. 일찍부터 아버지 되기에 심취한 두 남자는 그것에 대한 진부한 대화를 자주 나누고 영화는 그들이 지켜야 할 가족이 있는 가장임을 과도하게 확인시킨다.

 

그중 리준평과 딸 순옥(김시아)의 상봉 과정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 찾듯 정확히 이뤄져 감격하기에 민망하다. 이 장면에서 순옥은 리준평의 감춰진 부성애를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만 쓰여 생명체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순옥이 실어증에 빠진 설정은 아이를 더 가련하게 만들어 부성애를 더 자극하겠다는 의도가 읽혀 지켜보기 괴롭다. 순옥은 정말 숨을 쉬는 사람일까. 순옥의 클로즈업 숏을 보면서도 나는 믿기 힘들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백두산>


평소 쥐 죽은 듯 조용한 관객인 나는 <백두산>을 보며 몇 차례 목 안의 소리로 중얼거렸다. 전부 애원조였다. “제발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 이때는 너무나 간절한 나머지 바지를 움켜잡았다. 카메라가 순옥의 얼굴 정면을 처음으로 잡은 장면에서였다. 이런 부탁을 우리나라 상업 영화를 볼 때면 종종 하게 된다. 2020년에는 덜 조마조마하며 관람하고 싶다. 나는 아직 미련 많은 관객이다.




[chaeyooe_cinema]

백두산 ASHFALL

감독 이해준, 김병서



바로 눈앞에서 웃음, 감동, 아버지 기폭 장치를 정확하게 작동시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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