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를 보고
※ <반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반도>에는 네 개의 결정적인 신파적 장면이 있다. 극 초반 주인공 한정석(강동원)이 누나와 조카를 잃는 장면과 극 후반 그의 매형(김도윤)과 김 노인(권해효)이 각각 죽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에 민정(이정현)이 구사일생해 두 딸과 재회하는 장면이 여기에 속한다. 언급한 장면들은 안 그래도 감정적 발열이 있는데 비장한 음악과 슬로모션의 엄호를 받아 지글지글 끓어오른다.
한국 상업 영화의 신파를 잘 넘기지 못하는 평소에 나라면 분명히 이 장면들에서 분노로 입술을 깨물거나 낯 뜨거워 두 주먹을 꽉 쥐었어야 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나는 비교적 수월하게 이 장면들을 넘어갔다. 왜 나는 <반도>의 신파적 장면이 덜 거슬렸을까. 이번 글은 그 궁금증을 해결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좀비야 어떻든 상관없이
<반도>는 타이틀이 뜨기 전 <부산행>(2016)의 당일 한정석이 탈출선으로 가던 중에 만난 민정 가족을 도와주지 않고 지나치는 시퀀스로 시작한다. 여기에서의 두 숏에 사로잡혔다. 거절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면서도 개운찮은 표정을 한 한정석의 얼굴 숏과 그런 동생을 뒷좌석에서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쳐다보는 누나(장소연)의 얼굴 숏으로 나는 한정석이 자기 시련에 빠지는 인물임을 눈치챘다.
초장에 한정석이란 캐릭터가 확실히 각인된 터라 이후 나는 이 몸집 큰 영화를 그의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로 보았다. 그를 중심으로 감상하다 보니 재난 블록버스터의 신파적 장면도 그가 난감한 상황에 부닥친 주인공으로서 겪어야 할 필수 불가결한 미션으로 받아들여졌다.
샛길로 빠지니 달리 보였다
탈출선 객실 안의 누나가 좀비에 물린 조카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상황은 한정석에게 어떤 결정을 내리게끔 하는 시험대가 된다. 당장 우리 가족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기에 민정의 간청을 거절했었던 그는 이번에도 좀비 확산을 막기 위해 누나를 그 안에 두고 문을 봉쇄하는 상식적인 결정을 한다. 그러나 한정석의 연이은 결정은 똑같이 위기에 처한 사람과 우리 가족을 포기한 결과이기도 하기에 그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여기에 매형의 말마따나 자신이 가족을 구할 시도도 제대로 해보지 않고 그러한 선택으로 도피했다는 의심이 들면서 그는 좀비와 다름없는 상태로 4년을 보낸다.
후반부 매형의 죽음은 한정석이 비상식적인 결정을 내린 뒤 벌어진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위성 전화를 가져오기 위해 민정과 함께 631부대 기지로 잠입한 한정석은 매형이 그곳에 잡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를 구하려고 시도한다. 이 시도는 원래 계획이 실패할 수도 있으며 죽을 수도 있기에 분명 비상식적이다. 그렇기에 상식적인 한정석이 할 만한 결정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렇게 한다. 그가 달라졌다는 뜻이다. 한정석이 상식의 세계에서 비상식의 세계로 뛰어들었다는 것을 나는 매형이 죽는 장면에서 확인했다.
김 노인의 죽음은 한정석의 결정과는 별개지만 그에게 어떤 자극을 준다는 점에서 쓸모가 있다. 결과적으로 가족을 구하지 못한 한정석과 달리 김 노인은 가족과 진배없는 유진(이예원)을 목숨을 바쳐서라도 구한다. 추측건대 김 노인의 성공은 실패해온 한정석이 마지막 미션에서 용기를 내는 데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슬로모션으로 강조된 민정과 두 딸의 재회는 한정석의 결단으로 가능했다는 걸 생각하면서 보면 마음이 좀 누그러진다. 한정석은 저 멀리에서 민정이 좀비를 유인하는 동안 준(이레)과 유진을 UN군 헬리콥터에 태워 이 땅에서 속히 뜨는 상식적인 결정이 아닌 민정에게로 달려가는 비상식적인 결정을 내린다. 4년 전에 누나를 포기했었던 그는 4년 뒤에 민정은 포기하지 않는다. 매형을 구하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했었던 그는 민정을 구하려는 시도에는 성공한다. 이제 그는 전보다 편안해질 것이다. 과열된 음악을 들으며 클로즈업된 오열하는 모녀의 얼굴을 내가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건 한정석의 안도하는 표정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chaeyooe_cinema]
반도 PENINSULA
감독 연상호
좀비 국가 거주자들의 생존 노하우와 생활상이 주는 진진함이 신파의 습격을 버텨 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