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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목 Jan 05. 2023

우리의 김장

에세이_사랑할 수밖에 없는 일상

10월인가, 11월인가?

엄마는 분명, 올해 김장은 없다고 했다.

아빠가 어디선가 맛없는 김치를 잔뜩 받아온 날이었을까?

난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며 환호했다. 

    

‘올해 김장은 없구나, 아침부터 손이 시릴 일도 목과 어깨가 아플 일도 없겠구나!’     


김장하는 날 특유의 차가운 공기와 

실은 아무도 원치 않는데, 이르게 부지런함을 떨어야 하는 것이 싫었다.

더욱이 수육을 먹지 않게 된 이후로, 

종갓집 김치가 생각보다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김장에는 어떠한 매력도, 위안도 느낄 수 없었다.

흰쌀밥에 갓 담근 빨개서 고운 김치는 여전히 솔깃하기는 하지만 서도,

우리 가족이, 내가, 김치를 먹지 않고 살기는 어렵겠지만 서도.     


응원했다.

김장을 하든, 제사 음식을 준비하든, 장을 담그든,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스스로에게, 가족들에게 화를 내며 결국 모두를 힘들게 하고는, 

노동에 지쳐 앓다가 드러눕고 마는 엄마가 신경 쓰였다.

그래도 엄마는 망각한 듯, 인생의 숙명을 따르는 듯, 

다시 김치를 담그고 전을 부치고 장을 담갔다.

그러던 중 작년부터는 기쁘게도 차례와 제사용 전을 부치지 않고

작은엄마가 알아본 업체에서 주문하는 것에 동의한 엄마다.

(물론 친할머니의 최종 컨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엄마는 자연스레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벗어나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타고난 것인지, 싫어도 맏이 역할을 해야만 했어서인지, 

맏아들과 결혼했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 하나가 아니라 온 세상이 부추긴 것일 수 있겠다. 

아무튼 억울하게도 그것을 똑 닮은 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어 부러 그 답답함을 세게 비난하면서도 

결국은 엄마를 이해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큰 도움은 못 되지만 결국은 엄마 옆에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싫은 티 내는 것을 적극적으로 숨기지는 않으면서...) 

11월의 마지막 주, 늘 내 생일쯤 치러졌던 원래의 김장이 평안히 지나갔다.

     

문제는 12월 셋째 주였다.

간만에 송년회 일정을 잡느라 들뜬 내게 

가족들은 금요 저녁 김장 일정을 알려왔다.

알고 보니 엄마의 "올해 김장은 없다!"는 말에 

진심으로 환호한 자는 나밖에 없었다.

모두 당연히 김장은 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홧김에 나온 비난의 말이었다.

엄마는 시중에 나온 김치를 싫어했고, 아빠는 그 김치를 잔뜩 받아왔다.

엄마는 직접 담그지 않은 맛없는 그 김치를 참을 수 없어, 

집에서는 입맛이 예민해져 싱거운 것을 찾으면서 

밖에서는 자극적인 것을 잘도 먹는, 

장 관리가 필요한 아빠에게 화가 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남은 그 김치를 버렸고 김장을 계획했다.     


“그걸 정말 믿었니?”     


동생은 말했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나도 통보를 했다.     


“그날 송년회 있어서 늦어. 몰라 난 빼고 해.”     


작년에는 동생이, 재작년에는 아빠와 동생이, 

각각 사정이 있어 김장을 빼먹었던 것이 떠올랐다.

‘나도 빼먹을 수 있는 거 아니야?’ 하다가도 

간혹 찝찝함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정말 김장하는 날에 없어도 되는 거겠지?’

곧 평소보다 이른 부지런함이 필요한 날이 왔다.

금요 김장의 전날 유난히 추운 밤, 

마늘과 파를 다듬고 생강과 마늘을 갈고 무와 갖은 채소들을 씻었다.

김치를 담을 통과 버무릴 대야도 씻었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알려준 대로 양념장을 만들었다.

나는 마늘만 다듬고도 체력이 고갈되어 투덜거렸다.

엄마는 그럼 늙은 엄마, 아빠가 해야 되겠냐고 나무라면서도 

내 자식들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며 

친할머니의 자식에게 조금 더 일을 할당하였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뿌듯함과 찝찝함을 동시에 느끼며 잠들었다.     


하지만 ‘나’를 뺀 김장은 없었다.

그날따라 귀가가 늦는 가족들이 많아 김장은 토요일 아침으로 미뤄졌다.

어두운 집에 혼자 있던 엄마는 먼저 내게 연락하였다. 

엄마는 이미 서운한 상태였다.     


“엄마, 삐졌어? 그냥 내일 나까지 있을 때 같이 하면 안 돼?”

“어떻게 다들 그럴 수 있어? 됐어, 넌 뭐 미리 약속 있다고 했으니까. 가야지 뭐.”

“아니, 엄마, 그냥 내일 사람 많을 때 같이 하자니까.”

“몰라, 너무 늦지는 말고.”     


엄마와의 통화로 찝찝한 구석이 더 커졌지만 

나는 그것을 억지로 줄이며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이제 조금은 그것과 떨어져 있고 싶었다.

집에 가면 김장이 끝나 있기를 바라며,

앞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적당 선의 죄책감만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아주 늦게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 다짐들은 다소 이른 것이었다.

고맙게도 내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게 

아빠를 제외한 가족들은 내일의 김장을 기약하며 

모두 잠이 든 상태였다.

아빠는 늦었지만 멀쩡한 딸을 맞이하며,

내일의 김장을 알리고는 잠에 들었다.

그 딸은 ‘그래 다행이야’라는 마음 반과 

‘이번에도 실패’라는 마음 반을 가지고 잠이 들었다.      


시작부터 우당탕탕 올해의 김장은 조금 새로웠다.

‘우리 집 김치’라는 것을 선물한 외할머니 없이 한, 

네 번째 김장이었다.

세 번째까지 엄마는 한 해 우리 집 식탁을 책임질, 

먹성 좋은 가족들에게 좋은 돌려 막기 찬거리가 되어 줄 

김치를 망칠까 봐 초긴장의 상태에 있었다.

첫 번째 김장에서 할머니는 아픈 몸을 이끌고

괜찮은 척 양념을 한 솥 만들어 날랐다. 

두 번째, 세 번째에 엄마는 배추 몇 포기에 양념은 어느 정도가 필요한 지부터 

재료가 신선한지, 좋은지를 할머니에게 직접 가서 확인받았고 

할머니의 레시피가 담긴 포스트잇을 폰 케이스 지갑에 소중히 넣어 

틈나는 대로 그것을 확인하고는 했다. 

마치 모든 것이 처음인 양 세상을 대하는 엄마가 작은 아이 같아 낯설었다.

하지만 이번 네 번째 김장을 맞이하며 엄마는 조금 여유가 생겼다.

12월 중순 다소 늦은 시기여서 그랬을까?

청각도 갓도 주문 취소가 되어 

이전 같지 않은 김장이 시작되었다.

아빠는 허리가 아프니 바닥이 아니라 식탁에 신문을 깔고 하자고 했고

자꾸 할머니와의 김장을 되새기며 

찹쌀풀을 넣어야 되지 않겠냐, 배를 갈아 넣어야 되지 않겠냐 말이 많아졌다.

그 말들은 모두의 무시와 말림에 금방 사라졌다가 

이내 아빠의 고집스러운 행동으로 옮겨졌다.

아빠는 굳이 하나밖에 없는 배를 깎아 갈아 넣었다.

엄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배 한 조각을 빼 오더니 딸들에게 먹였다.

엄마는 이런 대장이 되고 싶지는 않았겠지만 

확실히 김치 대장이 되었다.


"이번에 무는 채 썰거나 갈지 말고 큼직큼직하게 넣자!" 

"양념은 요 정도 남겨 깍두기를 담그든 갓김치를 담그자!"

"양념의 속은 요렇게 넣어 버무려라!"


새로운 대장이 된 엄마는 

절인 배추는 생각보다 짜고 양념장은 많이 남아서 당황한 듯했지만 

전보다는 아무렇지 않은 척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

우리 모두가 그랬다.

갓 담근 김치는 막 맛 보니 이전과 같은 맛이 나는 것 같았다.

딱 우리 집 김치였다.     

재빨리 김장의 흔적을 치우고는 가족 나들이 갈 준비를 하였다.

수육 대신 후다닥 베이글을 먹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4인 가족이 되어 아빠의 낡은 차를 탔다.

이 차는 언제 바꿀 것인가, 무엇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생산성 없는 토론을 하면서...

마침 옆에 지나가는 벤츠를 보며, 

아빠는 돈 많은 지인이 이번에 벤츠 3대를 뽑아 

자기, 아내, 딸, 이렇게 한 대씩 나누었는데 

사위에게 서운한 소리를 들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그 사위를 비난하다 

그 지인이 생각보다 훨씬 돈이 많고 

그 사위가 2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한 오래된 사위라는 이야기를 듣고 

"서운할 만하네." 했다.     


‘아빠가 해주는 그런 기억으로 평생을 사는 거야.’     


아빠는 우리에게 서울의 아파트도, 

벤츠도 사주는 아빠를 꿈꾸며 열심히 차를 몰았다.

하지만 그날의 아빠는 충분했다.

같이 서서 김장을 하고, 

동물원 나들이에서 ‘배설물 주의’라는 푯말을 보지 못하고 

계속 원숭이를 쳐다보다 원숭이 똥을 맞고도 

가족들에게 씩씩 분풀이를 하거나 

화가 나 도중에 분위기를 망쳐버리지 않고, 

(와중에 엄마는 그래도 내 자식이 아니라 친할머니 자식이 맞아 다행이라는 말을 덧붙이는 모성애를 보였다.)

말로만 듣던, 한강에 있다는 라면 기계에 처음 라면을 끓여 맛있게 먹고, 

긴 고드름 두 개를 따 머리에 붙이며 포즈를 잡고, 

고드름 하나를 딸에게 건네며 칼싸움을 시작하고, 

호랑이가 보고 싶다는 딸의 소원에 동행해 주는 

그날의 아빠는 충분했다.

실은 넘쳤다.

그 모든 것을 지켜본 엄마와 나에게 김장은 없었다.

김장은 하지 않은 것처럼 쉽게 행복해졌다.


이번 김장에서는 청각과 갓이 없었고 

김장 후 수육이라는 점심 식사의 관례는 사라졌다.

우리에게 더는 새로운 것이 없을 줄 알았는데... 

빠르진 않지만 뭐든 새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족은 

날 꽉 다시 붙들어 준다.

바닥이 아니라 식탁에서 담근, 

청각과 갓이 없는, 무가 큼지막한 우리 집 김치. 

새로운 우리 집 김치가 익어가고 있다.

난 그게 어떻든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맛이라는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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