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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덩기덕희덕 Dec 14. 2022

나아가다

다음으로 가기 위한 여정

6 sword

배가 강을 건너가고 있다.

모포를 쓴 사람과 아이가 타고 있고, 뱃사공이 노를 젓고 있다.

왼쪽 강물은 잔잔하나 오른쪽 강물은 물결이 치고 있다.

그럼에도 배는 흔들림없이 나아가고 있다.

저 너머 보이는 곳은 풍요롭지는 않으나 평화로운 느낌이다.


타로카드의 6 sword는

어려운 상황이었던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며칠 전 한 워크숍을 다녀왔다. 글쓰기 프로그램이었는데 참여자들에게 타로카드 하나씩 뽑아보도록 권했고, 그림에서 느껴지는 감정, 생각 등을 다른 참여자들과 나눴다. 나는 이 카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배에 탄 두 사람의 어깨가 축 떨어져있고, 여섯 개의 칼이 배에 꽂힌대다가 전체적인 색감이 칙칙해 우울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림을 꼼꼼히 들여다보니 양쪽의 다른 물살임에도 중심을 잡고 배가 잘 건너가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너머 보이는 곳도 그리 척박해보이지 않았다. 


타로카드를 볼 줄 알았던 한 참여자는 현재 하는 일에서 다른 일로 이동하는 모습으로 험한 경험이었지만 지금도 지치고 힘든 상태이겠지만 감수하고 나아갈만할 정도로 미래가 낙관적이라고 풀이해주었다. 그냥 여러카드 중에 하나 쑥 뽑은게 지금 내 상황을 딱 반영한 카드여서 신기했다. 


10년동안 소속되어 있던 심리정서사업이 곧 종료될 조짐이다. 난 코로나로 사업이 진행되지 못하면 벌어질 일을 미리 경험하고, 개인컨텐츠를 개발하며 대비를 하고 있다. 당장 사업이 종료된다해도 하나 이상할 것 없으니 일단 그 일을 유지하며 병행하되 다른 분야의 일도 시도하는 중이다. 예술치료에서 미술교육으로 확장하여 일반 성인들을 위한 자기돌봄 치유작업을 유튜브에 소개하고, 드로잉수업과 재료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물론 불안한 현실에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고, 후달거리는 다리를 손으로 부여잡고 겨우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유능한 뱃사공 덕에 일은 큰 막힘없이 진행되고 있다. 아직은 능숙하지 않아 물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해 힘을 줘야 할 때와 빼야할 때를 놓치지만 말이다. 그러나 내 감정은 여전히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 가운데에 있다. 사람들의 가벼운 농담에도 마음이 요동친다. 이럴 정도는 아닌데 무엇이 문제일까..


전국에 있는 아동청소년에게 심리정서지원을 하기 위한 치유사업이라 각 도시에 치료사가 배치되어야 했다. 다른 지원자가 선택하고 남은 곳이 원주였는데 나는 대학원 졸업 후 빨리 자리를 잡고 싶은 마음에 덜컥 짐을 싸서 내려갔다. 일년 후 다른 지역에 치료사가 필요하다고 해 또 짐을 싸서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도 1년을 일한 후 서울로 올라왔다. 무슨 정신으로 그렇게 일에 몰두했었는지.. 물론 그덕에 경험을 많이 쌓았지만 그에 대한 보상은 없었다. 코로나로 일이 중지되었을 때 내 손에는 아무것도 있지 않았다. 무엇을 무기삼아 다시 일을 시작해야할지 막막했다. 그럼에도 일이 주어질 때마다 변동되는 상황에 즉각 적응하기 위해 애썼다.


지금 나에게 유능감을 느끼는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겠다. 내 일을 다시 찾기 위한 용기와 도전이 만들어낸 소소한 결과들이다. 그래서 그런 소식을 듣는다해도 괜찮을 줄 알았다. 이성적인 판단과 행동력이 있으니 괜찮을거라 싶었지만 내 감정은 그러지 못했다. 배를 탄 모포를 쓴 사람과 어린아이가 생각났다. 그들을 위로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긴 시간동안 잃어버린 것에 대한 상실감과 얻지못한 것에 대한 공허함을 애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일단 내가 원인을 찾은 것만으로도 숨이 쉬어진다. 곧 오랜시간 함께 한 동료들과의 만남도 기다리고 있다. 재료가방을 들고 어디든 찾아갔던 크고 작은 학교들이 있던 부산도 다녀올 계획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이 마음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 하나하나 애도를 위한 의식을 치룰 계획이다. 그래야 다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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