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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덩기덕희덕 Jan 16. 2024

인생74

30년 전 나에게..

요즘에 보고있는 유튜브채널이 있다. 기안84가 진행하는 ‘인생84’이다. 여러 꼭지가 있지만 그 중 ‘관찰84’에 꽂혀서 알고리즘에 걸리는대로 보고있는 중이다. 회사직원을 포함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을 하루동안 쫓아다니며 담아내는데 기안84의 투박하지만 솔직한 질문이 그들에게 다가가는 장면을 보면 마음이 참 따뜻해진다. 어떻게 이런 대상자들을 선정했을까.. 흥미롭게 보고 있는데 오늘 아침에 본 컨텐츠는 ‘재수생’이었다.


재수생 중 미대재수생, 그것도 지방 기숙학원에서 준비하는 재수생이었다. 미대재수생들을 위한 기숙학원은 잘 알려져있지 않다. 1년간 입시를 위한 수감생활하기 딱 좋은 곳이다. 나도 그 곳에서 재수생활을 했다. 영상은 나를 경기도 광주시 모처에 있던 학원으로 순간이동을 시켜줬다. 


1993년은 나에게 처음으로 있었던 절망적인 한 해였다. 때에 딱 맞춰 엄마도 가출을 감행해 더욱 더 암울했다. 마침 도망갈 곳이 필요했는데 학원을 같이 다니던 친구가 기숙학원을 간다기에 나도 바로 따라나섰다. 기숙학원 생활은 너무나도 단순했다. 7시 기상 - 간단체조 - 아침식사 - 교과수업 - 점심식사 - 실기수업 - 저녁식사 - 자율수업으로 짜여있었다. 절망감에 빠진 나에게 그만큼 좋은 루틴은 없었다. 그리고 복잡한 집안문제는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아서 더욱 입시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격주에 한번 휴가를 나갈 수 있었다. 셔틀버스로 강남역에 내려주면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왔다. 할머니가 살림을 하셨고, 아빠는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하셨다. 큰오빠와 작은오빠는 모두 지방에 있었다. 지금 다시 돌아보니 가족이 처음으로 해체된 시기였다. 당시 키우던 강아지 샐리마져도 다른 집에 보내졌다. 집에가면 좋을 일이 하나도 없었다. 집에가서 짐을 풀고, 밤에는 재수하고 있던 친구를 만나 투다리에 갔다. 친구와 나는 담배를 처음으로 사서 나눠피며 시름을 달랬고, 내 주량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겠다는 포부로 술을 퍼마셨다. 그리고 홍대에 있는 락카페에 가서 ‘The Twilight Zone’에 몸을 맡겼다. 그러고나면 다시 학원에 돌아갈 마음이 생겼다.


그때처럼 공부를 열심히 했던 적이 없었다. 지금은 그래야된다고 덤덤하게 말하는 인생84에 나온 그 학생이 나처럼 느껴졌다. 미대로 유명한 홍대를 가고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냥 성적에 맞춰서 가능하면 서울에 있는 학교를 가고 싶었다. 아주 운좋게도 수능 1세대가 되어 시험을 두차례 치뤘다. 둘 중 하나 좋은 점수를 선택하고, 실기능력에 맞춰 대학을 정해야 했다. 1차 시험 점수는 나쁘지 않았다. 생각보다 잘 치뤘지만 2차 시험도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었다. 2차 시험을 내려놓고 실기에 조금 더 매진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다른 학교를 지원했으면 어땠을까.. 다른 과를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만약에 그랬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


미술은 ‘나에게 그냥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림그리는 것을 좋아했기에 반복해서 그리는 소묘와 구성이 힘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림이 늘지 않는다고 고민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실기실력은 언제나 상위권이었다. 그런 내가 입시에서 뚝 떨어졌으니 제대로 현타를 맞은거다. 입시는 운이라고 하지만 진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순간이 나에게 왔다. 재수시설의 전과 후의 나는 많이 달라졌다. 재수로 인해 성실함과 책임감을 얻었고, 불안이란 선물을 받았다. 이 세가지는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큰 동력이다. 


기안84는 재수생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한다. 답답하지는 않은지.. 대학가면 뭘 가장 하고 싶은지.. 장래희망은 무엇인지.. 엄마 밥은 그립지 않은지.. 그 질문들을 당시의 나에게 누군가가 해줬으면 어땠을까.. 눈물이 왈칵 났다. 진로를 선택하는 것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아무도 진지하게 의논상대가 되어주지 않았다. 미술이 좋아 입시학원에 갔고, 졸업 후 취업을 해야해서 디자인과를 갔다. 이래저래 하다보니 미술치료를 배웠고, 지금의 내가 있다. 


여전히 막막한 것이 있다. 내가 과연 무엇을 하고 싶은지.. 매번 되물어도 답이 신통치 않아 이 순간에 집중해 나다운 것을 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 과정의 한 축을 이루고 중심을 갖게 하는 것은 ‘나다움’이다. 미술치료사, 미술교육, 강사, 작가 뭐가 됐든 처음 미술이 좋아서 시작했던 것처럼 너무 애쓰지 않아도 나에게서 흘러나오는 창작활동을 하고 싶다. 


30년 전으로 돌아가 재수생인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희덕아, 너에게 꾸준함, 성실함, 책임감이 있어 사람들이 널 찾는단다. 그리고 원치 않는 불안감은 시시때때로 우울과 외로움을 주지만 그 덕에 넌 항상 호기심을 갖고 경험하려고 하지. 나쁜 것만은 아니더라구. 그러니 마음을 좀 놓아도 돼. 앞으로 재미있고, 신나는 일들이 잔뜩 기다리고 있어. 넌 꽤 괜찮은 삶을 살게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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