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물의 실제보다 자신이 믿는 대로 볼 때가 많다. 프랑크푸르트에는 라인 강이 아니고 마인(Main) 강이 있지만 우리 집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모두 라인 강인 줄 안다. 라인 강은 50km쯤 떨어진 마인츠에 가야 볼 수 있다.
뤼데스하임의 포도로 리즐링 와인이 만들어진다
나는 지은이가 방문했을 때, 라인 강을 처음 보았다. 지은이는 넷째 시누이 딸로, 그때 다니던 직장을 퇴직하고 생애 첫 유럽여행에 나섰다. 유럽 여행의 관문 프랑크푸르트로 들어와서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일정이었다.
서른 살이 넘어서 처음 하는 유럽여행! 가고 싶은 곳이 얼마나 많았을까. 자연히 우리 집에서 머무는 일정은 최소로 줄이고, 미술 전공자답게 이탈리아에서 보내는 날이 많았다.
비탈진 언덕의 포도밭은 햇볕을 잘 받는다
지은이가 우리 집에 머물 시간은 사흘이 채 되지 않아 볼 곳을 엄선했다. 프랑크푸르트 시내와 하이델베르크(Heidelberg)를 다녀오고, 반나절은 뤼데스하임(Rudesheim)에 갔다. 그곳은 프랑크푸르트 근교에 있어서 당일치기로 인기 있다. 우리는 남편이 퇴근하자마자 서둘러 출발했다. 한 여름 오후 7시가 지났지만 라인 강은 반짝거리고 차장 밖으로 포도밭이 보였다.
라인 강과 포도밭
주차장을 찾아 골목길을 헤매다 멈춘 곳은 게르마니아의 여신상이 있는 니더 발트(Nietherwald Denkelmal)였다.
1871년 프로이센의 빌헬름 왕이 프랑스와의 전쟁(보불전쟁)에서 이기고, 베르사유 궁전에서 승리의 파티를 했다. 이때 독일 사람들은 이곳에 게르마니아의 여신상을 만들었다. 승리의 여신은 한 손에는 검을 잡고 다른 손에는 왕관을 들고 옛 프로이센의 영토가 있던 북쪽을 향하고 있다.
니더 발트의 게르마니아의 여신상
까마득하게 높이 서 있는 여신상을 보노라면 “보라 우리는 이제 하나가 되었노라!”를 외치는 것 같고, 여신의 발아래에는 포도 넝쿨이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것 같았다.
“외숙모, 독일이 맥주로 유명한 나라 아니에요? 나는 와인은 이태리 가서 마시려고 했는데, 독일에 이렇게 넓은 포도밭이 있는 줄 몰랐어요.”
뤼데스하임의 중심 드로셀거리. 드로셀은 포도를 쪼아먹던 새이름을 거리이름으로 부른다.
“그렇지. 라인 강이 있는 곳까지 포도가 자랄 수 있다고 하더라. 이곳에서는 와인을 마시고 북부 지역에서는 맥주를 마셔야지.”
같은 사물을 보아도 사람마다 다르다. 30대 직장인의 고달픈 삶은 술을 떠올리고, 나는 밭고랑 사이의 사람들한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밭고랑은 독일 사람들의 성품대로 자를 대고 줄을 그은 것 같고, 그 사이를 걷는 사람들, 일부는 가이드의 깃발을 따라서 움직이고, 또, 다른 무리는 마음에 드는 장소에 멈추어 가지고 온 와인을 마시는데 무척 자유로워 보였다. 225m 높이의 언덕에서 눈이 닿는 곳까지 따라가면 막다른 곳에 강이 있다. 강은 마을을 호위하는 듯이 휘감은 것 같았다.
하이킹 중에 뤼데스하임에서 쉬는 사람들
지금은 비록 낮은 곳으로 흘러 북해와 만날지라도 그것도 한 때는 높은 산이었다. 가장 높은 것이 낮은 것이 되는 것은 순간이다. 찰나의 순간에 비탈진 언덕이 생기고 그 자리에는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졌다.
태양은 강물과 포도밭을 배회하며 물을 은빛으로 바꾸고, 탱글탱글한 포도는 리즐링(Riesling) 와인이 될 때까지 숙성시킨다. 나도 모르게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걸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발이라도 딛고 싶었다.
파란색은 라인 스타이그(RheinSteig) 하이킹코스 로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포도밭에 잠깐 멈추었다. 지은이는 토퍼를 들고 추억을 남길 때, 내 눈에는 “라인 강 고성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들어왔다.
뤼데스하임의 드로셀 거리는 옛날에 새들이 포도를 쪼아 먹던 골목길이다. 드로셀은 우리말로 쥐똥 구리 새이며, 현재는 뤼데스하임에서 가장 활발한 관광거리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니더 발트를 가면서 포도밭을 보라. 장관 중의 장관이며 겨울을 제외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
포도밭에서 올려다 보는 게르마니아의 여신상
니터발트의 게르마니아 여신상에서 포도밭 전경을 조망하며, 점심을 먹는다. 다시 뤼데스하임 선착장으로 가서 바흐라흐로 가는 페리를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