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은 처음이라(13)
운전에 대한 앓는 소리만 10번을 쏟아내고 나니, 이제는 아이 등하원 정도는 앓는 소리 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원래 조금 익숙하다 싶으면 요령을 피우기 시작한다고 하지 않나. 등원시간도 넉넉히 잡았다가, 이제는 요령이 생겨서 조금 타이트하게 출발하기도 한다. 하원은 아직은 불안해서 타이트하게 도착할 정도의 깜냥은 안되지만, 적어도 넉넉히 도착해서 주차장에서 친구랑 카톡이나 인스타 구경을 하는 등 차에서의 여유를 부리기도 한다.
이렇게 등. 하원과 마트, 병원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자 운전을 연습할 다음 코스가 필요했다. 아직 고가도로를 타고 고속도로를 타기에는 위험 부담이 많다. 혹시나 고속도로를 잘못 타게 되어서 서울에서 유턴을 해야 된다거나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하원시간 안에 못 돌아오게 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이 아직은 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 불안함을 상쇄할 만한 최적의 다음 운전 레벨로의 코스를 정하게 되었다. 바로 당근거래이다. 당근마켓은 당신의 근처 마켓의 약자라고 하는데, 근처 동네의 중고거래이기에 충분히 도전해 볼만한 코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아이를 키우고 있기에, 모든 제품을 새 제품으로 아이 용품을 쓰기보다 당근 거래를 활발하게 이용하는 편이었다. 아이 개월에 맞는 점퍼루나 쏘서와 같은 부피가 크면서 사기에는 가격대가 부담스러우나 한번 사서 쓰고 다시 당근에 파는 것이 유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당근거래의 문제점은 근처 동네이기는 하나, 부피가 있거나 걸어가기에는 조금 먼 차로 20분 정도의 근거리 동네의 물건이 뜨는 경우이다. 자차운전이 불가능했을 때에는 주말에 남편에게 부탁해서 거래를 하곤 했다. 하지만 바로 가져가길 원하는 거래자의 경우에는 좋은 물건이 저렴한 가격으로 나왔을 때는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이기에, 주말에 거래하겠다고 하면 거래를 놓칠 수도 있다. 그리고 주말에 남편에게 몰아서 거래를 하다 보니 00 아파트 갔다가 00 아파트로 2군데 갔다 오라고 얘기해서 부탁하곤 했다. 그렇게 돌아서 손에 들고 온 거래 물품이 치발기 클립이나, 아이주도 이유식 흡착 식판 등 남편 입장에서는 알 수 없는 육아용품의 세계의 거래 물품은 자신의 온전한 휴일을 방해하는 것이 고작 이거였냐는 씁쓸함을 남기곤 했다. 그러다 보니 매주마다 당근을 부탁하기에도 미안하고, 그리고 남편눈에 똑같은 유아책들이, 엄마의 입장에서는 아이관심사에 맞게 책을 바꿔보여주고 싶기도 한데 마침 당근에 좋은 가격의 물건이 보이면 당장 겟하고 싶어 진다.
그렇게 운전 연수코스의 다음 레벨을 당근거래로 잡았다. 남편의 휴식시간을 보장할 수 있고, 나도 아이템을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고 일석이조가 아닌가.
당근거래로 매물이 나온 물품 중에서 우선 채팅창으로 위치를 물어보고, 네이버 지도로 가는 길의 도로를 위성뷰와 도로뷰로 모두 확인한다. 그러고 나서 "네, 12시에 갈게요."라고 채팅창을 쓸 때는 약간의 긴장감과 스릴이 감돈다. 돌돌이 캐리어를 트렁크에 싣고, 비장한 마음으로 내비게이션을 켠다. 같은 동네이긴 하나, 그래도 운전으로는 처음 가는 동네이기에 긴장이 된다. 특히나 당근거래는 대부분 가정집으로 가는 편이기 때문에, 내가 필요한 운전스킬을 연마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파트의 주차 진입을 막는 가드가 있을 때에 경비아저씨가 있는 창문 쪽에 맞춰서 운전석 창문을 열고 '당근이에요. 0동 0호예요'라고 자연스럽게 말하려면 많은 스킬이 필요하다. 주차 진입로에 '방문자용'으로 차선을 맞춰서 들어가는 것, 그리고 주차 진입 막대에 부딪히지 않게 적정거리를 유지하며 차를 세우는 것, 경비아저씨에게 내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경비실의 창문과 나의 운전석의 창문이 서로 마주 보는 위치에 정차하는 것 등이다. 특히 경비실창문과 나의 운전석 창문의 간격이 너무 넓어서 내 목소리가 잘 안 들리면 소리를 높여야 되니 본의 아니게 아저씨한테 화를 내는 것처럼 들리게 되고, 간격이 너무 좁으면 내가 차를 뺄 때 아저씨의 불안한 눈빛을 온전히 받으면서 나와야 하는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당근거래가 성공하면, 00 아파트의 퀘스트를 통과하게 된다. 그 뒤에 당근거래에서 퀘스트에 통과한 00 아파트가 뜨면, 이젠 자신 있게 '네, 제가 할게요. 몇 시에 가지러 갈까요?'라고 당당하게 채팅을 보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몇 차례의 당근거래에 성공하면서 많은 부가적인 스킬을 획득했다. 예를 들어 로드뷰에는 2차선이었지만, 실제로는 이중주차로 한 차선이 다 막혀있는 차선을 만났을 때에는 끼어들기를 못해서 졸지에 이중주차라인에 주차한 차처럼 서있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암묵적인 신호가 있는 아파트 뒤의 작은 도로들을 내가 일방통행을 역주행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함으로 지나오기도 하고, 마주 온 차량이 있을 때는 어떻게 피하는 방법이 없어서 내가 골목의 작은 도로에서 알 박기를 하는 민폐차량이 되기도 했다. 그런 다양한 케이스들을 겪으며, 그날 저녁에는 유튜브를 틀어서 '골목 평행주차방법'이나, '한문철 tv'를 보면서 골목이나 암묵적 신호가 있는 도로에서의 암묵적인 룰에 대해서 익히곤 했다.
이제 당근거래로 퀘스트를 통과한 아파트들이 꽤 여럿 생겼다. 같은 동네에서 이제 옆동네로도 넘어가기 시작했다. 나의 반경이 넓어지니, 같은 물건이라도 가격대나 상품 퀄리티의 비교군이 많아져서 좋은 물건 거래가 많아졌다. 나 혼자의 힘으로 새로운 아파트의 퀘스트를 뚫었을 때의 거래의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운전을 시작하며 두려움이 많았던 나에게, 당근 퀘스트는 운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오늘은 어떤 당근 퀘스트를 뚫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