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은 처음이라(14)
오랜만에 머리를 하러 미용실을 예약했다. 걸어서 가던 미용실의 담당 디자이너 분이 개업을 하셔서 옆 동네로 이사하셨다. 파마를 하는 건 큰돈 들이는 일이다 보니, 개업 축하 겸 담당 디자이너 분께 가볼까 싶었다. 미리 지도를 확인한다. 옆 동네라도 익숙한 곳이어서 차를 가지고 갈 수 있겠다 싶었다. 몇 번의 당근 퀘스트와, 규칙적인 등하원 라이딩을 하며 동네 운전에는 자신감이 붙기도 했다. 이제 동네를 도는 것은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등원 후 머리를 하러 가다 보니 오랜만에 화장도 하고, 정장도 입었다. 머리 하러 갈 때는 평소에 꾸민 상태로 가야, 내 스타일을 보고 맞춰서 머리를 하지 않을까 하는 나만의 미용실 가기 전의 의식 같은 것이다. 화장도 하고 옷도 멋지게 입었겠다, 주차장에서 차를 찾아서 차를 타는 내 모습이 뿌듯했다. 버스 타고 가면 구두 신고 가면 발 아프기도 하니 힐은 엄두에도 못 내는데, 힐도 신었다. 뭐랄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과 자차이용자와의 패션의 차이에 대한 갈망이라고 할까. 물론 아직 나는 초보이기에 차에 타면 드라이빙 슈즈로 갈아 신지만, 그 마저도 뭔가 멋진 내가 된 것 같아서 혼자 기분이 좋아졌다. 운전하나 시작했는데도 이렇게 자신감이 생기다니.
음악도 기분 좋은 팝을 들으며, 출발해 본다. 비록 동네지만 이 길을 내 구역이나 마찬가지니까 늘 하던 대로 가면 되니까 긴장하지 않아서 좋았다.
빨간불 신호에서 멈춰서 음악을 흥얼거리며 듣다가, 초록불이 되자 출발하려는데 갑자기 '쿵'하며 몸이 흔들렸다.
'뭐지? 내가 앞차를 박은 건가?'
갑자기 1년간 무사고여야 한다는 기간이 생각나면서, 지금이 1년이 지났는지 안 지났는지부터 계산하기 시작했다. 초록불이 되고 나서 갔는데, 왜? 그러지? 그런데 앞차는 아무 일이 없다는 듯이 이미 앞으로 갔다.
무슨 상황인지를 몰라서 차에 가만히 멍하게 앉아있다가, 문을 열고 내렸다. 앞차를 박은 줄 알았으니 내 차의 앞 범퍼부터 봤다. 아무 일이 없었다. 그런데 뒤에서 갑자기 다른 분이 오셔서 나를 불렀다.
"아, 정말 죄송해요, 제가 초록 불되서 간다고 밟다가 조절을 잘못했나 봐요. 진짜 제가 운전 경험이 많은데, 제가 사고 낸 적이 처음이라, 저도 당황스러웠네요. 정말 죄송해요."
아... 내가 아니었나? 초보운전이다 보니 늘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상태가 기본값으로 깔려있었나 보다. 아직 당황스러운 마음에 우선 비상깜빡이를 하고 뒤로 가봤다. 우리 차보다는 조금 작은 소형차였는데, 뒷 범퍼에 제대로 박혀서 찌그러졌다. 헉. 그래서 내가 출렁 거리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었구나. 갑자기 조금 무서워졌다. 만약에 뒤에 차가 큰 트럭이었거나, 더 속도가 있었으면 큰 사고일 수 있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니까 등골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그나마 빨간불로 신호대기 상태에 있다가 출발하는 상태여서 이정도였겠구나 싶었다.
그럼 내가 피해자가 된 건가? 그럼 피해자는 어떻게 해야 되지?라고 하는데, 갑자기 뒤통수가 지끈했다. 그러고 나서 목을 잡았는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 그래서 피해자는 목부터 잡고 내린다는 게 이런 말이었구나 싶었다. 뒤에서 박은 충격이 이제야 오는 건지, 아니면 정말 머리로 내가 피해자라는 생각이 드니까 목부터 아프게 느껴졌는지 무엇이 먼저였는지는 모르겠다. 일단 8차선 도로에서 한 중간에서 길을 막고 있는 상태라서, 자리를 이동해야 될 것 같은데, 또 바로 사고 현장을 이동하면 안 된다고 했던 것 같아서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조금 멍하게 가만히 있었다. 서로 마찬가지인 상황이라 보험사에 전화해서 물어보고, 우선 출동하기 전에 이동할 수 있는 접촉사고이니, 이동하는 게 2차 사고 방지에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차로 끝쪽으로 이동해서, 차를 대고 나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왜? 무슨 일이야? 사고 났어? "
회사에 이 시간에 전화한다는 것은 정말 사고가 났거나 애가 아프거나 내가 다치거나 큰일이 있을 때뿐이기
때문에, 전화를 받는 남편의 목소리도 심상치 않았다.
"아, 사고가 났는데, 근데 내가 박은게 아니라, 뒤에서 박았어."
"안 다쳤어? 뒤에서 박았다니 다행이다. 일단 보험사 불려서 그냥 보험 처리해."
보험사를 부르고, 마냥 기다리는 상황에서 약간 기분이 묘했다. 내가 사고를 내는 사람이었는데, 황당하게 사고를 당하니까 조금 어색했다. 그리고 그분은 베테랑 경력이었는데, 정말 처음이라고 하시면서 미안하다고 하시곤 했다. 괜스레 마음이 그래서 보험사를 기다리면서 차에 있는 사탕을 하나 드렸다.
"보험사 와서 처리할 때까지 기다리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네요. 놀라셨을 텐데 사탕이라도 좀 드실래요?"
"아, 감사합니다. 제가 진짜 운전한 지가 10년인데, 이렇게 기본적인 사고를 내다니 참 저도 어이가 없네요. 어디 홀렸던 것 같아요."
나중에 보험사가 오고 블랙박스를 확인하고 하다 보니, 아마 뒷 운전자가 휴대폰 사용으로 인한 부주의였던 것 같다고 서로 보험 처리하기로 했으니 이제 집으로 가도 된다고 했다. 미용실 예약은 물 건너가서, 집으로 헛헛한 마음으로 돌아갔다. 곧 보험사에서 차를 가지러 왔고, 차는 정비소로 향했다. 얼마 뒤 정비소에서 전화가 왔다.
"아, 전에 오신 그분이시구나. 어쩐지 차가 낯익었어요 ㅎㅎ 이번에는 다행히 사고내신건 아니네요? 하하 뒷 범퍼 센서는 고장 나지 않아서, 범퍼만 수리하면 될 것 같아요. 이틀 정도 걸릴 것 같으니 렌트 보내드릴게요. "
정비소 아저씨의 응원 아닌 응원을 받으면서, 운전에 대한 묘한 자신감이 생겼다. 경력이 있어도 사고가 날 수 있는 게 운전이니까 조심해야 한다는 경각심이 깔려 있긴 하지만, 초보라도 언제든 자기 길과 내가 조심하면 내가 먼저 사고를 늘 내는 건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이 느껴져서인 것 같다.
초보라고 늘 사고를 내기만 하는 사람은 아닐 수 있다고!!라고 어디서 외치고 싶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