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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믹스커피 Oct 11. 2023

초보운전자들의 수다

운전은 처음이라(15)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이, 해가 지기 시작하려 하자 아쉬웠는지 하나둘씩 서로 작전을 짠다. 

"엄마, 00집에 놀러 오라는데 가도 돼요?"

친하긴 해도 서로 원래 집을 오갔던 사이는 아니어서 잠시 망설였지만, 아이들이 워낙 잘 놀고 하니까 마침 아빠들도 늦게 오는 날이어서 서로 저녁을 해결하고 가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렇게 첫 방문 선물로 치킨봉지로 두 손을 무겁게 하고 친구네 집으로 향했다. 치킨과 함께 아이들은 장난감에 빠져서 놀고 있으니, 엄마들은 안중에도 없다. 

"우리 치킨도 있는데, 아쉬운데 맥주 한잔 할까요?"

그렇게 가볍게 300ml 맥주 한 캔씩을 나누며, 이런저런 수다를 나누었다. 반 친구 엄마들이긴 하지만 늘 놀이터에서 서서 얘기를 했지, 이렇게 앉아서 얘기를 나눈 적이 없어서 서로에 대해 처음 안 사실들이 많았다. 그러다가 에버랜드 운전 이야기가 나왔다. 


"거기 회전 교차로에서 뱅뱅 돌다가 저는 늘 미술관 들렸다가 에버랜드로 가요."

"어머 저도요! 교차로 너무 헷갈리죠?"

"와 에버랜드까지 운전해서 가시는 거예요? 부럽다. 저 지금 연습 중이거든요. 에버랜드 코스"


그렇게 갑자기 초보운전자로 급 연대가 결성되면서 각자의 초보운전 썰을 풀기 시작했다. 맥주는 안중에도 없고, 초보 운전자로서의 고충인 아직까지 평행주차를 못하고 있는 이야기나 어깨 선 보고 주차하는 것만 아직까지 하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안주처럼 쏟아냈다. 초보운전자 3명에 운전 숙련자 1명의 구조라서, 자연스레 초보 운전의 이야기가 더 많았다. 10년이나 운전을 했다는 엄마를 경이롭게 쳐다보며, 초보운전자들의 고군분투기를 쏟아냈다. 하지만 그 이야기에 숙련 운전자는 새로운 세계를 듣는 것 같다고 신기해했다. 같은 자동차 안에 있으면서 이렇게나 다른 세상을 보고 있다니. 


아이 때문에 운전을 타의적으로 시작했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그래서 운전이 두렵기도 하지만, 또 아이가 있기 때문에 차가 있고 없고의 육아의 퀄리티가 달라진 점에도 모두 다 공감했다.  주차가 안돼서 주차장에 잘 못 들어가서 두 손으로 빈 이야기나, 골뱅이 주차장에 잘 못 들어가서 차가 낀 이야기, 그리고 주차장 벽에 긁은 이야기는 역시나 초보운전자의 만국 공통이었다. 그렇게 초보운전자들의 토로와 공감의 장이 열렸다. 


"저 진짜 어디 가자고 하면, 내비게이션으로 미리 지도 기억해 놓고 전날에 계속 예습해요."

"맞아요. 저는 약속 정해지면 거기 건물 전화해서 미리 아예 물어봐요. 초보라서 그러는데 주차장에 주차 공간이 있냐는 식으로 물어보면 초보라는 거 감안해서 말해주더라고요."

"거기 천사의 빌딩 가봤어요? 와 거기는 진짜 주차가 헬이어서 천사 아니고 지옥의 빌딩이었어요 저한테는"


운전을 시작한 계기도, 시작한 시기도 비슷하다 보니 서로 풀어내는 썰이 비슷했다.  내비게이션이 경로 이탈을 하면 아이들에게 "엄마 집중해야 돼, 여기에서 길 몰라, 조용히 있어야 돼"하면 애들도 엄마의 운전 실력을 못 믿어서 조용히 있는다거나, 주차할 때마다 애들도 같이 긴장하고 창문을 보고 있다는 썰들은 정말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수다의 카타르시스를 맛봤다. 

 

"우리 그럼 에버랜드 다음에 도전해 봐요! 서로 차 태워주기 없기, 서로가 운전을 계속할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줘야 돼요"

"좋아요. 그럼 간식이랑 도시락 싸서 일찍 출발해요."

"맞아요. 밤 운전은 아직 안돼서 불꽃놀이는 못 봐요. 그래서 낮에 갔다가 오고 연습하다가 나중에 불꽃놀이까지 봐요"


그렇게 야심 찬 약속을 잡았다. 초보운전자들의 비장한 도원결의 같은 거랄까. 동지를 만나면 원래 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운전을 즐길 수 있는 이유를 하나 더 만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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