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은 처음이라(18)
"준비됐지?"
"자, 이제 얘들아 엄마 운전해야 되니까 집중해야 되는 거 알지? 운전할 때는 아무것도 못해주니까, 물통 옆에 있으니 물 마시고 간식 먹고 있어. 알았지?"
비장하게 우리는 출발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는 대부도 2박 3일 여행. 남편들은 2박 3일의 자유를 얻을 생각에 초보 운전자들의 두려움 따위는 응원으로 무마해 버렸다. 운전 숙련자 1명에 초보 운전자 2명의 구성. 차 1대로 한 번에 이동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잡은 계획이었지만 카시트 자리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자리별로 다 설치가 될 줄 알았으나 1대로 이동할 수 없는 상태이다. 아이들의 카시트 인원 때문에 차를 1대에 다 같이 이동할 수가 없어서, 부득이하게 초보 운전자 2명이 힘을 합쳐서 1대로 이동하게 되었다.
예전에 그런 이솝우화가 있다. 호우에 갑자기 불어난 강물 앞에서 장님이 강을 건너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었는데, 그 뒤에 다리가 불편한 절름발이가 다가왔다. "내가 자네의 눈이 될 테니, 당신이 나의 다리가 되어주오. 그러면 우리는 이 다리를 건널 수 있오" 그렇게 장님은 절름발이를 등에 업고, 절름발이가 이야기하는 대로 징검다리를 건너서 둘 다 강을 무사히 건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대부도를 향하는 초보 운전자 둘은 마치 그 우화에 나오는 사람들 같았다. 운전대를 잡으면 앞만 보고 내비게이션을 못 보는 사람과, 차선변경을 못하는 운전 못하는 사람. 그 둘이 모여 덤 앤 더머처럼 야심 차게 대부도를 가겠다고 하고 있었다.
"지금 변경해요? 지금 차선 변경이에요?"
"600미터 앞이니까 지금 해요, 지금 할 수 있으면 해요"
초보 운전자에게 차선변경은 내비게이션 음성이 나올 때 하면 이미 늦을 때가 있다. 왜냐면 음성이 나올 때 바로 변경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합이 맞아갔다. 초보운전자들만이 아는 내비게이션이랄까. 내비게이션에서 음성 버전도 귀여운 버전, 치어리더 버전, 아나운서 버전 이렇게 다양하게 있다고 하는데. 초보운전자를 위한 내비게이션은 왜 없을까? '차선 변경이 예정 중입니다. 변경될 차선이 많이 막혀있으면 지금 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 구간은 빨간불이 와도 우회전을 해도 괜찮은 구간입니다.', '여기는 초록불 화살표가 따로 없습니다. 청신호시 좌회전이 가능하기에 주변을 살피고 좌회전을 하세요'와 같은 초보운전자들이 알아야 할 부분으로 족집게로 내비게이션을 해주면 좋으련만. 그런 생각을 하며 또 차선 변경 구간을 맞이하면 긴장하게 된다. 손에 땀을 쥐는 구간, 변경해야 되는 구간인데 차선이 꽉 막혀있다. 어쩌나 어떻게 끼어들지. 그러는 차에 살짝 벌어져 있는 구간이 보인다. 뒤쪽에 있는 택시아저씨가 핸드폰을 보고 있다. 밀리는 구간이어서 핸드폰을 보고 있다가 차선을 따라잡지 못했나 보다.
"지금이에요. 택시 아저씨가 핸드폰 보고 있어요. 지금 들어가요"
그렇게 단거리 차선변경에도 성공했다. 하이파이브를 하고 싶지만 운전대를 절대 놓으면 안 되기에 소리로 파이팅을 외치면서 갔다.
"앞으로 2km까지 직진이에요. 이제 좀 쉬어도 돼요"
초보운전자에게 고속도로에서는 직진구간은 쉬는 구간이다. 차선변경을 하는 것이 가장 무서우니, 그때 조금손에 땀을 닦으며 살짝 힘을 풀어보며 다시 집중해 본다.
"이제 곧 IC에요"
"하이패스 어디예요? 지금 차선이 하이패스 맞아요?"
"잠깐만요 아직 바닥이 안 보여요, 아 여기 맞아요 차선변경 안 해도 돼요"
IC에 모든 차선이 하이패스가 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내가 어떤 차선을 달리고 있느냐에 따라 얼마나 차선변경을 많이 해야 되는지 아주 쫄깃한 구간이다.
"와, 이거 뭐야 거의 4차선을 가로질려서 변경해야 돼요. 완전 1 차선 쪽으로 넘어가야 돼요"
IC가 나오고 나서는 거의 무법지대였다. 고속도로의 특성상 각자 어떤 길을 가느냐에 따라서 길이 달라지고, 그리고 심지어 차선도 지켜지지가 않는다. 마치 그 구간은 무정부시대 같은 느낌이랄까. 차선과 상관없이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찾아서 가는데, 그러면서도 고속으로 달리는 구간을 부딪히지 않고 지나가야 하다니. 곡예와 같은 구간이었다. IC욕이 절로 나오는 IC였다.
그렇게 10시간 같은 1시간이 지나자,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조금 안심이 되었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신호등이라는 쉬는 구간이 있으니까. 신호등의 빨간불이 올 때마다 운전을 능숙하게 하는 사람들은 답답하지만, 초보운전자에게는 마치 사막 속의 오아시스 같다. 빨간불이 오면 쉴 수 있고, 멈출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때 내비게이션으로 다시 길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 휴
드디어 펜션에 도착했다. 내비게이션으로 도착 예정시간에서 딱 맞게 도착했다는 것. 너무 기뻐서 마지막에 하이파이브를 했는지 포옹을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우리는 마치 전쟁을 같이 치른 전우처럼 전우애가 넘쳐흘렀다. 그 기분은 에베레스트를 등정했을 때 정상에 오른 기분이 이 정도이지 않을까. 그러고 나서 우리는 마치 군대 갔다 온 전역한 예비군들이 술만 마시면 군시절의 영웅담을 얘기하듯, 그날 술자리에서 우리의 영웅담을 풀어냈다. 그걸 듣고 있는 운전 숙련자인 1인은 돈키호테가 풍차를 물리친 영웅담을 들은 것 마냥 실없는 영웅들의 술주정을 들으며 하이볼만 마셔댔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날은 영웅이었고, 그날 나는 내비게이션만 보고 있었지만, 마치 입덧을 같이하는 남편처럼 같이 운전을 한 것 같은 뿌듯함이 들었다.
그렇게 나의 운전에 대한 자신감과 기대감이 조금 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