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은 처음이라(12)
이제 어느 정도 운전이 익숙해졌다. 아이의 등 하원만 셔틀버스처럼 하고 있었던 셔틀 수준에서, 이제 동네 근처의 소아과, 마트, 도서관 정도는 다닐 수 있는 마을버스는 된 것 같다. 먼 거리는 못 가더라도 매일 마다라도 운전을 한 덕분인 것 같다. 물론 아직은 낯선 길을 가는 것은 무섭다. 하지만 다년간 웬만한 거리는 도보로 걸어 다닌 경험이 있기에, 도보로 걸었던 거리는 차로 모두 다 갈 수 있었다.
운전을 하지 못할 때에 어떻게 다녔냐고들 많이 물었다. 사실 대중교통이용을 좋아하기도 한 터라 크게 필요성을 못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신혼으로 이사 온 처음 살아본 동네여서, 이 동네에 아는 사람이 남편과 나 서로 뿐이었다. 그래서 주말이면 남편과 집 근처의 가게들을 돌아다니는 걸 데이트 삼아 다녔다. 그러던 중 남편은 다이어트를 명목으로 당근 마켓에서 자전거를 샀다. 자전거도 못 타는 나는 자전거 뒷좌석에 앉아서 강변을 산책하는 데이트를 좋아했다. 그때 당시에는 날씬했고, 신혼이었고, 남편도 튼튼하고 젊었으니 서로 자전거를 함께 타는 그 시간이 좋았다. 주말에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게 신혼의 낭만을 만끽하는 것 같아서 좋았다.
그러고 나서 아이가 생겼고, 아이를 키우는 동안 육아휴직을 1년간 하게 되었다. 100일이 지나자 이제 아이랑 산책도 나가고 해야 되니 유모차를 선물 받았다. 남편은 회사를 갔으니 이제 나의 주요 교통수단은 유모차가 되었다. 아이를 아기띠에 메고는 밖에서 10분만 돌아다녀도 출산 후유증인지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유모차는 신생아다 보니 아이가 자는 시간이 종종 있기에 그 시간에 맞춰서 나가면 유모차의 반동 때문인지, 집에서는 눕히기만 하면 우는 아이가 유모차에서는 너무 잘 잤다. 모유 수유는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유모차가 들어갈 수 있는 동네 커피숍을 찾아다녔다. 커피를 못 마셔도, 지금 내 꼴은 손목은 압박붕대를 하고 있고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는 모르는 상태지만 그냥 커피숍 자체가 그리웠다. 드디어 찾은 유모차가 들어갈 수 있고 테이블 간 거리가 높은 커피숍의 한 구석 자리에 들어갔다. 그때 마셨던 복숭아 아이스티의 첫 잔의 시원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이가 살짝 깰 것 같으면, 유모차 바퀴에 발을 올려두고 살살 왔다 갔다 돌려주면 아이는 다시 곤히 잠든다. 이 아이스티를 끝까지 다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행복감이 느껴진다. 이동수단의 발견이 주는 희열은 아마 이 정도의 청량감이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유모차로 나의 이동 반경이 집안에서 집 밖으로, 그리고 유모차를 끌고 갈 수 있는 평평한 도로가 어디까지인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러 나섰다. 그렇게 강변으로, 백화점으로, 옆 동네까지도 넘어갈 수 있었다. 이제 맘 카페에 가입하면서 같은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동네마다 몇 명씩 생겼다. 모두 모여서 공동육아를 하는 시간을 한 번씩 가졌는데, 나는 유모차로 갔다. 다른 엄마들은 차를 타고 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때 당시에는 나의 운전실력에 아이를 태우고 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 그냥 유모차로 20분 더 걸어가는 게 훨씬 안전하게 느껴졌기에 그때에도 운전을 꼭 배워야겠다는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출산으로 찐 살도 빼게 되어서 주변에 엄마들이 '유모차 다이어트 효과'라고 이야기해 줄 정도이긴 했으니까. 그렇게 첫째를 4살까지 유모차를 끌고 다녔다.
"이거 정말 팔려고? 무슨 중고차로 치면 10만 킬로 달린 차 같은데?"
"그런가 아직 잘 돌아가긴 하는데, 비싸게 주고 산 거긴 한데 어떻게 하지. 아니면 그냥 나눔으로 할까?"
"이건 그냥 나눔으로 하자. 중고차 타이어 바꿔서 파는 것도 아니고 유모차를 바퀴 바꿔서 팔순 없잖아."
그렇게 정이 든 유모차를 이제 다른 쓰임이 있는 시장으로 내보내려 하면서 시트를 세탁하고 넣어두니, 남편이 유모차 바퀴를 보고 놀라면서 하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유모차를 이 정도로 제대로 쓰는 사람이 주변에 많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았다. 유모차 치고 정말 전국일주는 하고도 남은 정도로 돌아다녔던 것 같다. 운전을 시작해서 다니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 거리를 걸었지?'싶다. 남편과 나는 서로 유모차 바퀴를 돌려보며 웃어본다. 나도 참 미련하다 싶긴 하지만, 그래도 그 순간이 주는 행복함을 온전히 제대로 느꼈구나 싶다. 그리고 또 그런 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운전도 이렇게 오롯이 배워갈 수 있는 용기가 생기지 않았을까.
그때 유모차를 끌고 나와서 마셨던 카페에서의 복숭아 아이스티의 자유의 청량감은 이제는 조금 바뀌었다. 바로 등원 후 맥드라이브로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는 것으로 이제 시원한 여유를 즐기는 것이다. 드라이브 스루로 주문을 해서 커피를 먹는다는 것은, 마치 LA의 맥도널드에서 드라이브 스루를 하는 것 같은 기분 좋은 망상에 빠지게 되는 것과 같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서 드라이브 스루를 통과하는 길에 알람이 울린다.
'당근! 당근!'
'혹시 유모차 거래되었나요? 제가 나눔 받을 수 있을까요?'
10만 킬로 달린 유모차는 이제 새 주인에게 넘겨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컵홀더에 넣고 D로 기아를 바꾼다. 이제 나는 오너드라이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