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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믹스커피 Dec 13. 2022

고가도로를 함부로 타면 안 되는 이유

운전은 처음이라 (10)


 엄마 타요의 오전 등원 일과를 마치고, 아직 어린이집을 안 가는 둘째의 낮잠 시간에 맞춰 오후 운전 연습을 나서본다. 아이가 없을 때에 운전연습을 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아직 어린이집을 안 가고 계속 같이 붙어있는 둘째가 있는 이상 어쩔 수 없다. 동네 운전 연습을 할 때에는 아이를 태운 상태에서 하는 게 처음에는 불안했지다. 아직은 초보라서 아이가 뒷좌석에서 울거나 불편한 부분이 생기면 그 순간 등줄기에 식은땀이 나고, 빨간 불로 멈출 때까지 아이의 울음소리를 계속 들어야 하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도 자동차의 움직임이 백색소음인지 자장가인지 잘 잠드는 걸 보면서 아이 낮잠 시간에 맞춰서 운전 연습을 나서기 시작했다. 


 전날 유튜브로 익혔던 차선 변경의 노하우를 적용하기 위해서 A마트로 내비게이션을 찍어본다. 이미 외우고 있는 길이지만, 4차선의 도로가 겹쳐져 있고 버스 정류장과 우회전을 해야 되는 구간간의 거리가 짧아서 짧은 시간 안에 2번의 차선 변경을 해야 하는 고난도 구간이기 때문에  늘 한 번에 우회전을 못해서 한 번 더 가서 우회전을 해서 둘러가곤 했기 때문이다. 


 깜빡이를 넣은 순간은 망설임이 없이,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고 하는데 정작 깜빡이를 켠 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차선을 들어가지를 못하고 있다. 그렇게 하염없이 깜빡이만 켜고 있다가, 우회전 구간이 다가오고 있다. '지금이다' 처음으로 오른쪽으로 차선 변경에 성공했다. '지금이다'의 순간을 초보가 알기까지는 몇 번의 고뇌와 고민과 망설임이 있어야 알게 되는 것일까. 옆 좌석에서 탄 사람이 '지금 넣으면 돼'라고 하는 말이 어려운 이유는, 왜 지금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뒤차와의 간격이 번호판이 보이는 정도여야 하는지, 아니면 헤드라이트 부분 옆으로 간격이 있는 상태에서 다가오기 시작하면 그때인지 그 디테일한 차이를 아직 모르겠다. 백미러로 보고 있다 보면, 저 멀리 있던 차가 어느새 내 뒤 꽁무니에 따라온 것 같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차선 변경에 성공해서 우회전을 제대로 해냈다. A마트의 주차장으로 진입하는 데에 승리의 팡파르가 울리는 것 같다. 주차도 무난히 성공. 하지만 아이가 뒤에 자고 있기 때문에 쇼핑할 여유는 부리지 못한다. 이 기세를 빌어서 한번 B마트에 도전해볼까? 약간의 자신감이 올라온다. B마트로 내비게이션을 정해 본다. A마트에서 B마트로 가는 구간은 처음 가보지만, 집에서 A마트와 집에서 B마트를 가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두 개가 연결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주차장에서 출발해본다. 


자신감에 차서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차선 변경에 실패해서 우회전 구간을 놓쳤다. 그렇게 또 한 번 더 가면 되겠지. 우회전해서 못 갈 곳은 없다는 것을 몇 달간의 초보운전 연수를 통해서 깨달아서 이제 우회전이 있으니 차선 변경 한 번쯤이야 괜찮다. 한 번 더 가서 또 차선 변경을 실패했다. 아냐 괜찮아 한번 더 가서 우회전하지 뭐.


'분홍색 차선을 따라가세요'

하지만 새로운 복병이 나타났다. 내비게이션에서 처음 들어본 멘트이다. 차선이 색깔이 있었나? 우회전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곳은 고가도로로 연결이 되었다. 분홍색과 초록색 사이에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내비게이션을 확인하기도 이전에 우회전을 하면서 분홍색 차선으로 나는 달리고 있었다. 


'괜찮아 고가도로니까 우리 집으로 내려가서 연결되는 것일 거야'

고가도로 밑을 지나다녔기 때문에, 이 고가도로가 우리 집이랑 연결되었던 것 같은 기억이 있어서 당황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고가에서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점점 낯익은 빌딩들이 고가 옆을 지나가면서, 내가 달리는 도로는 대관절 내려가지를 않는 것이었다.


'다음 유턴까지 30km 남았습니다'

무슨 소리이지 30km라니. 아니 여기 바로 앞이 우리 집인데 어디까지 가서 유턴을 한다는 거지? 당황한 마음에 운전대를 꼭 부여잡았다. 


'분당-수서 고속도로로 진입합니다. 80km를 유지해주세요'

고속도로라니, 무슨 말일까. 나는 B마트를 가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60km 이상 달려본 적이 없었는데, 80km 구간이 시작되었다. 심지어 80km에서는 내비게이션을 바꿀 수도 없다. 나에게는 이런 고속으로 달려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30분 뒤면 카시트에 자고 있는 아이가 깰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고속도로에서 아이가 뒤에서 깨서 울기라도 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80km로 차는 달리고 있는데 이게 내가 밟아서 달리고 있는 건지, 자율 주행하고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공황장애가 이런 걸까, 내가 지금 운전대를 잡고 달리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알아서 운전이 되고 있는 건 아닐까 잠시나마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본다. 우회전으로 모든 길이 해결되는 동네가 아니다. 여기는 80km로 달리고 있는 고속도로이고,  빠져나갈 곳이 없어서 다음 수서 IC에서 유턴을 해야 되는 걸로 내비게이션은 계속 안내하고 있다. 지나가면서 지하철역을 보면서 지금 나의 위치를 가늠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가다가는 시를 벗어나서 서울로 들어가기 일보직전이다. 

 이 도로를 달려서 유턴을 해야 B마트를 갈 수 있는 길이라고 이야기하는 내비게이션을 보면셔, 어서 경로를 우리 집으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80km로 달리는 중이고 여기는 빨간불이 없는 고속도로이다. 옆에 차를 세우는 곳도 없고, 달리는 핸들에서 손을 떼서 핸드폰 내비게이션에서 경로 탐색을 터치해서 바꿀 용기는 전혀 나지 않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음성안내 버튼이 보였다. 음성안내 버튼 이거 하나만 누르고 나서 내가 말로 경로를 바꿔보아야겠다. 다행히 어느 정도 정체구간에 들어섰다. 80km로 달리는 차 안에서 핸들을 잡고 있는 나의 심정은 우주로 향하는 우주선 위에 맨몸으로 붙어서 맨손으로 우주선 날개를 붙잡고 떨어지지 않으려 애쓰는 것과 같았다. 용기를 내서 한 손을 떼어본다. 


'우리 집!

'경로가 검색되지 않습니다.'


'우. 리. 집.'

'경로가 검색되지 않습니다.'


'집!!!'

'경로가 검색되지 않습니다.'


정말 눈물 날 지경이다. 비록 10분 전에 자만에 가득 찬 채로 경로를 체크 안 하고 B마트로 내비게이션을 찍은 나의 오만을 반성하며 다시 한번 외쳐본다.


'우. 리. 집!!!!!!'

'경로를 변경해서 안내를 시작합니다.'


그렇게 애타게 핸드폰에 대고 우리 집을 외친 결과, 뒤에 아이가 잠에서 깨기 시작하며 내비게이션도 경로를 바꿔서 안내하기 시작했다. 역시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아이는 다행히 울다가 다시 잠들었다. 바뀐 경로는 오른쪽으로 300m를 가면 샛길로 빠질 수 있다고 안내해준다. 300m라니 차선 변경을 2개나 해야 되지만, 나가야 된다는 일념 하에 잽싸게 변경을 하게 되었다. 아. 이거구나.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게 이런 거구나. 그렇게 샛길로 빠져서 나는 마의 고가도로에서 고속도로로 이어지는 미로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처음 보는 동네지만 신호등이 있는 길이 너무 반가웠다. 나에게 빨간불은 한 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고가도로에서는 신호등이 없어서 한 번도 쉬지 못했기 때문이다. 빨간불이 걸리길 바라다가, 걸리는 순간 핸들을 잡고 있던 손에 쥔 땀을 닦았다. 그리고 뒤를 돌아 아이도 한번 쳐다보았다. 다행히 잘 자고 있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낯선 길이지만 내비게이션을 따라만 가면 된다. 아까 고속도로에 비해서 신호등이 있는 길은 8차선이라도 고마운 지경이다. 중간중간 빨간불을 반가워하며 점점 낯익은 빌딩들과 아파트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우리 동네다. 


아는 길이 나오기 시작하자 안심이 되기 시작하고, 바짝 당겨 앉은 의지가 이제 조금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오늘도 무사히 돌아왔다. 휴, 앞으로 차선 변경을 마스터하기 전에는 시와 경계선에 있는 A마트를 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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