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은 처음이라(9)
"차에 있는 내비게이션이 고장 났어. 이거 고쳐야 될 것 같아. 아예 화면이 안 떠."
"핸드폰 내비게이션 쓰면 되지 않아? 그걸로 써. 거치대도 있잖아."
"나는 핸드폰으로 내비게이션 못 봐. 왔다 갔다 해야 되잖아."
남편과 내비게이션 수리 문제로 잠깐의 실랑이를 했다. 차에 내장되어 있는 내비게이션의 화면이 고장 나서, 시계와 내비게이션 모두가 보이지 않았다. 수리비는 20만 원 정도인데, 수리하는 곳도 먼 거리에 위치해 있어서 수리를 하러 가려면 남편이 평일에 연차를 내고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요즘 바쁜 시즌이라 야근이 잦은 상태여서 연차를 내기도 여의치 않고, 남편 입장에서는 핸드폰으로 내비게이션 보면 되는 거고 큰 기능을 하지 못하는 차량용 내비게이션을 굳이 지금 고쳐야 하냐는 입장인 것이다.
하지만 나의 상황은 다르다. 초보운전에게 내비게이션은 난이도 중의 레벨이다. 왜냐하면 사이드 미러와 백미러를 운전 중에 보는 것도 아직 벅찬 상황에, 내비게이션까지 보려고 고개를 돌리는 그 순간순간이 불안함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동네 셔틀버스에 가까운 운전 코스로 주행 중이기 때문에, 사실 새로운 마트나 병원을 가기 전에 그 전날 내비게이션 앱을 통해서 가상의 시뮬레이션을 하고 지도를 외운다. 그래서 외운 대로 가다가, 1차선에 버스 정류장에 버스가 서있거나 불법 주정차가 되어있는 경우에는 끼어들기도 못하고 당황해서 멈춰 설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니 내비게이션을 보면서 가는 일은 아직 없지만, 혹시나 변수로 길을 이탈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 내비게이션 음성을 BGM 삼아서 간다.
'여기 앞에서 우회전해야 되니까, 지금 차선 변경해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차선을 변경한다. 어느새 내비게이션의 음성 안내가 들린다.
"200m 앞에서 우회전입니다. 우회전 차량으로 주행하세요"
'아싸, 통과했다'
이런 내적 쾌감과 나의 운전 가이드를 도와주는 것이 바로 내비게이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핸드폰 내비게이션을 이용하기 힘든 이유는 바로 갑자기 오는 전화나 문자 알람에 대응할 나의 손이 없기 때문이다.
초보운전의 두 손은 항상 핸들에 붙어있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순간 심박수는 올라가고 동공은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핸드폰으로 내비게이션을 쓰고 있다가 전화가 오기라도 하면 내비게이션 화면이 꺼져서 1차 멘붕이 오고, 2차 멘붕은 갑자기 통화연결이 돼버리거나 통화가 끝나고 내비게이션으로 탭 변경을 하기까지 핸들에 붙어있는 손 하나를 떼어야 하는 그 잠시의 순간이 너무 불안한 것이다.
통화를 못하니 통화 거절을 누르다가 실수로 통화를 눌러도 끄지를 못하고 상대방이 끊기까지 기다린 적도 있었다. 그리고 특히 코로나 상황 혹은 지역에서 안내되는 종합안내 문자 팝업이 내비게이션 중에 떴는데, 그 '확인'버튼을 누르기 위해 빨간불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달린 적도 있었다.
이런 구구절절한 이유로 핸드폰 내비게이션보다 20만 원을 주더라도 차량용 내비게이션을 고쳤으면 하는 마음이 있지만, 그걸 어찌 다 말할까. 내가 어서 초보를 벗어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이를 재우고 옆에서 핸드폰을 켜서 유튜브를 찾아본다. '학원에선 배울 수 없는 초보운전 스킬 14가지', '속도가 빠를 때와 느릴 때, 차선 변경법'... 알고리즘을 따라서 하나씩 보다 보면 나와 같은 혹은 심지어 더 심하다고 볼 수 있는 초보 운전과 장롱 운전 동지들을 보며 같이 헉하고 놀라기도 하고, 피식하고 같이 웃기도 한다. 도로 위에서는 나 혼자만의 싸움이지만, 쌩쌩 달리는 옆 차 안에서도 나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어느 차 한 대는 있겠구나라는 비겁한 위로를 해보며 잠을 청한다. 내일도 셔틀 출근해야 되니까, 하나만 더 보고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