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은 처음이라(7)
‘타요타요~ 개구쟁이 꼬마버스~타요’
셔틀버스가 된 엄마의 대표곡인 꼬마버스 타요 노래를 부르며 가는 아이의 노랫소리가 이제 조금 익숙해졌다. 아이의 노랫소리를 배경 삼아서 주변을 보는 여유도 생겼다. 이렇게 차로 5분이면 갈 거리를, 만삭의 몸으로 유모차를 끌고 30분이 걸려서 왔다 갔다 했었다니 새삼스레 수고를 사서 한 내가 놀라웠다. 기술의 발달이 문명의 발달로 이루어졌다는 바퀴의 첫 발명이나 불의 발명에 대한 위대함을 느꼈던 선조들은 이런 기분이었을까. 나의 수고로움이 조금 무의미해진 약간의 허무함과 한편으로 5분으로 단축된 시간이 주는 여유가 교차하는 순간들이었다. 남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하는 운전이 나에게는 왜 그리 어려웠을까, 그리고 무엇이 그렇게 무서웠을까 싶게 말이다.
‘엄마, 이따가 데리러 와요!’
어린이집에서 아이와 인사하고 다시 차를 타고 돌아갈 때 운전석 문을 열 때의 희열이 있다. 여유에서 오는 자유로움일까. 만삭으로 유모차를 끌고 와서 등원시키고 나서 다시 돌아갈 때의 헛헛함과는 조금 달랐다. 아직 주차는 서툴러도,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조금 여유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나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날과 같이 아이를 등원시키고 나가는 길이었다. 기둥 옆에 주차를 해놓은 상태라서 평소보다 조금 좁은 상태였지만, 약간 붙여서 빼면 충분히 될 것 같았다.
‘끼익’
엄밀히 말하면 끼익 정도로 느껴지는 소리가 아니었다. 긴가민가 할 정도의 소리였다. 오른쪽에 차가 있었지만 느낌은 이상했지만, 더 빼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핸들을 더 돌려보았다. 다시 돌려서 나갔다.
‘턱’
두 번째 소리가 났을 때,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느꼈다. 차에 내려서 아까 신경 쓰였던 기둥 쪽을 봤지만, 기둥과는 부딪히지 않았다. 이상하다, 어디에서 난 소리지? 그러다 옆의 차를 봤다. 옆의 차와 안 부딪혔는데? 그런데 옆의 차의 헤드라이트가 긁혀 있었다. 내가 한 걸까? 순간 등골이 서늘하고, 식은땀이 났다. 이것이 첫 사고 인가. 내 눈앞에 있는 광경이 믿기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옆을 보니 헤드라이트 옆으로 운전석 쪽 차 문에 주욱 그어진 선이 보였다. 이건 내가 한 것이다. 내 차에도 똑같이 선이 그어졌다. 어떻게 하지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돌리고 싶었다. 그럴 리가 없어, 아니야라며 현실을 부정해보지만 내 눈앞에 주욱 그어진 선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대로 있었다. 어서 이실직고하자고 마음을 먹고 전화번호를 찾았다. 손이 덜덜 떨렸다. 이래서 순간적으로 도망갈까 괜찮을 것 같은데 같은 비 이성적인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건 누가 봐도 확실하게 내가 한 짓인걸. 그렇게 전화번호를 찾아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 하 ,, 아우 정말 하필 바쁜데,,,, 어떻게 해’
전화를 받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차 주인이 엘리베이터에서 전화를 받고 내려오는 타이밍이었나 보다. 나이는 어머니 뻘이었는데, 어떤 상황인지 바로 알아 채신 것 같았다. 무릎에 아대를 차고 빈다고 생각하고 무조건 죄송하다고 연신 인사했다. 제가 초보라서요, 죄송해요 진짜 너무 불편하게 죄송해요라는 말을 몇 번이나 도돌이표로 인사했는지도,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연신 죄송하다는 나를 보면서 한마디 하려던 차 주인분은 인사하다가 만삭인 상태의 내 배를 뒤이어 봤는지 배를 한번 보더니 한숨을 한번 쉬셨다. 주차되어있던 차를 긁은 상태라서 서로 보험사 불러서 보험처리를 하자고 했다.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응?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있잖아, 여기 어린이집 아파트 주차장인데,,, 사고가 났어’
‘.. 이 시간에 전화한 게 불안하더라니, 사람은 안 다쳤어? 다친 데는 없고?’
‘응 다치진 않고, 주차되어있는 차를 내가 차를 빼다가 긁었어,,,’
‘차 조수석 앞에 보험사 번호 있을 거야, 거기 우선 전화하면 돼, 보험 처리하면 되니까 안 다쳤으면 됐어. 괜찮아. 차는 뭐야?’
‘벤ㅇ인데, 모델은 모르겠어..’
‘……크게 긁었네.. 알았어, 보험 처리하면 되니까 괜찮아, 휴,,,’
평소에 회사에 출근하고 나서는 전화할 일이 없던 터라, 전화를 한다는 건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남편도 나중에는 이 시간에 전화하면 사고가 났겠거니라고 했다고 한다. 사고도 처음이라 머리가 하얗게 되었던 순간, 달려오는 보험사 직원이 얼마나 반갑던지. 다행히 내 쪽의 보험사 직원이 먼저 왔다. 그 어떤 액션 영화의 히어로 등장신만큼이나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든든한 지원군이 온 기분이었다.
‘00 보험사입니다. 000님 맞으시죠? 이 차인가요? 제가 우선 현장 확인 한 번 할게요.’
사진을 몇 장씩 찰칵찰칵 찍고, 종이에 무엇을 쓰고, 또 찍고 그렇게 몇 번을 하셨을까. 사진 소리와 종이에 쓰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쪽으로 잠시 오시겠어요?’
따로 구석 쪽으로 가서 사고의 상황과 처리 견적을 이야기해줬다. 결론적으로 나는 비싼 차종을 긁었고, 게다가 아주 주우우우욱 그어서 운전석 문짝과 본넷을 다 손봐야 하기 때문에 500만 원 상당으로 처리가 예상된다고 했다. 500만 원을 어떻게 구하지라는 생각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마침 보험 처리 금액이 그렇고, 500만 원을 다 내는 것이 아니라 보험료에서 할증이 될 예정이라고 했다.
‘초보운전이시죠? 처음에 어차피 한 번 사고는 나요. 사람이 안 다친 게 어디예요. 그래도 아 00나, 폭 000보다는 벤 0가 부품 수급이 잘돼서 렌트 비용이 덜 나가는 편이에요. 나중에 운전하실 때 아 00, 폭 00 차는 조심하세요. 부품 수급 잘 안 되는 차랑 박으면 렌트비용이 더 늘어나서 비싸져요. 운전 시작하시면 이제 이렇게 차종도 알게 되실 거예요.’
감사하다와 죄송하다는 인사를 연신하고 나서 그렇게 내차와 상대방 차는 레커차에 끌려갔다.
집으로 들어와서 멍한 상태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운전경력이 20년이 넘어서 평소에 다정하고 화 한 번 안 내던 엄마였기에 나의 운전연수를 연이어서 맡아주던 엄마였다.
‘엄마, 나 주차하다가 사고 냈어’
‘뭐? 무슨 차였어?’
‘벤 0였어’
‘아고, 엄마가 몇 번이나 말했어. 주차할 때 외제차 옆에 주차하지 말랬지!! 간도 크다, 아직 주차도 못하면서 외제차 옆에 주차를 했어!’
‘내가 주차를 할 수 있는 곳이 없는데 어떻게 해 그럼! 흐엉’
엄마가 그렇게 흥분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초보의 주차는 차를 골라서 주차할 수가 없다고요. 초보의 주차의 우선순위는 양쪽에 아무 차도 없을 때가 제일 우선인 공간이고, 그다음이 기둥 옆, 그 뒤가 한쪽이라도 비어있는 곳이다. 그런데 그런 1,2,3순위의 공간이 일반 아파트 주차장에서 빼곡히 주차되어 있는 공간에 모두가 있길 만무하다. 나도 그런 억울한 마음과, 사고로 얼떨떨했던 순간이 현실로 받아들여지며 눈물이 났다. 그렇게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 지나고 남편이 퇴근해서 왔다.
‘하인리히 법칙이라고 있어, 어떤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같은 원인으로 수십 차례의 경미한 사고와 수백 번의 징후가 반드시 나타난다는 통계의 법칙이래. 아마 지금의 사고 이전에 300번의 경미한 사인과, 29번의 위험요인이 있었을 거야. 그게 쌓여서 오늘의 1번이 생긴 거고. 그러니 앞으로 그 300번을 조금씩 줄이면 돼. 사람이 안 다친 게 어디야,.’
300번의 경미한 사인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운전연수 선생님이 마트에서 주차할 때 주차 연습은 매일 하라고 했던 말, 마지막에 연수를 마칠 때에도 주차는 더 하라고 했던 말들. 그리고 운 좋게 지나갔던 좁은 기둥 옆에서 주차에 성공했었던 순간까지. 아마 나의 오늘의 주차 사고는 지난 300번의 자잘한 실수를 그냥 넘겼던 것들이 합이 되어서 나온 것이었구나. 그래서 첫 사고가 났을 때 그 끼익 소리를 겪어보지 않았기에 느끼지 못했구나. 그래서 그 소리를 간과하고 한 번 더 움직였어서 헤드라이트에 흠집으로 끝날 사고가 운전선 문짝과 바퀴의 흠집까지 크게 이어질 수 있었구나.
하루 밤을 자고 일어났다. 어제 사고가 났었단 걸 다시 또 부정하고 받아들였다. 마치 첫사랑과의 이별과도 같은 기분이었다. 잊고 싶고, 되돌리고 싶지만 되돌아가지 않는 과거의 시간처럼. 그렇게 나에게 첫 사고는 보험료 할증과 함께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