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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믹스커피 Oct 25. 2022

2.5 x5.1 m 네모와의 싸움

운전은 처음이라(5)

'보통 어느 마트 자주 가요? 자주 가는 마트나 가고 싶었던 마트 있으면 3곳 골라주세요.'


 이제 이 나이에 운전을 배워서 써먹을 수 있는 가장 활용도 높은 구간에 들어왔다. 바로 마트 주차 연수. 아이가 둘이 되면서 비상상황이 생길 때 대비할 수 있고, 아이들의 편의를 위해 장롱면허를 벗어나기 위해 시작한 연수였지만, 마트라는 말에 왜인지 모르게 설레기 시작했다. 걸어서 갈 수 없는 위치에 마트가 있었기에 늘 남편이 있을 때에만 장을 보러 갈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쉽게도 다른 엄마들이 장 보는 시간이 힐링이 된다는 이야기에 공감할 수가 없었다. 내가 장을 볼 때의 모습은 어떠한가. 아이는 지겨워하고, 남편은 이게 꼭 필요하냐며 전에 산 것도 냉동실에 있지 않냐며 상품을 집을 때마다 가격표처럼 잔소리가 붙어 있기 마련이었으니까. 목적지향적인 남자의 쇼핑과 물건과의 관계를 지향하는 여자의 쇼핑이 같지 않으니, 쇼핑을 한다기보다 볼일을 보러 가는 느낌이었다.


 물론 필요한 잔소리는 맞지만, 시장 구경만큼 구경하고 다니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같은 우유라도 어느 회사에서 어떤 이름으로 우유가 나왔는지 보기도 하고, 이런 맛의 라면은 누가 먹는 걸까 하고 상상하며 즐기기도 하는 곳이 바로 마트라는 공간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곱씹어보니, 어릴 적 엄마손을 잡고 시장 구경을 하며 다니면서, 장보기의 의무가 없이 자유롭게 상상하던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이 과일은 무슨 맛일까, 왜 얘의 이름은 참머루일까 같은 상상을 하는 시간이 나에게는 즐거운 유희였다. 장바구니에 굳이 담지 않아도, 모든 것을 가지는 않아도 모든 것이 있는 곳. 그리고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작은 시장이 나에게는 바로 마트인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연수 장소가 설렜던 것일까, 마트라는 공간에서 나의 관계 지향적인 쇼핑을 할 수 있도록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아이가 자주 가는 소아과가 같이 있는 00 마트, 한 번씩 파격 세일로 오픈런을 부런다는 00 아웃렛, 북유럽 스타일로 꾸밀 수 있는 대형 가구점 00아, 이렇게 3곳을 골라보았다. 3곳 다 주변 엄마들의 차를 얻어 타고 자주 가서 눈에 익은 곳이기도 하고, 또 혼자서도 가보고 여유롭게 쇼핑하고 싶었더 곳으로 골랐다, 이 3곳을 고른 뒤로는 조금 들뜬 마음이었는지, 연수시간 보다 20분이나 일찍 도착해서 내비게이션 지도를 외우기 시작했다. 아직 운전을 하면서 내비게이션을 볼 여유가 없기 때문에, 목적지가 정해진 상태에서는 내비게이션 지도를 미리 보면서 상상 속으로 연습을 해보기 시작했다. 이때 사거리 다음에 우회전할 거니까, 차선을 그전에 미리 여기로 옮겨놔야지. 왜냐면 아직 차선 변경은 익숙하지 않아서, 한 거리다 차선을 한 번씩 밖에 이동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차선 변경이 아직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상태이기 때문에 내비게이션을 통해 불안한 마음을 다잡아 본다.


 '일찍 오셨네요, 마트는 정하셨어요?'

 '네, 00 마트, 00 아웃렛, 00아 이렇게 3곳이요.'

 '다들 그곳을 많이들 가더라고요. 우선 00 마트가 지금 시간에는 오픈하기 전이라 주차공간이 많이 비어있을 거예요. 00 마트부터 가볼게요'


주말마다 꽉 차있는 마트의 주차장만 보다가,  텅텅 빈 주차장을 보니까 묘한 쾌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렇게 넓은 곳에 쏙 하고 주차하는 건 쉬울 것 같다는 생각도 잠시였다.


' 비빅 , 삐비 비빅, 삐비 비비비 비비비 '

경고음이 이렇게까지 울릴 줄이야. p에 둔 거 확인했다가, R과 D와 왔다 갔다 거리면서 내가 이제는 어디로 손을 두는 지도 헷갈렸다. 우주비행선을 모는 것 같은 기분으로 운전했던 마음이 산소 줄이 끊겨서 우주 미아가 되어 허공에 떠있는 것 같았다.


주차 박스는 2.5mx5.1m 정도의 사각형이 표준이라고 한다. 신축 아파트의 주차장은 이것보다 조금 넓고, 구축 아파트이거나 빌딩에는 이 정도의 사각형보다 조금 너비가 좁을 수도 있다고 한다. 왼쪽 오른쪽 돌리는 방향과 반대로 돌아가는 차의 방향을 내 몸과 일치시키기가 어려웠다. 댄스학원에서 선생님의 댄스 모습을 보면서 따라 해도, 왼팔 오른팔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몸치인 나의 몸짓과 같았다. 엉덩이를 들이밀었다가, 오른쪽을 보다가, 왼쪽도 보다가 네모 반듯하게 대었다고 생각하고 내려도 사선으로 있거나 바퀴 하나가 주차 선에 물려있다. 네모 박스 안에 백미러에 바퀴에 헤드라이트까지 온전히 다 넣기에는 시간이 꽤 걸렸다.


'마트 주차에서, 주차하면서 접촉사고가 많이 나요. 특히 초보때는 마트에 주차가 가득 차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금 연습이 더욱 중요해요, '


그렇게 앞뒤로 왔다 갔다를 열댓 번을 한 뒤에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박스 안에 가까스로 주차를 완성해냈다. 와, 드디어 이제 쇼핑할 수 있는 것인가?


'고생했어요. 아직 주차는 좀 연습이 더 필요한 것 같아요. 여기 이제 점점 사람들이 몰려오니까, 더 이상 연습은 무리일 것 같아서 넓은 공터로 가서 한번 더 연습을 하고 가야겠네요. 내일은 00 아웃렛으로 가서 주차를 해보도록 할게요.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집으로 다시 돌아갈까요?'


그렇게 나는 주차장도 벗어나지 못하고, 마트 자동문은 열어보지도 못한 채로 집 앞 공터에서 앞으로 위로를 반복 연습하고 돌아왔다. 의욕 있게 출전한 전쟁에서 패하고 무기도 잃고 온 패잔병처럼 집 안으로 터덜터덜 들어왔다. 이렇게 주차하다가는 마트까지 가도 주차를 못하고 돌아올 것이 뻔하다. 다시 또 주말에 온 가족과 함께 장을 보러 이 마트로 와야겠지. 언제쯤 나는 관계 지향적인 쇼핑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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