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은 처음이라(4)
'오늘은 코스 연습을 할게요. 00 공원이 코스 연습하기 좋은 곳이라서 그쪽으로 가볼게요.'
벌써 4번째 수업의 날. 어제 감자수제비의 영향인지, 조금은 운전대를 잡으러 내려오는 것이 덜 긴장되었다. 00 공원은 30분 정도 걸리는 곳이었다. 2차선 도로에서 4차선으로 바뀌고 몇 번의 신호와 함께 복잡한 차선에 빨간불들이 가득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도로는 다시 2차선 도로로 바뀌고 숲길의 일방통행 길이 나왔다. 내가 제일 반기는 일방통행길이라니.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꼬불꼬불한 길이면서 경사까지 같이 있어서 핸들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코스 연습이 시작된 것이다. 갑자기 한쪽으로 바퀴가 빠질 것만 같고, 내 바퀴에 비해 일방통행의 길은 너무나 좁게 느껴졌다. 그러다 한적한 길로 들어가자, 연수 선생님은 잠시 차를 세웠다.
'잠깐 내려서 바퀴를 한번 볼래요?'
줄타기를 하는 광대처럼, 일방통행의 주황색 선 옆을 아슬하게 지나가는 것 같이 느껴졌었다. 그런데 내려서 보니 바퀴는 주황색 선에 아주 멀리 있었다. 내가 주황색 선과 바퀴 사이를 지나갈 정도의 간격이었으니 꽤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운전대를 잡을 때는 그렇게나 가깝게 느껴졌던 것인데, 이렇게 멀리 있었다니.
'생각보다 멀리 있죠? 내가 앉아서 보는 것과, 실제로 옆에서 내려서 보는 것은 이 정도의 차이가 있어요. 그 감을 알면 핸들을 많이 돌리지 않아도 돼요.'
그렇다. 나의 핸들은 불안한 나의 마음을 대변하듯이 요동치고 있었던 것이다. 허탈하기도 하고 멋쩍은 상태로 어색한 웃음과 함께 다시 차에 탔다. 확인을 하고 나니, 불안해진 마음이 가라앉은 것처럼 나의 요동치던 핸들도 다시 잔잔해졌다. 운전을 한다는 것은 이런 거구나. 어디에서 보는지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알아간다는 것. 발바닥을 땅에 딛고 걸을 때와, 남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갔을 때는 느끼지 못한 것이었다. 새로운 배움을 깨닫고 다시 내리막을 내려가 본다. 올라올 때는 꼬불꼬불한 길에서 불안해서 주황색 밖에 보이지 않던 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옆에 서 있던 플라타너스 나무와 은행나무, 그리고 단풍나무를 구분할 정도로 옆이 보이기 시작했다. 같은 길인데도 이렇게 다른 풍경이 보이다니.
'그런데 왜 운전을 안 했던 거예요?'
내리막을 내려갈 때는 조금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아서였는지, 연수 선생님이 나에게 질문을 하셨다.
'음, 차에 대한 기억이 별로 좋지 않은 게 컸던 거 같아요.'
사실 액션 영화도 좋아하고 차 체이싱 영화라면 환장하는 편이다. 특히나 분노의 질주는 나의 최애 영화일 정도니까. 그래도 불구하고 운전을 하는 상황은 계속 피해왔던 것은 차에 대한 그리 좋지 않은 기억이 커서였던 것 같다. 뭔가 딱 싫어 안 할래 큰 사고를 겪었어까지는 아니었다. 어릴 적 친척 언니가 대학생 때 드라이브를 하다가 큰 사고를 당해서 척추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라서 정확한 정황은 몰랐지만, 예쁘고 옷 잘 입던 언니가 철심을 박고 누워있던 모습은 어린 나이에는 다소 충격이었다. 조수석에 앉았어서 더 많이 다쳤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그 뒤로는 차 앞 좌석에는 앉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런 트라우마도 시간이 지나서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는 20살의 패기로 수능 끝나자마자 수험표 할인을 받고 운전학원을 끊으며 없어지나 싶었다. 하지만 면허증을 따고 마트를 돌아다니는 정도로 몇 번 하던 중이었다. 학교를 가던 스쿨버스를 타고 있었는데, 사거리에서 마주 오던 덤프트럭과 부딪히는 사고가 있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고,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마주 오던 덤프트럭을 생생히 목격하다가 부딪혔던 기억이 있어서인지, 그 뒤로 운전할 때 트럭만 눈에 보이면 그때처럼 몸이 굳어버리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운전을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버텨왔던 것 같다. 그렇게 내리막길을 굽이굽이 내려가면서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운전을 안 하는 큰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이렇게 말하고 나니 큰 이유가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문득, 반대로 다른 사람은 운전을 어떻게 좋아하게 되었는지가 궁금해졌다.
'선생님은 어떻게 운전 연수를 하게 되신 거예요?'
'저는 운전하는 게 너무 좋아서 하게 되었어요. 저는 사실 이거 투잡이에요. 운전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연수도 투잡으로 하게 되었죠.'
연수 선생님은 원래는 보험설계사 영업사원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손해보험사에서 일을 하면서 자연스레 영업 업무를 하다 보니 운전대를 잡을 일이 많아졌다고 했다. 아마 또 운전연수를 하면서 초보운전자를 대상으로 영업하기에도 좋으니 일석이조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보험영업을 하면, 아침에 출근해서 조회하고 그 뒤로는 4시까지는 돌아다녀야 돼요. 영업활동을 하는 거죠. 그렇게 하고 4시나 5시에 다시 지점으로 가서 몇 명을 만났고, 몇 명과 계약했는지 보고를 하고 하루를 끝내죠. 영업이 잘 될 때도 있지만, 사실 안될 때도 많아요. 어떻게 늘 매일 마다 계약 고객이 있고, 늘 사람을 만날 수 있겠어요. 그러다 보니 차에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영업 압박을 받거나, 일이 힘들 때에도 차에서 운전을 할 때는 기분이 나아져요. 왜 그럴까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운전대를 제가 잡고 있는 순간이어서 인 것 같더라고요. 나이가 들고, 세상을 살다 보면 내가 주인이 되는 일이 점점 드물어지거든요. 그런데 운전할 때는 유일하게 내가 주인이 되는 기분이 들어요. 아마 그런 기분이 드는 건 운전할 때가 유일한 것 같거든요.'
운전을 한다는 것은 늘 압박의 상황이거나 걱정의 상황이 먼저 생각이 났었는데, 자유라는 단어가 나오리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가 핸들을 잡고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또 누군가는 그 순간을 자유로 느낄 수 있다니. 운전을 하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운전의 장점들 중 가장 많은 것이 바로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자유'라는 것을 그 뒤에 알게 되었다. 5분 뒤에 내가 걸어서 움직일 수 있는 장소와, 차로 갈 수 있는 장소의 물리적인 제약의 차이는 크기 때문이다. 아직도 자유보다는 구속의 기분이 더 우위에 있는 것 같은데, 오르막을 지나 내리막에서는 나무가 보이는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순간이 나에게도 올까? 그래도 적어도 오늘은 주황 색선과 바퀴의 차이만큼의 여유는 생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