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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믹스커피 Sep 28. 2022

감자 수제비 한 번 더 먹어볼까

운전은 처음이라(3)

'오늘은 속도를 더 내볼까요. 조금 멀리 가볼게요.'


문자 보내기를 망설이다 잠들어서,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첫째 아이를 등원시키고 복잡한 마음을 안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오늘도 시간에 딱 맞춰서 도착하신 연수 선생님. 어제 붙인 A4용지가 차 뒤쪽에 제대로 있는지 확인하고, 차에 올라탔다. 오늘은 근처 도로가 아니라, 코스 연습을 위해 남한산성으로 간다고 했다. 

남한산성이라니, 그냥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인데 무슨 코스 연습을 거기까지 가서 하는가 싶은 의심도 잠시였다. 집 앞에서는 30km의 속도로 다니는 어린이 보호 구역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남한산성으로 가는 길은 4차선의 도로에 심지어 제한속도가 80km였다. 가라는 대로 가다 보니까 어느 순간 올라와 있는 4차선의 도로라니. 30km 이상을 달려본 적이 없는 내가 제트 키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금 속도가 80km에요. 여기에서 더 밟으면 안돼요. 원래 브레이크 밟는 것보다 제동거리가 더 기니까, 차량 간격을 두는 연습을 하면서 갈게요.'


아니 이 선생님은 오늘 80km 달린다고 얘기를 하고 남한산성을 간다고 하셔야지. 남한산성을 가는 줄 알았지 가는 길이 80km로 달리는 4차선이 있는 구간일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운전이 처음인 사람에게는 몇 킬로로 가는 구간이 몇 차선이 있는지가 아주 걱정이 큰 부분이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확인한 속도는 80km에서 빨간 선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비행기를 운전하면 이런 기분일까. 내가 차를 운전하고 있는 것인지, 차가 가는 데에 내가 핸들만 잡고 있는 것인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핸들은 잡은 손은 땀에 젖어서 축축해졌지만, 차마 떼서 잠시나마 바지에 닦을 용기는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갔을까. 남한산성 5m 표지판이 보였다. 


 '여기로 들어가면 돼요. 여기서부터는 일방통행이라서 천천히 들어가면 됩니다.'

스무스하게 일방통행의 도로로 들어오자, 안도감이 들었다. 창공에서 구름 사이를 빠져나와서 활주로에 안착한 비행기 조종사가 된 것처럼 뿌듯함이 올라왔다. 이 나이에는 뿌듯함이 느껴질 만한 일이 그리 많지 않다. 그릇을 깨지 않고 설거지를 깨끗하게 했다고 칭찬을 받거나, 집안 바닥이 머리카락 하나 없이 밟힐 게 없게 청소기를 돌렸다고 박수를 받는 일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20살에 따는 호기로운 초보운전에는 분노의 질주 영화에 나오는 스포츠카를 모는 모습을 상상하고 시작하겠지만, 40에 가까운 시간에 따는 생계형 초보운전은 집 앞 마트를 오픈런해서 주차하는 어느 차가 내차인지 헷갈릴 정도로 회색에 가까운 차를 모는 모습 정도를 기대한다. 그 정도만 해도 이 운전연수는 성공적이니 말이다. 하지만 일방통행의 도로로 들어가는 그 순간은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기분 좋은 생경함이었다. 일방통행 사이의 소나무들이 오픈 행사하는 주유소 앞의 풍선인형처럼 나의 진입을 마치 손을 들고 반기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구불구불 올라가다 보니 가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점심 먹고 가요. 여기가 숨은 맛집이에요. 오늘은 내가 쏠게요! 

연수 첫 날은 원래 제가 쏴요, 오늘만이니까 편하게 먹어요. '


주차가 상대적으로 편한 곳으로 갔다. 긴장감에 액셀을 밟은 다리가 주차를 하고 내리니 후들거렸다. 손은 땀에 흥건히 젖어서 축축한 상태. 땅을 밟은 느낌에 안도감이 들었다. 무언가 내가 하지 않아도 가만히 서있을 수 있음에 다행이라고 여기면서. 그제야 풍경이 보였다. 이렇게 높은 곳까지 내가 올라왔는지 싶을 정도로 산 중턱의 탁 트인 시야였다. 한산한 공기와 가끔 들리는 새소리들이 긴장감 가득했던 딱딱하고 까만 아스팔트를 달리던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줬다. 


'어때요? 맛있죠?'

'네, 정말 맛있네요. 이렇게 풍경도 좋고요.'

'도로 연수 처음에는 많이 힘들어요. 그래서 첫날에는 저는 무조건 맛집이 있는 코스를 짜요.

운전의 맛을 알아야 하거든요. 초보운전은 처음에는 해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긴장감이 가득하죠. 그래서 둘째 날쯤 되면 다시 다음으로 미룰까 싶은 마음도 들어요.'


내심 뜨끔했다. 갖은 핑계를 대면서 연수를 뒤로 미루려고 문자를 보내려고 궁리하다 잠든 나의 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다. 


'그런데 말이에요. 운전의 맛을 느끼면 그 뒤로는 운전이 하고 싶어 져요. 운전의 맛의 첫 번째는 바로 같은 시간인데도 다른 공간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에요. 이렇게 맛있는 칼국수를  오늘 운전해서 왔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것처럼요. 그래서 운전 연수할 때 가장 빨리 느는 방법은 가고 싶은 맛집을 몇 개씩 찾아두고 그걸 목표로 가는 거예요. '

그렇다. 운전을 하기 전의 나의 동선은 정해져 있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삽자루를 들고 하염없이 걷다가 다시 돌아와서 결국 자신의 관자리 땅 밖에 못 얻은 사람처럼 말이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백화점까지 걸어갈 수 있는 시간도 기껏해야 40분이었다. 도보로 1시간 이상의 거리는 걸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호기롭게 도보로 1시간 거리를 걸어서 갔다가 돌아오는 시간은 1시간 반이 걸리는 나의 체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걸어서 보는 동네 구경을 좋아한다. 똑같은 가게라도 같은 오픈 시간에도 다른 사장님의 모습이 주는 그날만의 풍경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운전을 하면서 본 남한산성의 풍경은 조금 달랐다. 이 시간이면 집 앞의 15분 거리의 쿠키가게가 문을 여는 시간이다. 아마 운전을 하지 않았다면, 이 시간에 나는 쿠키가게가 문 여는 것을 보면서 그 앞을 지나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렇게 갑자기 산 중턱에서 감자 수제비를 먹고 있다니. 첫 해외여행을 했을 때 느낀 시차와 같은 낯설면서도 기분 좋은 스릴이었다. 이런 것이 운전의 맛인 걸까. 

 

내려오는 길에는 일방통행의 구불구불한 길에 핸들을 맞춰서 선 따라 가는 것이 조금은 어려웠다. 그래도 감자 수제비 덕인지, 산 중턱을 찍고 내려간다는 하산의 기쁨인지 마음은 조금 가벼웠다. 그렇게 다시 또 활주로를 탄 비행기처럼 80 km의 고도를 높여보았다. 아직 이 기분은 적응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적어도 어제만큼 도망가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오늘은 긴장을 많이 해서 어깨가 좀 아플 수 있어요. 고생했어요. 푹 쉬고 내일 또 뵈어요'

네라고 대답은 했지만, 무슨 어깨가 아플 것 까지야 싶었다. 그런데 자기 전 샤워를 마치고 나니 담 걸린 것처럼 어깨가 뻐근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역시 나는 운전 선생님의 손바닥 안인가 보다. 모든 초보운전자가 거치는 과정을 그대로 거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안도가 되기도 했다. 내가 운전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기기 시작했으니까. 오늘 운전의 맛을 봐서인지 저녁에는 고민 없이 그냥 잠들려고 한다. 아, 유튜브로 운전 연수하는 거 하나만 보고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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