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은 처음이라(2)
"오늘은 00 마트로 가볼까요? 여기 코스 많이들 하세요."
아파트 단톡방에서 추천받은 운전 연수 선생님은 나보다 조금 나이가 있는 여자 선생님이셨다. 만삭인 상태이다 보니, 연수하시는 분도 신경 쓰일 수 있을 것 같아서 여자 선생님으로 수소문해서 예약을 잡았었다.
'10년 만에 운전대 처음 잡았는데, 덕분에 아이 병원 정도는 이제 혼자 다닐 수 있게 되었어요, '
'운전대만 잡으면 돌처럼 굳어서, 면박받으면서 하면 더 안될 것 같았는데 친절하고 침착하게 잘해주세요.'
장롱면허 출신의 나와 같은 동급의 아줌마들의 추천이라서 그런지 역시 코스 선정도 나이스 하셨다. 아이 때문에 운전대를 잡기로 시작한 것도 큰 용기라는 인사를 먼저 건네주셨다. 덕분에 굳었던 마음이 조금은 풀어졌다. 뭐랄까 늦된 나이에 만학도가 된 것 같은 창피함에 조금은 면죄부를 받은 기분이었다. 나에게 운전은 다른 세상 사람들은 모두 쉽게 하는데 나만 힘들게 오래 걸리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우선 가장 필요한 코스인 아이의 어린이집까지의 코스부터 시작했다. 이사를 오게 되면서 어린이집 자리가 없어서 이사 오기 전인 옆동네의 어린이집을 아이가 다니고 있었다. 차로는 10분 거리지만, 그 10분이 무서워서 차라리 40분을 걸어가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믿었던 나였다. 그 코스를 첫 번째로 시작해보았다. 1차선 도로를 지나서 2차선 도로, 그리고 4차선 도로를 지나면 아이의 어린이집이 나왔다. 초보운전의 가장 큰 난제가 차선 변경이었다.
깜빡이를 넣으면서 동시에 뒤에 오는 차와 내 앞에 가는 차의 간격을 살피면서 동일한 속도로 가야 되는 고난도의 스킬이었다. 아 물론 다른 사람들은 이게 아무렇지 않게 "깜빡이 키고, 간격이 벌어지면 들어가"면 되는 코스이다. 하지만 나는 그 '간격'이 어느 정도가 벌어져야 하는지 모르겠고, 그 '간격'을 보기 위해 백미러를 보다 보면 티브이처럼 빨려 들어가며 차도 같이 빨려 들어가는 무서움을 겪어야 했다. 왜 깜빡이 신호는 '깜빡깜빡' 으로만 모든 것을 소통할 수 있는 걸까. '바쁘시겠지만, 제가 초보라서 여기 제 차가 들어갈 정도로 틈을 주시면 안 될까요'라는 네온사인으로 깜빡이를 켜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다가 여차저차 옆 차선의 차가 간격을 벌려주면서 차선 변경에 성공한다. 조금 타이트한 상황에서 이렇게 양보의 미덕으로 차선 변경을 허하여주신 분들에게는 비상등 깜빡이 두세 번 정도의 인사를 한다고 한다. 정말 도로에도 이런 예의가 있다니. 첫 차선 변경 때는 비상등 깜빡이 두세 번이 뭐람, '정말 복 받으실 거예요, 이런 배려를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라고 폭죽 무늬로 네온사인으로 비상등 뒤에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물론 차선 변경은 아직까지도 난제인 부분 인다. 그게 참 쉽지가 않다. 내가 가고 있는 차선만 보고, 도로의 규정속도를 나만 지킨다고 굴러가는 게 아니었다. 앞에 차의 속도와 뒤의 차의 속도를 감안해서 평균속도의 범위로 달려줘야 한다. 그리고 내가 차선을 지키고 가고 있다 하더라도, 옆에서 들어오는 차가 있으면 나도 적당한 여유를 두어주어야 한다. 또 그렇다고 앞에 차만 쳐다보면서 가다 보면, 내가 가야 하는 속도나 방향이 틀어질 수 있다. 그렇게 차선 변경에만 신경 쓰다가 빨간불이 나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내가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계속 속도를 내면서 차선 변경하는 것은 힘들지만, 중간에 멈췄다가 가게 되면 한번 더 심호흡하고 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속도를 낼 때는 각기 다른 위치였지만, 멈췄다가 출발할 때는 또 모두가 동등한 출발선에서 0에서 다시 출발한다. 그 점에서 오는 초보운전만이 느끼는 희열이 있다. 적어도 지금은 초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득, 운전을 하는 것은 마치 인생을 사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만 고고하다고 고결해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내 선을 지키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될 수 도 있는 것. 그래서 인생만큼 차선 변경이 나에게는 아직도 많이 어렵다.
아, 그리고 차선 변경 중에 느낀 분노가 바로 '깜빡이 없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운전을 하기 전에는 "거참, 깜빡이 없이 훅 들어오는 게 어딨어"라는 말싸움 중에 하는 말이 어떤 무게감을 가진 비유인지를 몰랐다. 아니, 체감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그런데 초보운전이다 보니 안 그래도 힘든 차선 변경인데 정말 깜빡이 없이 훅 들어오는 차는 정말 배신감과 당혹스러움의 완전체였다. 그렇게 한번 당하다 보면, 차선을 살짝 걸치면서 달리면서 차선 변경을 안 하는 차에게 당하기도 한다. 언제 저 차가 차선 변경을 하나 그 차의 타이어를 보다가, 차선 변경 없이 엉뚱하게 반대방향으로 우회전하는 차를 만난 경우가 있었다. 와, 뭐야 이건 뭐 학익진도 아니고 무슨 전략이지. 언제 들어오나 타이어만 빤히 바라보다 끝난 기분이란, 스텔스 기의 전략에 무참히 당한 패잔병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이렇게 차선 변경과의 투쟁을 하고 2시간의 운전연수가 끝나면 긴장과 함께 뇌가 풀려버린다. 그리고 집에서 유튜브로 도로주행 연수 동영상을 보면서 나와 같은 동지들의 연수 동영상을 보며 위안을 받았다. 내가 유튜브로 이런 걸 다 볼 줄 이야. 그리고 오늘을 곱씹어보며 잠들기 전에 고민에 빠진다.
'선생님, 제가 내일은 남편이 차를 써야 된다고 해서요..'
아니다, 아프다고 할까. 그렇게 도로주행 선생님께 문자를 썼다 지웠다 반복한다. 이렇게 10시간 도로주행 시간 채우는 것이 힘들일인가. 나에게는 10시간이 100시간 같다. 내일은 못한다고 하고 싶다. 아마도 내일도 내 마음은 준비가 안 됐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