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믹스커피 Dec 03. 2021

초보운전 첫날, 만삭의 주행 연수

운전은 처음이라

"초보운전은 이렇게 써놓고 붙이고 해야, 차들이 잘 비켜줘요."


 하얀 A4지에 까만색 매직으로 크게 쓴 글씨, '초보운전'을 스카치테이프로 차의 뒷 유리창에 붙이고 계신 이 분은 오늘의 운전 연수를 도와주실 분이시다. 나같이 장롱 면허로 면허증을 묵히다가 이제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운전대를 잡은 사람들에게 10시간씩 도로주행을 도와주는 분이시라고 한다. 다이소에만 가도 예쁘고 감각적인 초보운전 카드가 얼마나 많은데 굳이 A4용지에 이렇게 할머니들처럼 붙여야 되나 하는 객기스런 자존심을 부릴까 잠시 고민했다. 그 마음을 이미 알고 계시는지 스카치테이프를 정리하시면서, 운전대 잡아보면 지금 자기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거라고 하시며 옆좌석에 앉으셨다. 

 벌써 시작인가? 골프채 비슷한 걸로 브레이크에 걸면서, 이제 출발하자고 하신다. 


"네? 지금요? 바로요?"

"네, 액셀이랑 브레이크 위치 알죠? 그러고 나서 다른 건 하면서 익히면 돼요."


 운전면허는 이미 스무 살 때 수능을 치자마자 땄었다. 수능이 끝난 어른이 되는 증명이라도 되는 마냥, 수능이 끝나자마자 바로 등록한 학원이었다.  수능이 끝나고 할 일 없어진 고3은 학교에서는 밀린 영화보기를 하고 마치고는 운전연습 학원 노란 버스가 학교 앞에 즐비해있었으니까 나름 유행처럼 딴 것 같다. 그리고 그때는 나름 마트에도 가고, 스리슬적 아빠 차를 가지고 동네 정도는 돌아다니고 있었다. 운전 연수를 받을 때는 창문 열고 창문틀에 팔꿈치를 올려두고 라디오를 들을 정도의 여유를 부리는, 운전을 하는 어른이 된 스무 살이었다. 


  그런데 대학교 때 버스를 타고 집에 오다가, 트럭과 버스의 충돌사고를 겪은 뒤로는 운전대를 피해 다녔다. 운 좋게도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버스에서 친구와 수다 떨고 있다가 슬로모션처럼 트럭이 정면으로 오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 난 뒤의 사고라 트라우마처럼 남아있었다. 한동안은 차를 타고 갈 때에도 트럭만 지나가면 등골이 오싹하게 몸이 얼어있어서, 운전을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러면서 취업을 할 때에도 운전이 가능한 일은 제외하고 원서를 쓰게 되고, 자연스레 운전을 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게 만드는 데에 최선을 다했다. 아니 이렇게 기술이 발전하는데 자율 주행하는 자동차가 언젠가는 나오겠지 하고, 그때까지 운전을 안 하겠노라 농담처럼 던지곤 했다. 그리고 평생 운전을 업으로 하신 외할아버지가 농으로 운전하는 팔자보다, 차 뒤에 앉아있는 팔자가 되라고 운전은 최대한 늦게 배우라고 하시는 말씀을 합리화하며 살아왔다. 

 

 어찌어찌 운전을 안 해도 되는 일도 찾게 되고, 또 멀미가 심한 편이라 자동차를 오래 타지도 못해서 버스나 기차와 같이 대중교통을 좋아하는 편이라 크게 필요성도 못 느꼈다. 집을 구해도 대중교통을 기준으로 구하면 되었으니까. 심지어 아이를 낳고도 다들 시작한다는 운전을 첫째 낳고도 크게 필요성을 못 느꼈다. 집 앞에 병원이 있고, 어린이집이 있고, 편의시설이 다 있었다. 어디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주말에 남편과 함께 가면 되었고, 못 가게 되면 그냥 못 가나 보다 하고 포기했었으니까. 그리고 간간히 마음씨 좋은 육아 동지들이 라이드도 해주면서 콧바람도 쐬게 해주고 해서 감사의 표현으로 커피와 밥을 사기도 하는 이런 품앗이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다. 


 숲세권으로의 이사와 함께 둘째를 임신하고 나는 더 이상 운전대를 피하게 될 수 없게 되었다. 아직 교통권이 발달되지 않은 곳으로의 이사여서 하다못해 아이의 어린이집도 걸어가기 힘든 거리에 있었다. 임신 중에 한 여름에 유모차를 끌고 25분 거리의 어린이집에 첫째를 등원시키며, 내가 운전하는 것이 더 위험한지 지금 이 더위에 만삭의 몸으로 유모차를 끌고 어린이집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더 위험한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둘째가 태어나기 전에는 셔틀버스처럼 어린이집에 왔다 갔다 거리는 거라도 할 수 있게 해 보자. 그렇게 만삭의 몸으로 주행 연수를 시작했다. 


 "자 심호흡한 번하고, 액셀을 살짝 밟아보세요."

 "액셀요? 여기에요? 그냥요? 이렇게 밟아요? 중립 안 해도 돼요?"


1종 보통의 장롱면허의 초보운전, 시동 걸어볼 수나 있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