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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규섭 Apr 16. 2021

쓴다는 것

1.

꽤 아득한 과거처럼 느껴지지만, 지금처럼 온라인이 아닌 교실에서, 사회적 거리 따위는 신경 쓰지 않으며 수업을 들을 수 있던 때가 있었다.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꼭 들어야 하는 전공 수업들 이외에는 다양한 분야의 수업을 들으려고 노력했다. 특히 대학생 딱지를 붙인 지 몇 학기 지나지 않았을 때까진, 전공은 경제학이지만 음악을 하겠다 마음먹은 나의 시간표엔 ‘문학’과 ‘철학’이 들어간 강의가 빠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마음으로 아무 노래나 만들고 싶지 않았다. 노래를 발표한다는 것은 책을 출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남는 흔적이 생기는 것이니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부끄럽지 않았으면 했다. 그럼에도 졸작을 내어 놓은 부끄러움을 떨칠 수 없지만, 서툴고 어리숙했을지언정 최선이었다는 마음으로 위안하고 있다. 당시 나의 온 관심은 ‘좋은 노래’를 통해 ‘좋은 이야기’를 하는 것에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수요 공급 곡선에 대해 노래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러니, 대부분의 전공 수업은 맨 뒷줄, 후방에서 교실을 지킨 반면, ‘철학’ 혹은, ‘문학’이란 단어가 들어있는 수업은 최전선을 지키며 밝은 눈으로 공부했다.

 

그 즈음에 만난 한 수업에서 아직까지 마음에 남는 위로를 받았다. 교수님은 힘든 일을 겪거나, 우울한 마음이 들 땐 자신의 상황과 이야기를 빈 종이에 쭉 써내려가 보라는 것 제안을 하셨다. 물론 객관적으로도 힘들고 우울한 상황이 있을 수 있지만, 많은 경우 자신의 이야기는 삼류 드라마의 시나리오도 되지 못할 법한 시시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남이 아닌 나의 이야기이기에, 객관적으로 볼 수 없고, 그렇기에 감정이 감정을 낳는 악순환을 염려하는 마음을 전하셨다. 당시까지만 해도, 재수를 통해 입학한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나의 노력이 부정당했다고 생각하는 내면의 분노가 있었다. 인과응보, 사필귀정, 지성이면 감천. 수험생 시절에는 인고의 노력은 최상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동기부여를 사명으로 여기는 온갖 자기계발서와 성실함이 미덕이었던 선생님들의 말은 진리였다. 2년의 수험생활 끝에 원하던 대학의 진학에 실패했고, 우리나라 대부분의 학생이 그렇듯,  20년 인생의 거의 유일한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좌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부정적인 감정은 쉽게 전이된다. 대학이라는 키워드로 부정적 감정의 씨앗은 원가정과 나의 신앙, 인생 전반에 대한 고민에 부정적인 감정으로 싹 틔웠다. 남들과 비교하며 가지지 못한 것에 아쉬워하고, 재수라는 도전에도 괄목할만한 결과를 내지 못한 것 같아 속상했다. 이런 마음을 안고, 교수님이 권하는 방법에 동의하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일기라 하지만, 주기가 될 때도 있고 월기가 될 때도 있다. 하루의 일과를 적는 일이 아니라, 내 생각의 변화 느낀 것들이 생겼을 때 기록하다 보니 때에 따라 길고 짧음, 얼마나 자주 쓰는지의 격차가 크다. 그래도 모아놓은 일기장의 수를 보니 나름 적지 않다. 두툼한 노트 대여섯 권이 나란히 책장에 꽂혀있다.

 

교수님의 제안 이후에 쓰기 시작한 일기 초반에는 많은 화가 담겨있다. 도대체 세상이란 게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고민하던 내용이 많다. 벌써 수년이 지났지만, 그때를 돌아보면 온갖 번뇌를 지고 있던 나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모를 감정과 고민의 실타래 앞에 무력했던 시기였다. 여전히 어린 나는 이제야 그 답들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대학보다 넓은 세상을 곧 마주하게 될 것이고, 행위나 결과의 가치로 나의 존재가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소중함의 대상은 존재 자체이지, 성취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 소유와 존재는 구분해야 한다는 것.

 

나의 쓰기는 나와 세상에 대한 인식을 정리함으로 시작했다. 내가 가진 언어의 한계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던 세상과 관계에 질문을 던지고 오랜 시간이 걸릴지언정 거기에 답해가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글쓰기의 이점은 시간이 조금 지나고 다시 읽었을 때 나의 마음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객관적 인식은 치유의 시작이다. 적는 행위는 이런 객관식 인식을 하게끔 도와준다. 풀지 못할 것 같은 엉킨 실타래처럼 뒤섞인 감정과 사실을 마주하며, 차분히 풀어나가는 일이 쓰기이다.

 



2.

많은 계절이 지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남을 통해 글과 생각이 쌓여갔다. 시간이 지나, 군대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새로운 쓰기에 대한 눈을 갖게 되었다. 나는 의경으로 복무했다. 그리고 군 생활의 목표는 ‘책 읽기’였다. 민음사 고전을 모두 읽어버리겠다는 야망을 품고 부대에 전입하였다. 다양한 책을 읽으며, 또 지금도 함께 글을 쓰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 생각을 나누며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의경 버스에 앉아, 책을 읽고, 필사하고, 서평을 썼다. 좋은 작가들의 글을 읽으니, 겨우 1번 살아내기 어려운 삶이라는 것인데, 남들의 삶을 거저 얻게 되는 것 같았다. 아날로그의 멀티버스일까. 책을 읽으며 만나는 다양한 인생을 통해 하루를 살아도 평행하게 며칠을 사는 것 같은 즐거움이 있었다. 내가 아닌 책 속의 인물로 살아가는 시간이 내 하루에 더해진 것이다. 그러면서 나의 글을 확장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었다. 자의식과 세계관에 대한 공상을 넘어서 진짜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아날로그이다. 우리를 둘러싼 색과 공기와 시간은 모두 연속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디지털이다. 단어와 단어 사이에 있는 공백은 이산적으로 떨어져 있다. 기본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아날로그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이다. 연속적인 세상을 쪼개서 압축하는 과정이다. 음악을 한다는 사람이니 음악에 관련된 사례로 설명하면,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소리는 음파의 형태로, 연속적으로 존재한다. 우리는 옆에서 치는 박수소리와 같이 직접 음의 근원을 통해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어디선가 녹음된 소리를 듣기도 한다. MP3와 같은 음원 파일은 디지털의 형태이다. 연속적으로 존재하는 음파를 일정 단위로 나눠서 중간 중간 내용을 삭제하거나, 압축하여 적은 용량으로 만들어 낸다. 쉽게 전송하고 공유하기 위해서이다. 시각의 예를 든다면 무지개를 들 수 있다. 우리의 세계가 실제 무지개라면, 우리의 글은 빨주노초파남보. 7가지 색으로 표현된 크레파스 무지개이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1)



이 50여 획으로 이루어진 선에서, 푸른 바다의 모습과, 대조되는 빛을 가진 선명한 꽃이 핀 섬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떠올린다. 시각적 심상을 넘어서, ‘왜 버려진 섬인데 꽃이 피었을까.’ ,’꽃은 버려진 곳에도 피는구나.’, ’버리고 갖는 것은 사람들의 속성이지 자연의 선택이지 않구나.’ 라는 새로운 인식을 할 수 있다.

 

아름다운 것들은 관심을 바라지 않는다.2) 세상의 아름다운 것, 다양한 관심들 경험들. 표현하고자 하는 아쉬운 쪽은 우리이다. 바라지 않는 관심을 기울이며 녹여내고자 글을 쓰기도 한다. 엉성한 골자를 가진 언어를 통해, 선명한 원관념을 표현할 수 있게. 글을 쓰고자 한다. 이렇게 보니, 사진이든, 음악이든, 글이든 예술이라는 게 같은 것을 바라보는 일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예술의 특징은 과정 자체가 주는 유익이 있다는 것이다. 예술품을 만들어내기 위한 일련의 과정 모두가 예술이다. 글쓰기도 그렇다. 세상을 바라보고 감각하고, 그것을 녹여내는 일. 고민하는 일 모두가 즐거움이다. 그렇게 나는, 무지개는 7가지 색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시기를 지나, 셀 수 없이 연속적인 색들의 합이라는 사실에 닿아가는 중이다.









1)김훈, [칼의 노래]

2)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전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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