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준석 - [남과 여 OST]. (출처 : https://youtu.be/f2N4QH7T460)
1.
계절은 우리를 질투했다. 물론, 우린 개의치 않았다.
한여름의 볕은 열기와 습함으로 맞잡은 두 손을 위협했지만, 후후 열을 식힐 지언정 그 손을 놓아야겠다는 선택지는 우리에게 없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한기가 아직은 낯선 가을, 미처 챙기지 못한 외투가 아쉬운 것은 내 감기보단 네가 느낄 추위가 걱정스럽기 때문이었다.
온 세상을 얼릴 듯 차가운 바람이 코 끝을 얼리더라도, 한참을 안고있어도 될 듯한 핑계를 주는 것 같아 겨울에겐 되려 고맙기도 했었다.
나의 계절은 너와의 기억으로 가득 차있다.
하지만, 이제 너로 가득한 내 계절들을, 그 순환인 일년을, 아니 몇 해를 모두. 단단히 묶어 네게 보낸다.
닿으면 전기라도 오를까, 차마 너를 온전히 떼어낼 자신이 없으니, 차라리 내 지난 계절들을 통째로 네게 보낸다.
사진첩을 가득 채운 사진들, 혹여나 잊을까 일기장 곳곳에 새겼던 너와의 이야기, 악필로 미주알고주알 적어대던 편지를 포함한 나의 계절들을 네게 보낸다.
2.
나는 삶이 조금만 분주해져도 쉽게 요일감각을 잃곤 한다. 더 나아가, 새해의 첫 두 어달은 해의 바뀜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 홀로 작년을 살기도 한다. 210721과 같은 식으로 날짜를 표시하는 내 다이어리의 새해엔, 두번째 숫자가 고쳐진 날이 수두룩하다. 변화에 느린 나는 어제를 붙잡고 조금 더 오래 그 곳에 머무르지만, 그럼에도 우리 삶에 가까이 있는 감각이니 조금만 집중하면 비교적 금세 돌아온다. 네가 없는 내 계절도, 그렇게 금세 돌아올줄만 알았다. 너와 함께한 계절들보단, 나로 살아간 내 계절들이 더 많으니. 의심도 하지 않았다.
당혹감은 널 만나기 전의 내 계절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을 때, 두려움과 함께 찾아왔다. 처음엔 당황이었고, 당황은 당혹을, 당혹은 사고의 정지를 가져와서 계속 같은 문장을 되뇌게했다.
‘나는 이제 너없는 계절을 보낼 수 없다.’
3.
잘못은 전제에서부터 있었다.
내 계절들엔 너와 함께한 시간들이 가득하다.
너로 물든 내 계절은 이미 너를 분리할 수 없게 되었다.
들꽃의 개화를 뺀 봄은 없듯, 푸른 녹음이 없는 여름은 없듯, 단풍의 색감이 빠진 가을은 상상할 수 없듯, 볕마저 차가운 추위와 겨울을 떼어놓을 수 없듯. 나의 계절 속 너는 떼어지지가 않는다. 죽지 않는 한, 아니 내가 죽는대도 괘념치 않으며 순행할 계절엔 네가 빼곡하다.
너와 계절. 더이상 내게 없는 것이다.
네가 없는 계절은 애초에 없는 것이었다. 계절이 사라진 내겐 이제 추위와 더위, 그 중간만 있을 뿐이다. 나의 세상은 흑과 백 뿐, 오색의 계절은 없다.
4.
널 이해하고싶던 나는 네가 될 수 없었고, 네 주위에 머무는 타자였다.
날 이해하려 했던 너도 내가 될 수 없었고, 나에게 다 다를수 없었다.
사랑할 때도 닿을 수 없던 너는, 떠난 후에도 닿을 수 없다. 마치 위성처럼, 닿지도 떠날 수도 없게 되었다. 네게 닿아 안을 수 있었다면, 헤어진 지금 밀어낼 수 있었을까. 그러지 못해 여전히 공전할 뿐이다. 껴안지도, 떠나지도 못한 채 무한의 공간에 떠다닐 뿐이다. 나는, 너를 만나기 전의 나로 돌아갈 재간이 없다.
시간과 함께 수없이 많은 계절은 흘러갈 것이다.
나의 새로운 계절에 너는 없을 것이다. 너로 가득했던 계절에 네가 없는 하루들이 제멋대로 쌓여, 언듯 보기에 네가 있던 흔적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과 내 자신을 속이며, 네게 내 계절을 보낼 것이다.
떼어낸 나의 계절 속에 여전히 네가 있음을, 너와 나는 알 수 있다.
그것을 곱게 접어, 네게 보내겠다.
너의 계절에 내가 여전히 담겨있길 바란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길 바라며.
전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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