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대항해 시대의 상징, 제로니무스 수도원
8화에 이어집니다.
에그타르트의 레시피를 설탕 공장에 넘겨준 그 수도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장소가 주는 매력은 시각적인 요인에서 시작될 수 있지만 여운을 남기는 건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라고 느껴진다.
알이 두꺼운 안경을 끼고 두 손에는 종이 팸플릿이 들려있다. 고개를 아래로 내려 그곳에 적힌 작은 글씨를 읽기 위해 미간을 약간 찌푸리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커다란 벽에 걸린 아름다운 그림을 응시하다. 느린 걸음이 여기저기서 불어나는 호기심을 따라잡지 못하지만 조급한 모습은 아니다. 마누엘 양식의 조각 옆에서 찍은 몇 장의 사진은 곧 인화되어 집에 있는 빈 액자 안으로 들어갈 것만 같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 본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대체로 이렇게 남아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이 야속하지만은 않고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한 관념을 예쁘게 가꿔주기도 한다. 그 생각의 구조를 재설계하는 과정이 요즘은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것 같다.
이른 아침 수도원 앞에 도착했다. 어디서든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것을 좋아한다. 약간의 부지런함으로 주어진 시간을 양껏 누릴 수 있다는 좋은 느낌 때문이다.
수도원을 처음 마주했을 때 놀랐던 점은 외관의 웅장 함이었고 내부로 들어가서는 정교한 조각에 감탄하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항해와 바다를 상징하는 해양 모티프가 새겨져 있었다.
밧줄, 닻, 조개, 산호와 같은 단단함의 상징들.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힌다.
포르투갈 대항해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5세기말, 바스코 다 가마가 1498년 인도 항로 개척에 성공하면서 포르투갈은 세계 무역 강국으로 부상한다. 수도원은 이 인도 항해의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고 단순한 종교 시설을 넘어 국가의 위엄과 해양 제국의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되었다.
착공부터 완공까지는 약 100년의 시간이 걸렸다. 인상적인 부분은 탐험선이 출항하던 실제 항구와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는데, 인도 항해 전날 밤 바스쿠 다 가마와 그의 선원들이 기도를 올렸던 장소에 그대로 세워졌기 때문이었다.
2층 회랑의 정사각형 안뜰에는 정갈하게 꾸며진 풀밭과 작은 분수가 자리 잡고 있었다. 빛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그 위로 쏟아질랑 말랑하며 장소에 고요함을 더하는 것 같았다.
그중 가장 눈에 띈 것은 리브 볼트(Ribbed Vault)였다. 넓은 공간을 기둥 없이 드라마틱하게 덮고 있는 아치형의 천장 구조인데, 영어 단어를 직역하면 '갈비뼈 천장'. 찾아보니 리브 볼트는 천장에 아치형 '골조(rib)'를 먼저 만든 후 그 틀 사이를 석재나 벽돌로 채워서 만드는 방식이라고 한다. 하중이 골조(리브)를 통해 분산되기 때문에 더 높고 넓은 실내 공간을 가능케 한다.
수도원 회랑의 천장은 복잡하고 정교했다. 단순한 리브 볼트가 아니라 여러 개의 리브가 별 모양으로 교차되어 우주에 거대한 별이 떠다니는 것 같은 모습을 연상시켰다.
그러나 이 거대한 아름다움에도 끝이 있었다. 포르투갈에 자유주의 혁명이 일어나면서 수도회가 해산되고 제로니무스 수도원 역시 종교적인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세상에는 꼭 흥망성쇠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다. 그동안 막대한 권력을 쥐고 있던 수도회가 어디 있었냐는 듯 이 건물은 다양한 용도로 쓰였다. 빈민 수용소, 군사 시설, 해양 박물관을 거쳐 국립기념관까지, 일부 공간은 20세기 초까지 방치되기도 했었다.
한때는 그 힘을 잃고 방황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이제는 한 국가의 모든 이야기와 서사를 품은 장소가 되었다. 포르투갈의 가장 위대한 탐험가인 바스쿠 다 가마와 포르투갈 문학의 거장 루이스 드 카모이스의 묘소가 이곳에 나란히 안치되어 있었다. 리스본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을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실내의 조도가 낮아 창틀 사이로 스며드는 햇볕이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졌다. 바다만큼 커다란 불확실성을 항해하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단순히 용기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지금 있는 곳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꼈던 것은 아닐까.
확실하게 보장된 것만을 추구하도록 길들여진 도시에서는,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짐작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늘과 맞닿은 경계선을 넘어보겠다는 의지는 과연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아무도 걸어보지 않은 길을 믿고 나아가면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라는 직관 같은 것이 분명히 존재했을 것이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그런 선원들의 불안과 두려움을 오랜 시간 다독여주던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