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그덕 대는 나무 계단이 있는 집

시간이 흐르는 공간들

by 혜아


"예전에 건축가들은 현지에서 조달할 수 있는 자연 재료로 건물을 짓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점이 있었다."

- 알랭드보통 <현대사회 생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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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에 무게를 가득 싣고 온 힘을 다해 밀어야 한다. 내 키보다 훨씬 크고 무겁고 단단한 철문은 그렇게 해야 겨우 열리기 때문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단단한 돌덩이로 둘러싸인 좁은 복도가 나오는데 양옆 돌벽을 통해 늘 서늘한 공기가 새어 들어온다. 낮 동안의 뜨거운 열기를 잔뜩 받고 들어가도 우수수.. 시원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깜빡거리는 오래된 형광등 불빛을 타고 보이는 또 오래된 나무 계단. 한 발을 딛고 또 한 발을 디딜 때마다 삐그덕 대는 시간의 소리를 듣는다. 20kg의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그 계단을 올라갔던 날. 밤늦은 시간에 도착해 발소리를 조심하느라 더욱 긴장되었던 이 숙소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알랭드보통이 말한 자연 재료로 건축된 건물의 이점 첫 번째는 유기적 아름다움이다.


"첫째. 자연에서 구한 재료로 작업하면 크게 실패할 일이 없었다. 석재 혹은 목재로 지은 건물은 매우 추하게 만드는 게 어렵다. 그 자체로 높게 지을 수 없기에 눈에 거슬리는 게 있어도 어느 정도 참작된다. 석회암, 화강함, 대리석 등의 석재와 목재가 갖는 고유의 유기적 아름다움은 형태적인 오류를 완화한다."


자연 재료 고유의 아름다움이 형태적인 오류를 완화한다는 사실은 시각적인 부분에만 그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손가락으로 가볍게 터치하면 스르륵 열리는 자동문 대신 여기저기 녹이 쓴 초록색 철문을 둔탁하게 열어 하루를 시작한다. 엘리베이터 없는 5층 집까지 오르고 내리는 것을 생각하면 뭐 하나 빠트린 것은 없는지 집을 나서기 전부터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밤늦은 시간에 누군가 계단을 오르내리는지 삐그덕 대는 소리는 물론이고 가끔 옆집 사람들의 말소리가 소스라칠 정도로 가깝게 들릴 때도 있다.


평소 같았으면 묘하게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모든 소음 스트레스를 꽤나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 곳. 19세기에는 어떤 사람들이 이 집에 살았을까. 시간이 쌓인 공간은 그곳의 단점을 희미하게 하며 동시에 재미난 상상력을 부여한다. 내게 이 오래된 집에서의 시간이 어땠냐고 묻는다면 그 자체로 여행은 이미 완성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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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 또한 중세와 18세기 경관이 잘 보존되어 있는 도시다. 핵심 구시가지인 리베이라 지구와 상 벤투역 주변은 대부분 18세기 이전에 형성된 거리 구조와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중 대부분의 주거 건물은 17~18세기 상업과 항해로 도시가 번영하면서 형성되었는데 포르투 와인 무역으로 부유해진 상인들이 다층 주택을 지어 1층은 상점, 나머지 위층은 거주 공간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가장 신기했던 점은 도시의 거의 모든 건물들이 팔짱을 낀 듯 촘촘히 붙어있는 구조였다. 벽과 벽 사이에 좁은 공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건물들이 물리적으로 붙어 서있다. 알고 보니 이것 또한 중세 도시의 전형적인 특징인데 상업 도시의 협소한 필지 위에 세로로 길게 건물을 세우는 방식이 그 당시 일반적인 건축 패턴이었다. 좁은 도시 밀도와 무역항이라는 상업 도시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알랭드보통이 말한 자연으로 지은 건축물의 이점 두 번째는 고유한 특성이다.

"둘째. 특정 장소와 연결해 우리를 그곳으로 이끄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중략) 하지만 현대는 유리와 강철을 도입해 크고 인상적인 건축물을 빠르게 만들게 되었다. (중략) 우리가 어떤 건물을 두고 '어디에나 있음 직하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 건물의 세계적 야심을 칭찬하는 게 아니라 그 건물이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상기시키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집 전체를 빌릴 수 있는 방식의 숙소는 여러모로 챙겨야 할 것이 많지만 그만큼 자유로운 느낌이 든다. 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에 즐거움이 가득한 모순이다. 언젠가 다음 여행 숙소에서는 좋아하는 꽃을 사다 놓아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어쩐 일인지 이번 여행의 첫 숙소에 커다란 꽃병이 준비되어 있었고 동네 마트에서 스타티스를 사다가 꽂아두었다. 좋아하는 납작 복숭아까지 사 오니 제법 우리 집 같은 느낌. 낯선 곳에 잠시 짧은 터를 내리는 행복한 방법이다. 어디에나 있음 직한 방보다는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공간에 원하는 환경을 물리적으로 만들어 둔다.


이런 방식의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던 때를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혹시 그때 잘 안 풀렸다고 생각했던 일이 사실은 진짜로 나에게 잘 된 일이라는 것을. 안주하고 버티는 것보다 탐색의 렌즈를 통해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건, 두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너무나 가치 있는 일이라고 여겨진다.



*알랭드보통 <현대사회 생존법> · 최민우 번역 · orangeD X THE SCHOOL OF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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