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서단 땅끝마을, 호카곶
힘들었지만 뒤돌아보면 아름다운 것들이 꽤 많은 것 같다. 내게 가장 쉽게 떠오르는 것은 등산인데 산에 오르는 것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좋아하는 편이고 그 이유는 먼저 언급한 이유와 같다. 힘들었지만 뒤돌아보면 아름다운 것들이 더 많아서.
유럽 최서단 땅끝마을로 가는 길은 결코 쉽진 않다. 시내 중심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또 30분을 가야 한다.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간단한 일처럼 보이지만 언어가 다른 낯선 도시에서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이상한 것이 어떠한 노력도, 어려움도 없이 그곳에 가닿는다면 그건 또 너무 심심한 것이다.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곳이라면 땅끝마을도 예외는 없다.
손에 든 휴대폰 속 지도앱을 새로고침 해가며 기차역을 찾아가서 허둥지둥, 기차 티켓을 뽑는다. 플랫폼을 찾아 헤매고 목적지를 확인하고 기차를 타고나서도 멈추지 못하는 긴장감. 잘못 탄 건 아니겠지? 지도앱이 실시간으로 가리키는 방향키를 보고 나서야 안심한다. 약간 서늘한 날씨에 도착한 도시 외곽의 작은 기차 플랫폼. 둘러보고 싶지만 버스 시간에 맞춰 서둘러야 한다. 시골마을이라 버스 배차 간격이 길기 때문이다. 기차역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며 대도시의 중심을 벗어난 근교의 한적함은 어느 도시건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크게 헤매지 않고 정류장에 도착. 큰 배낭을 멘 여행자 세명, 그리고 동네 주민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그 대열에 우리도 자연스럽게 합류한다.
버스를 탔으니 이제 진짜 안심이다. 하고 생각함과 동시에 방심하면 안 된다는 것을 곧바로 깨닫는다. 오르락내리락 울렁거리는 시골의 언덕길을 달리길 30분. 버스 창밖을 볼 정신도 없이 멀미에 괴로워하다가 겨우 도착한 호카곶의 아담한 버스 정류장. 아무 데나 보이는 곳에 걸터앉아 물 한 모금 들이켜고 그제야 고개를 들어본다. 괴로웠던 길이 저렇게 아름다웠어?
포르투갈의 대표 시인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의 오스 루지아다스(Os Lusiadas)라는 서사시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Onde a terra se acaba e o mar comeca
거기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
1498년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로 향하는 항로를 개척한 후, 16세기 포르투갈은 해양 제국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카몽이스는 국가의 정체성과 영광을 노래하며 포르투갈을 유럽 서쪽의 끝이라고 묘사했으며 지금까지 오스 루지아다스는 포르투갈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다. 총 10편으로 구성된 이 서사시는 표면적으로는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 항로 개척을 중심으로 한 항해 서사이지만, 역사적 사실에 고전적 신화(올림포스의 신들)를 결합한 사실과 상상이 교차하는 작품이다.
유럽 최서단 땅끝마을인 호카곶. 그곳에 세워진 기념비에는 루이스 드 카몽이스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
육지가 끝나는 곳에서 바다가 시작된다.
원래 이 문구가 가리키는 건 포르투갈 전체를 의미했지만 20세기 후반 신트라 시가 기념비를 세워 그 문장을 호카곶에 새겨두었다. 문학적 은유가 특정 지리 지점의 표식으로 전유된 사례라고 한다.
그렇게 여느 날의 여행처럼 우리는 뚜벅뚜벅 유럽 대륙 가장 끝이면서도 바다의 시작인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멀미 기운이 가시니 눈앞에 있는 아름다움이 물리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호카곶의 상징과도 같은 이미지인 붉은 등대는 바람을 맞으며 위풍당당 서있고 그 사이를 오르내리는 여행자들의 발걸음도 가벼워 보인다. 커다란 기념비는 더 거대한 대서양을 바라보고 팔을 벌리고 있는데 바다의 에너지를 온몸으로 흡수하는 것만 같다. 바람이 거셌지만 이상하게 바다는 잔잔했다. 대서양을 이렇게 가깝고 직접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신비하게 느껴진다.
골칫거리처럼 느껴지는 것 하나 없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자연으로 이루어진 풍경을 본다. 부드러운 구름에 높지 않은 산 봉우리, 광활한 대서양만이 보일 뿐이다. 우와 하는 소리만 연신 내뱉으며 감탄하는 일 밖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이지만 상점이나 카페하나 없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여행자들을 위한 인포메이션 센터와 등대 옆에 아주 작은 기념품 샵만 있을 뿐. 등대가 있는 작은 언덕을 올라 기념품샵에 들러보기로 한다.
조용한 기념품샵에는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온다. 바다가 생각나는 시원한 색감의 아기자기한 그릇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우리는 붉은 등대가 예쁘게 담긴 마그넷 두 개를 사서 나왔다.
쉽게 갈 수도 있는데 어려운 길로 가려고 하는 이상한 마음은 무엇일까. 험난한 길 끝엔 분명히 얻어지는 것이 있다.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은 누군가가 주머니에 쏙 쥐여주는 것으로는 느낄 수 없다. 긴장감과 설렘이 공존하는 과정 속에 퀘스트를 하나씩 깰 때마다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은 상대적으로 커지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