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아침 커피

대서양 연안에 가까이

by 혜아


스쳐 지나가는 교통 표지판에 'Spain'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휴대폰을 보니 통신사 로고가 바뀌었다.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 포르투갈에서 스페인으로 넘어온 것이다. 단 세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기차나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본 경험은 캐나다에서 처음, 그리고 이번이 두 번째다. 어쩌면 이건 가장 이국적인 경험 중에 하나가 아닐까? 수고스러운 과정이 많은 비행기를 타지 않고 다른 언어를 쓰는 나라로 갈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줌-인, 줌-아웃. 언제나처럼 구글 지도를 이리저리 살펴본다. 포르투에서 가장 가깝게 갈 수 있는 스페인의 도시는 어디일까.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 아니어도 좋다. 아니 유명한 곳이 아니라면 더 좋겠다. 그렇게 찾은 도시가 비고였다. 비고는 스페인 폰테베드라 주의 항구 도시다. 축구팀 셀타 비고의 연고지이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는 여행자들의 관문과도 같은 곳이다.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처럼 유명한 관광 도시는 아니지만,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라고 한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미끄러지듯 비고에 도착했다. 포르투갈에서 스페인으로 육로 국경을 넘었다는 것은 Espana라고 쓰인 국경 표지판과 휴대폰 속 통신사의 바뀐 로고를 보고 알았다. 버스가 따로 출입국 검문소에 정차하지도 않았고 여권 검사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셍겐 협정으로 국경 통제가 없는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가는 방법이 이렇게 단순할 수가 있다니.


여행을 시작하려면 커피가 필요한 법.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가장 가까운 카페로 향했다. 가는 동안 큼직하고 군더더기 없는 건물 옆구리에 HOTEL이라고 정직하게 쓰인 오래된 간판들이 눈에 띄었다. 알파벳 하나가 떨어져 있거나 녹이 슬어 원래의 색을 잃어버린 것들을 보면 희한하지만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골목길로 들어서자 미리 찾아둔 카페가 보였다. 야외 테이블에는 아침 커피를 마시러 나온 동네 사람들로 가득했지만 내부는 한적했다. 언제나 그랬다. 사람들은 따뜻한 날씨를 야무지게 즐기려고 하는 것 같았다. 어느 레스토랑을 가도 테라스 자리에는 사람들이 가득했지만 가게 안쪽 자리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이다. 이 남쪽 나라 특유의 여유로움은 도시가 대서양 연안에 인접해 바다를 끼고 있어서일까 하고 생각했다.


따뜻한 커피를 주문하고 테이블에 앉았다. 카운터 안에서 바리스타 두 명의 움직임이 재빠르다. 손님들과 다정한 대화를 곁들이면서 커피를 내리고 빵을 데운다. 그들이 젊어서 활기차 보인게 아니라 활기차서 젊어 보였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사람들 틈에서 나만 아는 긴장감을 느끼는 것만큼 설레는 일도 없다. 어쩌면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야만 진짜 원하는 것을 알게 된다는 기대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진부한 이야기이지만 설렘은 그런 기대감에서 나온 것일테다.


아침의 간단한 인사와 짧은 대화가 하루의 시작을 얼마나 기분 좋게 해 주는지 우리는 자주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친절함이 약함의 증거가 아니고 다정함이 기본인 세상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 이상주의적인 바람일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결국 내가 있고 싶은 세상은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터무니없는 생각은 아닐지도.


그래서 폰테베드라 주의 가장 큰 도시, 비고의 인상이 어떠했느냐 묻는다면 역시 좋아하는 작가의 문장을 빌려와야지.


"이제 도시는 이렇게 완전히 자연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하나의 요소뿐 아니라 모든 요소들, 즉 물, 대지, 공기와 함께 결함 될 필요가 있다. 물은 도시의 생동감을 높여준다. 강으로 견고한 배와 변화를 실어 나르건, 바다로 장엄한 무한을 드리운 채 물이 가진 영원성에 맞서건 상관없이, 하천이나 강, 바다 등 물이 없다면 도시는 완벽하게 아름다울 수 없으리라"


슈테판 츠바이크 < 수많은 운명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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