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사실은 전혀 믿을 수 없었다. 내가 본 것이 바다가 아니라 호수라니. 호수라는 단어의 이미지를 떠올려본다.
아마도 버드나무가 늘어져있을 둥그런 호수 주변에는 걷기 좋은 길이 있어서 길어야 1~2시간이면 호수 한 바퀴를 충분히 돌 수 있는 크기일 것이다. 그러니까 호수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다 보일 수 있는 정도의 면적이 호수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우리의 발바닥을 동력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귀여운 오리배가 떠있을 수 있지만, 대략 2,400명을 태울 수 있는 커다란 크루즈가 이쪽 땅에서 저 멀리에 떠있는 섬까지 호수의 물살을 가르며 간다는 것은 한 번도 상상해 보지 않았다. 거짓말! 이거 바다잖아.
하버프런트에서 토론토 아일랜드로 가는 페리를 처음 탔을 때 내가 친구들에게 했던 말이었다. 대만에서 온 신디, 터키에서 온 하티제, 그리고 한국에서 온 나. 우리들은 정확히 지구 반대편에서 북대서양과 북태평양을 건너와 모두에게 낯선 이국땅에서 만났다. 그러나 우리는 어릴 적부터 많은 시간을 함께 해온 소꿉친구들처럼 토론토의 덥고 맑은 여름을 거의 매일 함께 했다. 그녀들과 자주 맥도널드에서 1달러짜리 커피를 사들고 도심 이곳저곳을 쏘다녔으며 가끔은 관광객들이 붐비는 도심의 명소로 하루짜리 여행을 떠났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녀석들이 없는 토론토의 여름은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바다를 호수라고 하는 건 아니잖아. 요 녀석들이 나를 놀리는 거 아냐? 하면서 바로 구글맵을 켜고 두 손가락을 움직여 줌-아웃을 해본다. 지도 위에 내가 타고 있는 페리가 붉은색 점의 현재 위치를 나타내며 파란색 바다 한가운데에 서있었다.
조금 더 줌-아웃. 그리고 보이는 글자, Lake Ontario.
나는 지금 정말 바다가 아니라 온타리오 호수를 나아가고 있는 거대한 크루즈에 타고 있었다.
세상에 내가 바다라고 알고 있을 호수가 얼마나 많이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봤다. 그 관념을 넓혀보면 아마도 셀 수 없을 것이다. 그때, 지금껏 알고 있던 뿌리 박힌 호수의 이미지가 통째로 뽑아내어졌다. 어떤 호수는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는 도저히 볼 수 없고, 바다처럼 철렁대는 파도가 있으며, 오리배 대신 피터팬에 나오는 해적선 같은 것이 떠다닐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듯 새로운 관념의 호수를 알게 된다는 것은 정말이지 멋진 일인 것 같다.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잖아, 이게 관례인걸' 하고 모종의 결론을 유도하는 세상 속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던 일은 북태평양을 넘어가니 정당한 행위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스스로 단점이라고 여기고 있던 기질이 사실은 어딘가에서는 꼭 들어맞는 장점이 되는 것이다. 그 사실을 자각하면 거칠었던 세상은 어느덧 즐겁게 느껴질 수도 있고 스스로 심리적인 안정감을 추구할 수 있다.
실패와 무력, 나태함이 만들어내는 나약함 속에서도 우리는 자라나고 있고 그 모든 방황의 순간이 사실은 나선형으로 발전하고 있던 것이라면. 생각의 코어가 전환되자 과거와 미래는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 모든 결정권은 결국 내 안에 있는 것이라고, 그 도시들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이다.
또 다른 차원의 세상, 새로운 생각에 열려있는 마음은 결코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다. 독서의 기쁨을 알아버리고, 아침형 습관을 만들고, 달리기가 주는 도취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낯선 도시에서 마주친 친절과 다정함은 글로 쓰며 마음속에 가득 챙겨두었다. 이제 어디로든 새어나가지 않게 꽉 동여매고, 그 안에서 덩실덩실 유쾌한 춤을 추는 거야. 같은 경로를 왕복하는 진자운동처럼.
언제 다시 이 도시에 올 수 있을까. 한껏 그리워하다가 정말로 다시 가게 된 이번 여행처럼, 마음속에 존재한다면 어디로든 꼭 가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연재를 마칩니다. 저의 글을 스치듯 읽어주셨거나, 소중한 시간을 내어주신 작가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저에겐 큰 글쓰기 동력이 되어주셨습니다. 자주 행복하고 무조건 건강하고 따뜻한 봄이 되시기를 무척이나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