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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지구 반바퀴 뒤에 나이아가라 폭포

by 혜아 Mar 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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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초등학교 2학년 즈음,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폭포 세 곳에 대해 배운 기억이 있다. 정확히 무슨 과목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과수 폭포, 빅토리아 폭포 그리고 나이아가라 폭포가 세계 3대 폭포라고 일컬어진다는 것은 이상하게도 기억에 선명하다. 그중에서도 나이아가라 폭포는 그 이름으로 하여금 우리 어린이들에게 재미난 말장난의 기회를 제공해 주기 마련이다. 나이야 가라... 나이야 가버려라... 나이야 오지 말아라..!


이과수 폭포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국경, 빅토리아 폭포는 아프리카 잠비아, 나이아가라 폭포는 미국과 캐나다 국경에 걸쳐있다는 것은 학교에서 내주는 퀴즈를 풀며 알게 되었을 것이다. 어릴 때 자주 지구본을 돌려보면서 다른 나라의 수도를 맞혀보고 신기한 도시 이름을 구경하곤 했는데, 나이아가라 폭포는 지구본을 반바퀴나 돌려야 하는 곳에 있었다. 그래도 그 세 개의 폭포 중에 하나를 갈 수 있다면 남미나 아프리카보다는 미국 쪽이지 않겠어? 하고 어렴풋이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어린 나이에도 남미나 아프리카는 쉽게 갈 수는 없는 곳이라고 추측한 것인가. 그때는 깔깔거리면서 '나이야 가라'를 외칠 뿐이었지만 언젠가는 그 거대한 폭포를 직접 마주할 것이라는 다짐을 마음 깊은 곳에 감추어 놓았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폭포는 브라질의 이과수 폭포이고 나이아가라 폭포는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폭포인데 이는 사실 두 개의 대형 폭포와 하나의 소형 폭포로 나뉜다. 그 셋 중에 일반적으로 나이아가라 폭포라고 알려진 가장 크고 유명한 폭포가 캐나다령에 있는 캐나다 폭포이다. 모양이 말발굽처럼 생겨서 영어로는 홀슈스(Horseshoe) 폭포라고도 부른다고. 이 홀슈스 폭포의 높이는 53.6m, 깊이 파인 커브 모양을 이루고 있는 길이가 무려 790m에 달한다. 폭포의 절벽 아래로 쏟아지는 물의 양은 분당 약 1억 5~6,000만 리터라고 하는데, 사실 그 양은 실제로 보고 있어도 잘 가늠이 안된다. 초당 28만 리터가 넘는 물이 춤을 추며 절벽 아래로 떨어지니 주변에는 언제나 수증기가 떠다니고, 폭포가 내는 엄청난 소리는 지구의 모든 시끄러운 소음을 차단시킬 뿐이다.


이 자연의 거대한 쇼를 즐길 수 있는 가장 유명한 방법은 단연코 혼블로어 크루즈라는 액티비티다. 크루즈를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 바로 앞까지 가서 그 굉장한 힘을 느껴볼 수 있다. 캐나다 쪽에서 출발하는 크루즈의 사람들은 붉은색 우비를 입고, 미국 쪽에서 출발하는 사람들은 파란색 우비를 입는데 두 개의 배가 번갈아가며 웅장한 자연에 감히 덤벼보려고 하는 모습은 보고 있으면 참 재미있는 풍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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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미국 배, 오른쪽은 캐나다 배


어려서부터 나이아가라 폭포를 마음에 품고 있어서 그런지, 운이 좋게도 이렇게 귀중한 경험을 두 번이나 하게 되었다. 첫 번째 왔을 때, 여기는 꼭 부모님이랑 다시 와야 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생각한 대로 부모님과 다시 나이아가라 폭포에 왔다. 나는 대부분 혼자 하는 일들을 잘하는 편이지만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 그것을 함께 나누고 싶은 소중한 사람들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혼자만 감동하는 건, 그건 역시 좀 외로운 일인 것 같다.

 

붉은색 우비를 입고 크루즈 2층에 올라타자 휴대폰이나 카메라를 방수팩에 넣어 폭포의 아름다움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소유하려는 사람들이 보인다. 우비를 입어도 쫄딱 젖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방수팩을 준비하지 못한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 가장 안쪽에 슬그머니 넣고 단단히 지퍼를 걸어 잠갔다. 이 시간은 오직 내 두 눈으로 폭포의 실재를 확인하고 자연과 호흡하겠노라 다짐했다.


선착장을 출발한 크루즈는 캐나다(홀스슈)폭포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귀엽게 보이는 미국 폭포를 거쳐 서서히 홀스슈 폭포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 아직은 배 위의 모두가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시간이다. 날씨가 맑은 날, 그저 커다란 크루즈 위에서 낮의 햇살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저 멀리 보이던 홀스슈 폭포가 점점 가까워 오기 시작하며 갑자기 폭우가 오듯 엄청난 양의 물줄기가 머리 위로 쏟아진다. 폭포의 위용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는 나이아가라 폭포와 엎어지면 코 닿을만한 거리에 서있게 된 것이다. 살짝 출렁거리는 물살에 중심을 잡고 동시에 폭포수를 맞으면서도 눈앞에 존재하는 폭포를 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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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가까이 가도 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 즈음 배는 방향을 돌리기 시작했고 그제야 우리는 폭포가 뿜어대는 영원한 소나기 안에서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멀어지고 있는 홀스슈 폭포.

배에서 내려 붉은 우비를 벗고 정오의 햇빛이 내리쬐는 반짝이는 아스팔트 길을 다시 걷는다. 20분의 짧은 시간 동안 완전히 다른 세계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웅장한 폭포를 뚫고 나오니 우리 앞의 세상은 더 아름답게 열려있는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그릴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을 믿어야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실은 어리석은 걱정이 가득한 세상에서 점점 간과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터무니없이 멀어 보이는 모습일지라도 우리가 믿고 상상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그것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이야 가라-라며 깔깔대던 소녀에게 생각보다 폭포는 가까이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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