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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스민 소박한 즐거움

도서관 1층 카페에서 드립커피 마시기  

by 혜아 Mar 1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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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토론토에서 도서관이나 서점, 카페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보려고 한다. 그리곤 산책까지 하면 거의 완벽한 하루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곧바로 주변에 걸어갈만한 도서관이 있나 찾아보았다. 다행히 숙소가 있는 지역에서 도보 15분 정도 거리에 공공 도서관이 있었다. "Toronto Reference Library"라는, 알고 보니 캐나다에서 가장 큰 레퍼런스 도서관이라고 한다. 레퍼런스 도서관은 일반 도서관과 그 목적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데, 주로 전문적인 참고 자료, 고문서, 원고, 마이크로필름 등과 같이 대출이 불가능한 고유한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여기는 대출증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마도 대출 가능한 자료도 함께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도서관은 총 5층짜리 건물인데, 인근 건물들과 높이를 맞추기 위해 1층은 14m로 높게 설계되었으며 건물 외벽도 마찬가지로 주변 건물들의 재료와 일치하도록 붉은색 벽돌로 마감되었다. 외부만 보면 규모가 굉장히 크고 웅장해서 도서관이라는 사실이 조금 놀라울 정도였다. 입구로 들어서면 내부의 거대한 로비가 건물의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는데, 높은 천장으로부터 유입되는 자연광을 받아 더 밝고 넓어 보인다. 무엇보다 개방감 있는 구조 덕분에 5층에 올라서면 내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것이 가장 인상적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그 독특한 구조 덕분인지 2010년 개봉한 영화 <레드(RED)>의 일부 장면이 이 도서관에서 촬영되었다. 브루스 윌리스와 존 말코비치, 모건 프리먼이 나왔던 DC의 코미디 영화다. 실제로 미국 배경의 드라마나 영화를 캐나다에서 촬영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는데(미드 '슈츠'와 넷플릭스 시리즈 '버진리버'를 포함하여), 우연히 갔던 곳이 이렇게 어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일은 웬일인지 흥미롭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 나왔던,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Alt&Neu 레코드 가게는 꼭 가보고 싶다. 영화와 해당 장면의 사진을 너무 많이 봐서 이미 가본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하지만.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시장이나 도서관, 대학교를 꼭 가보게 된다. 재래시장은 현지 사람들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그들의 생활방식을 관찰할 수 있어 좋고, 도서관이나 대학교는 그 환경만으로도 이성이나 감수성이 고양되는 느낌이 있다. 대개 그런 곳에 있다 보면 '집에 가서 책을 좀 더 열심히 읽어야겠는 걸' 하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고 보면 어떤 환경에서 받는 느낌과 감정은 사람의 인생에 참 중요한 역할을 하는구나 싶기도 하다.


얼마 전에 크리스티앙 보뱅의 <작은 파티 드레스>라는 에세이를 읽다가 이런 문장이 나왔다.


이렇게 독서의 길로 뛰어드는 그들은 언제까지나 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그 길이 끝이 없음을 알고 기뻐한다. 기쁨과 공포를 동시에 느낀다. (중략) 더 많이 읽을수록 아는 건 점점 더 적어진다.

요컨대 한쪽에는 아무것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읽기가 전부인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는 수많은 경계가 있다. 돈도 그중 하나이다. 그런데 책을 읽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의 경계는 돈의 경계보다 더 폐쇄적이다. 책을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 사이의 벽은 땅속 깊은 곳, 얼굴 밑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나는 대단한 독서가는 아니지만 책을 읽지 않는 사람과 책을 읽는 사람, 그 사이의 경계를 잘 알고 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 보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졸업 논문이니 취업 준비니 도저히 책에 사용할 시간이 없었다고 얄팍한 핑계를 대고 싶긴 하지만..) 책과 거리를 두고 살았던 과거 몇 년의 기간과 독서가 다시 일상 안에 들어온 지금을 비교해 보면, 역시 좀 달라졌어하고 느끼게 된다.


지루함 속에서 뭔가를 창조해 낼 수도 있고 외부의 기준을 그렇게 맹신하지 않으며, 일상 속의 아름다움을 빈번하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은 직업과 같은 단일한 기준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고 입체적인 방식으로 정의 내릴 수 있는 것.

그동안 만났던 책의 저자들은 그 모든 것에 조급해하지 않고 시간을 가져도 된다고 너그럽게 확인시켜 주기 마련이다.

보통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작가, 바다 건너에 있는 작가 그리고 심지어 수 세기 전의 작가들이 이런 과정을 도와주었으며 나는 적절히 그들의 생각과 태도를 훔쳐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재치 있는 알랭드보통의 말을 빌려와 앞으로도 책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배운다.

 

혹시 우리가 책의 홍수 시대를 맞이하여 안타까워해야 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지능과 감수성을 발달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단순히 더 많은 책을 읽는 것보다는 오히려 몇 권의 책을 여러 번 숙독하는 것임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아직 읽지 못한 책들에 대해서 죄의식을 느끼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아우구스티누스나 단테보다도 이미 더 많은 책을 읽었음을 그만 간과하고 있다. 즉 우리는 책을 얼마나 많이 소비하느냐가 아니라, 오히려 책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느냐가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을 너무 무시하고 있다.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알랭드보통


도서관 5층에서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다가 계단을 타고 한층 한층 씩 내려왔다. 그냥 가기는 아쉬우니 1층에 있는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를 한잔 해야지. 공교롭게도 토론토에서 가장 좋아했던 커피 브랜드의 지점이 여기 도서관 1층에 있다.


이름은 발자크 커피. 프랑스의 작가, 오노레 드 발자크의 이름을 따온 커피 브랜드다. 왠지 단편 소설책 하나를 손이 쥐고 있어야 할 것 같다.

하나는 드립 커피, 다른 하나는 기계에서 내려지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창밖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바깥은 조금 쌀쌀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덕분에 따뜻한 실내에서 마시는 커피가 더 고소하게 느껴졌다. 

 



토론토 공공 도서관의 입장료는 완전히 무료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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