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시드니에서 에고를 만나다
과연 운명은 있을까?
사주를 보는 것은 미신으로 생각했다.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내 운명은 내가 개척한다고 우겼다. 하지만 매번 넘어져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니 개척은 개뿔이다. 나름 선한 의도로 잘한다고 했지만 결과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친정과 심각한 갈등이 촉발되었다. 정신이 너무 피폐해져 버렸다.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강도가 너무 세다는 게 문제였다. 결국 몸이 아파 이틀을 침대에서 누워만 있었다. 그동안 억눌렸던 어마한 분노가 폭발했고 사람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실망을 느껴본 적이 처음일 정도였다. 그즈음에 갑자기 권고사직을 받고 회사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연속적으로 그동안 맺었던 적잖은 인간관계들이 하나씩 어깃장이 나면서 뒤틀리기 시작했다. 결국 도미노가 쓰러지듯 주변 환경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시간이 약이라고 최고로 억울한 마음이 어느 정도 사라지고 나니, 나에게도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의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대체 나란 인간은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불행이 일어나는지? 왜 인생이 이렇게 안 좋게 흘러가는지? 너무 힘들고 절박해서 무엇이라도 잡고 싶었다. '맞아, 나에게 이렇게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타고난 팔자 때문일 거야. 그래 이건 내 탓이 아니야.' 그렇게 스스로 합리화를 하고 싶은 마음에서 사주 공부를 시작했다.
사주명리는 그럴싸한 이야기
결론적으로 야기를 하자면 사주명리는 미신이 아니고 어르신들의 지혜가 담긴 인문학이다.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가 사주명리 인문학인 것이다.
인문학의 과제는 객관적 진리를 찾는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큼
'그럴싸한 이야기'를 만든 일이다.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사주명리는 인간과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그럴싸한 이야기, 즉 스토리텔링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주를 보고 한편으로는 믿지만 한편으로는 그냥 재미로 접근하는 이유가 바로 그럴싸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설사 어떤 점쟁이가 기가 막히게 미래를 예측했더라도 그것은 잘 짜인 개연성 높은 한 편의 드라마 같은 것일 뿐, 과학적으로 그것이 옳은 견해인지 아닌지 가릴 수 있는 방법은 전무하다.
21세기 ChatGPT 같은 인공지능이 등장한 이 시대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사주를 보러 다니는 것만 봐도 얼마나 사주명리가 나를 이해하는데 꽤나 도움이 되고 납득이 되는 이야기꾼인지는 이미 증명이 끝난 셈이다.
사주 에세이 연재를 시작하며
책 제목처럼 남편은 정말로 개 같은 사람이다.
그는 개띠에 태어났고 가끔 나한테 개새끼라는 욕을 먹는다. 그런데 사주를 배우고 나니 미처 몰랐던 나의 민낯을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남편이 개새끼가 맞지만, 아내인 나 역시 돌아이 개새끼였다.
앞으로 펼쳐질 에피소드는 사주공부에 관한 내용이 아니다. 사주라는 도구로 조명해 본 내 인생 이야기이다.
즉, 사주로 풀어보는 스토리텔링이다. 살아오면서 일어난 사건사고들 그리고 일상에서 벌어진 에피소드를
사주를 통해서 바라보면 어떻게 해석되는지 그것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사주를 공부하면서 미처 몰랐던 나의 에고 이야기, 이해가 되지 않았던 남편을 이제는 조금이나마 포기(?)하게 된 이야기들로 한번 꾸며보려고 한다. 시중에 사주에 대한 이론을 설명해 주는 책은 많다. 하지만 한 개인의 삶 속에서 사주가 어떻게 펼쳐지는 그걸 보여주는 책은 없다. 그래서 그걸 해보고 싶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살포시 엿보는데 사주 지식도 조금 쌓이고 재미도 챙기고 덤으로 작은 통찰도 얻어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간단히 내 사주 보는 방법
사주팔자는 생년월시가 변환된 운명의 코드로, 태어날 때 우주와 첫 호흡을 하면서 몸에 새겨진 에너지 흐름을 의미한다.
예전과 달리 정보 혁명 시대에 살고 있기에 사주를 배우는 것도 진입장벽이 많이 낮아졌다. 핸드폰에 만세력 앱을 설치하면 내 사주 명식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가 있다. 보통 만세력 천을귀인, 하늘 도마뱀 만세력, 원광 만세력을 추천한다.
참고로 수니가 만든 사주알라 사이트를 통해서도 간단하게 볼 수 있다. sajualla.pages.dev
사주풀이 한계
본격적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변명을 조금 하겠다. 사주에 빗대어 내 이야기를 쓰다 보면
마치 끼어 맞추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처럼.
양자역학에 유명한 이중 슬릿 실험이 있다. 아인슈타인은 빛은 파동이면서 입자라고 밝혔다. 이 실험에서 관찰자가 없으면, 빛은 파동처럼 움직여서 간섭무늬가 나타나지만, 관찰자가 보는 순간, 빛은 입자로 변해서 특정한 곳에만 나타난다.
이것을 사주에 비유를 하자면, 사주명리학 이론 자체는 파동으로 존재하지만, 내 인생에 접목하는 순간, 바로 입자로 변해서 나만의 해석, 스토리텔링이 생겨난다. 즉 현실에서 사주 풀이는 끼어 맞추기식이 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럼 개새끼 남편 철무벽의 사주 명식을 공개하고 연재를 이어가 보겠다.
다음 편 예고
주유소에서 보통사람보다 2배 시간을 낭비하는 남자.
너무 꼼꼼해서 아내를 질리게 하는 남자.
사주에 정재가 있는 좁쌀영감.
그런 남편과 같이 사느라 숨 막혀하는 아내.
다음 연재 글에서 만나요.
독자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특히 편집자 여러분 눈길 좀 주세요.
편집자님이 최고라고 말해줄 때까지 고고씽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