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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지유 Jan 09. 2021

그림으로 평가받는 학교생활, 그 안에는

쓸데없이 고퀄인 그들만의 파티

3년 동안의 학교생활의 모든 것을 글로 다 담기에는 어렵겠지만, 이전 글에 신입생으로서의 심정과 학교 과목들에 대해 적어봤으니 이번에는 학교 생활의 꽃, 미술학교의 파티 문화와 내 기억에 대해 써볼까 한다.


우선 우리 학교는 미술학교 치고 행사가 꽤 많은 편이었다. 매해 있는 신입생 환영회, 1년에 3번씩 있는 일주일간의 워크샵, 그리고 학생회 주체라 ("학생회"라는 딱딱한 이름보다는 그냥 학교와 학생문화를 즐기기 위해 지원자들이 꾸린 크루라고 하는 게 맞겠다)로 개최되는 soirée, 일명 파티가 많았다. 할 공부도 많고, 워크샵도 해야지, 파티도 가야지. 은근히 할 게 많은 학교였다. 필자처럼 집에 틀어박혀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낯선 문화였지만, 돌이켜보면 그 때처럼 해맑게 놀아본 건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일 듯하다.


우선, 신입생 환영회. 명색이 미술학교라고 학생회가 주체인 모든 파티는 테마와 함께하는 코스츔 파티였다. 내가 신입생이던 해의 테마는 "beau-frère". 직역하자면 이복형제, 시동생 등 가족을 가리키는 의미이지만 숨겨진 뜻은 흔히 말하는 백수. 후줄근한 옷에 안 씻고 집에서 tv나 하루종일 보는 그런 이미지로 이해했다.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지는 여전히 불명) 그래서 난 뭘 입었느냐, 내 옷장에서 최대한 큰 오버사이즈 티셔츠에 역시 통 넓은 남방, 그리고 통 넓은 바지를 입고 수상한 디자인의 운동화를 매치해서 갔었다.

그 해의 신입생 환영회는 상당히 특이했는데, 1학년에서 2학년까지 모조리 섞은 다음 세 그룹으로 나눠서, 학교에서 집합한 후 3학년들이 지정한 장소로 출발한다. (지정된 장소 = 3학년 학생회 선배들의 집) 거기서 같은 그룹 사람들과 좀 놀고 있으면 몇시간 후 다음 집으로 이동한다. 그런 식으로 세 집을 돌고 나면 적당히 다같이 친해져 있을 거다, 뭐 이런 논리였다. 솔직히 여기까지는 팩트이고, 기억에 남아 있는 건 거의 없다. 확실히 기억나는 것 하나는, 파티임에도 나처럼 모든 게 낯설고 붕 떠 있는 사람들 투성이라는 것. 호기심에 맥주를 마셔봤다가 맛없어서 관둘까 하다가 결국 두병 정도 마셨다는 것. (내 첫 음주의 기억이다) 뭐, 사실상 내게 신입생 환영회는 소용이 없었다는 얘기다.


본격적으로 재미있어지기 시작한 건 사실 2학년 때부터였다. 1학년 때 다같이 고생하고 과제 돌려보던 친구들끼리 똘똘 뭉쳐 (그렇지 않아도 소수인데) 다같이 2학년으로 진급을 했다. (물론, 안타깝게 유급한 동기들도 있었다) 무사히 진급하니 마음이 편했다. 신입생 때와 달리 과목도 좀 줄고, 교수들은 우리를 좀 느슨하게 풀어주는 듯했다. 물론 이게 나중에 가서는 어마어마한 결과로 돌아오기는 했으나, 당장은 숨 좀 쉬고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2학년으로 편입을 온 뉴페이스들까지 등장하며 나와 내 친구들로 이루어진 우리 그룹은 탄탄해졌다. 이 때가 내 미술학교 재학시절의 꽃이었는데, 친구들과도 재미있었지만 학생회 멤버들이 바로 우리 윗학년 선배들로 세대교체가 되어 좀더 학교문화가 즐거워진 것도 한몫했다.


새 학년이 시작되고 어김없이 찾아온 신입생 환영회. 이 때의 테마와 코스츔들은 꽤나 볼만했다. 3학년들이 학교를 돌아다니며 신입생들과 2학년, 3학년을 모두 돌면서 랜덤으로 제비뽑기를 시켰다. 내가 뽑은 인물대로 입고 나오면 되는 것이었다. 여기서 재밌는 것은, 모든 컨셉은 "커플제"였다. 예를 들어 "케네디"를 뽑으면 "재클린 케네디", "타잔"이 있으면 "제인"이 있었다. 해서 파티 당일날, 코스츔을 보고 나의 "파트너"를 찾으면 된다는 컨셉이었다. 내 그 당시 컨셉은 프랑스의 고 쉬락 전  대통령의 영부인 베르나데트 쉬락 (Bernadette Chirac). 어떻게 입어야 하냐는 내 질문에 친구들은 "부자 할머니처럼 입으라"고 충고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옷장을 뒤져 검은 원피스와 블레이저와 모자, 싸구려 가짜 진주 목걸이와 하얀 가발을 쓰고 나갔다. 동기들은 어땠냐고? "제인" (타잔의 애인인 그 제인)을 뽑은 내 친구는 금발머리를 가리는 갈색 가발을 사고, 갖고 있는 모든 호피/얼룩말 무늬 옷을 다 동원해 입었다. 다들 코스츔에 진심이었다.


그리고 어디 신입생 환영회 뿐인가. 매해 돌아오는 할로윈, 가끔씩 그냥 하던 파티까지. 매번 테마는 다양했고 스케일은 커졌으며 코스츔도 다양해져갔다. 3학년 시절, 미국 고등학교의 Prom 문화를 따와서 우리도 그런 무도회? 같은 걸 했었다. 스튜디오같은 포토 존과 카메라맨까지 고용해서. 테마는 딱히 없었지만 그 날따라 수많은 명장면이 탄생했으며, 그 날 찍은 사진들은 모두 인화되어 모든 학생들에게 배포되었다.


유독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면 2012년, 2학년 할로윈 때였던가. 늘 그렇듯 코스츔을 입고서 다들 학교의 메인 홀에 모여 있는데 벽에 빔 프로젝터를 쏘면서 유튜브에 B급 뮤직비디오 메들리를 틀고 있었다. 국적 장르 가리지 않고 다양한 노래들이 나오면서 다같이 떼창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익숙한 얼굴이 튀어나왔다. 바로 싸이의 강남스타일! (이 날 파티에 참여한 유일한 한국인이 나였다는 사실에 아직도 놀라는 중) 그렇게 다같이 머나먼 프랑스의 지방 도시 한구석에서, 한국이 어딘지도 모르는 프랑스인들 (+한국인 1인) 60여명이 가까이 뮤직비디오를 보며 말춤을 췄다는...그런 초현실적인 일이 있었다.


이렇듯 나의 유학생활은 학업과 행정, 자취의 고생스러움과 스트레스로 가득했지만 이런 학교 문화와 동기들 덕분에 살 만한 것이 되었다. 돌아보면, 충분히 즐겁고 보람찼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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