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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여름 Jun 27. 2022

꾸준히 넘어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

 글을 잘쓰는 건 어려운 일이다. 여태 만난 저자들은 글을 못쓰는데 잘쓴다고 착각을 하거나, 글을 못쓰지만 겸손한 사람들, 이렇게 두 종류였다. 애석하게도 그중에서 글을 잘쓰는 사람은 드물었다. 심지어 잘쓴 글을 보고 데려온 저자조차도 글재주는 없었다.  내가 본 잘쓴 글은, 아마 다른 출판사의 편집자가 고혈을 짜서 수정한 결과물일 것이다. 글을 쓰는 저자도 힘들었겠지만, 이것을 시장에 팔기 위해 어떻게든 괜찮아 보이는 무언가로 만들어야 하는 편집자의 노고가 느껴져 새삼 슬퍼진다.

 이렇게 고칠 것이 많은 슬픈 원고를 받는 건, 내가 기획한 분야의 특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정보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설득력 있게 정리하는 글은 누가 집필하더라도 쉽게 쓰기 어려운 법이니까. 게다가 진짜 어려운 건 따로 있다. 바로 내 머릿속의 기획을 저자에게 이해시키는 과정이다. 구구절절 기획을 설명해도 어긋난 방향의 원고가 들어오면 내가 어디서부터 잘못 설명한 건지 고민하게 된다.




 누더기 원고를 받은 날은 일이 단순해지고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오늘도 종일 피드백을 할 각오로, 우선 원고를 전체적으로 훑어보면서 피드백에 얼마나 시간을 써야 하는지 가늠해 본다.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는 수준이면 다행이다. 대부분은 피드백 하나에 며칠씩 걸린다. 하루 종일 원고만 붙잡고 있을 수 없으니 그럴 수밖에. 하지만 기다리는 저자 입장에서는 조급할 것이다.

 원고 하나 피드백 하는 게 그렇게 어렵나? 직접 글 쓰는 게 훨씬 어렵지, 라는 말을 어느 저자에게 들은 적이 있다. 창작의 고통은 당연히 짐작할 수 없지만, 다른 사람의 글을 기존 톤을 유지하면서 제대로 된 방향으로 수정하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알아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저자를 컨택한 후에는 끝없이 후회하지 않으려고 다짐하는 시간이 이어진다. 이렇게 글 쓰는 아이디어가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면, 마감 일정을 안 지키는 사람인 줄 알았다면, 거짓말인 게 티 나는 변명을 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면 섭외하지 않았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면 끝도 없다. 그 생각의 마지막은 늘 '괜히 편집자가 됐다. 나도 작가나 할 걸.'로 귀결되고 만다. 이런 생각은 조금 위험하고, 또 나를 더 슬프게 만든다.

 글을 쓸 소재가 있었으면 진작 작가가 되었을 것이다. 글을 잘쓰지 못해도, 설사 마감을 어기더라도 제때 마무리 짓는 뒷심이 있어도 작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글을 못쓰는 작가를 만나더라도 섣불리 그를 원망할 수 없다. 그는 분명 나보다 나은 인내심과 지구력이이 있었기 때문에 작가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편집자가 원고를 너무 많이 고쳤다고 원망하는 작가가 있는 반면, 피드백을 반영하기 힘으니 편집자가 마음대로 원고를 다 고쳐 주기를 바라는 작가도 있다. 후자는 거의 대리 집필을 원하는 것과 같다. 나는 성향상 전자가 차라리 함께 작업하기에는 수월했다. 너무 많이 고치는 걸 싫어하면, 작가의 입맛에 맞게만 책을 만들게 된다. 대중의 취향이 어떻고, 요즘 트랜드가 어떻고 하는 말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

 대신, 영 매출이 나오지 않을 것 같을 때는 미리 위로할 말을 생각해 둔다. 이번에만 쓰고 절필할 것이 아니라면, 꼭 베스트셀러를 만든다기보다 꾸준히 길게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백 번 빨간펜을 치는 것보다 한 번 마음을 다독여 주는 게 공생하는 길이다.




꾸준히 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꽃을 피울 수 있다. 남들이 씨앗을 심자마자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고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열정과 재능의 괴리를 노력으로 메울 수 있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노력은 금방 바닥이 난다. 그렇다고 성공을 못 하면 실패한 인생인 것도 아니다.

 그래서 원고를 보다가 슬퍼지면 욕심을 부리게 된다. 기왕 슬퍼진 김에, 이 감정을 남김없이 짜내서 원고에 눌러담고 싶다. 열정에 비해 재능이 모자랄 땐, 꾸준히 넘어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저자도 나도 단기간에 온힘을 다했다가 금방 지쳐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넘어지더라도 꾸준히 매일 한 걸음씩 내딛는 욕심을 한 번 더 부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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