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이 되면 이 소설이 생각납니다. 광주의 평범한 시민들에게 새긴 상처의 깊이를 이처럼 파고들어 느끼게 만들 수 있을까. 너무 생생해 섬뜩한 묘사들.
고통스럽지만 외면하지 않고
한번쯤은 광주의 고통을 들여다봅니다.
한국 현대사 최악의 국가폭력으로 기록될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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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광주에 대한 한국 소설의 가장 기념비적인 응답’이라고 감히 평가합니다. 한강의 장편 소설 ‘소년이 온다’ 이야기입니다. 시에 김준태의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가 있다면 소설에선 이 작품입니다.
소설은 5월 광주의 열흘을 15살 ‘동호’의 눈으로 그리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국가폭력의 잔혹함은 215페이지 내내 생생합니다. 상무관을 가득 채운 시신들이 내뿜는 시취는 초를 태워도 소용이 없습니다. 총탄에 대검에 상한 시신들은 바로 그 상처에서부터 썩어 들어갑니다. ‘정대’의 영혼은 계엄군의 총격으로 터져나간 제 옆구리에 구더기가 스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눈물마저 ‘뜨거운 고름’처럼 흐릅니다. 수건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같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소년이 걸어오는 소리. 자궁 끝까지 수십 번 후벼 들어오는 나무 자까지. 한강은 모든 감각을 뒤흔듭니다. 어떤 필름보다 선명합니다.
하지만 한강은 참상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본질을 명확히 합니다. ‘왜 마치 나라가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유족들은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가’ 동호가 묻자 은숙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 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그들은 반란이고 우리가 나라’라는 선언입니다. 광주는 정당했다는 웅변입니다.
작가는 80년 광주 이후, 독재 정권의 노조 탄압을 문화 예술에 대한 폭력적인 검열을 그려냅니다. 나아가 숱한 전쟁과 학살로 시야를 확장합니다.
“베트남전에 파견됐던 어느 한국군 소대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들은 시골 마을회관에 여자들과 아이들, 노인들을 모아놓고 모두 불태워 죽였다지요. 그런 일들을 전시에 행한 뒤 포상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 중 일부가 그 기억을 지니고 우리들을 죽이러 온 겁니다. 제주도에서, 관동과 난징에서, 보스니아에서, 모든 신대륙에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유전자에 새겨진 듯 동일한 잔인성으로.”
5.18이 대한민국의 작은 도시에서 벌어진 비극에 그치지 않고 어떤 보편성을 획득하는 순간입니다.
그렇다고 등장 인물들을 투철한 혁명가로 그리지는 않습니다. 대부분 어쩌다 휩쓸린 오합지졸들이었습니다.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죽음을 피하고 싶었다.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에 둔감해졌다고 생각했지만, 그래서 더 두려웠다.” 구속된 어린 시민군은 ‘사이다하고 같이 카스테라가 먹고 싶다’며 웁니다.
‘살아남은 자의 고통’에 시달리는 진수는 훗날 동료 시민군을 만나 중얼거립니다. “우리는 총을 들었지, 그렇지? 그게 우릴 지켜줄 줄 알았지. 하지만 우린 그걸 쏘지도 못했어.”
물론 가족들은 더더욱 민주 투사는 아닙니다. 그해 겨울, 입시에 실패하고 집에 틀어박힌 은숙에게 어머니는 말합니다.
“그냥 눈 딱 감고 살아주면 안 되겄냐. 내가 힘들어서 그런다. 그냥 다 잊어불고 남들같이 대학 가서 네 밥벌이 네가 하고, 좋은 사람 만나 살고……. 그렇게 내 짐을 덜어주면 안 되겄냐.”
전형적인 캐릭터로 포획되지 않은 덕분에, 더욱 평범하게 실재하는 이웃 같은 느낌을 줍니다. 면면히 내려오는 인간의 잔혹한 본성,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존엄성, 그 보편적인 가치로 사유를 밀고 나아갑니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는 절절한 노래가 잦아들고, 40년 만에 탈상을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끝나지 않은 5월을 생각합니다.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총탄에 부서지고 대검에 찢긴 무수한 사람들은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 그렇게 했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한강은 15살 소년 정대의 영혼을 빌어 묻습니다.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Written By KI(VIEW CURA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