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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 Jul 28. 2021

세상에서 가장 와일드하게 꼿꼿이 웃는 사람

정해주


1. 친구 정해주(가명)


정해주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활짝 웃고, 가장 꼿꼿하게 웃는 사람이다. 해주가 눈썹을 꼿꼿이 세우고 눈을 다 접은 채 깔깔대는 걸 보고만 있어도 그냥 웃음이 나고 마음은 차분해진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해주를 자율학습실에서 처음 만났던 순간을, ‘첫눈에 반했다’고 기억한다. 그만큼 해주는 그냥 처음부터 좋아지는 사람이었다. 해주를 소개시켜줬던 친구 주영이가 ‘해주 싫어하는 사람 없을 걸?’ 하고 말했을 때, 당연히 그럴거라 덥석 납득했을만큼. 물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주의 세상이 점점 더 복잡다단해지면서 해주를 싫어하는 사람과 해주가 싫어하는 사람은 점점 늘어갔지만, 해주랑 주영이랑은 셋이 금방 친해져서 그 후로 십 년을 붙어다녔다. 해주영은 내가 21세기를 살아내는 힘이기도 하고, <이런 세상에서 아직 사랑스러운 것들>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 해주영이 각각 이 연작의 시작과 끝이 될 것이다.


 해주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얼굴이 가장 작은데, 그 작은 바탕에 오밀조밀 들어간 눈코입과 그만큼 조그만 손바닥, 그리고 그와 반비례하게 와일드한 심장은 주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다. 그 작은 얼굴로 정해주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활짝 웃고, 가장 꼿꼿하게 웃는다. 해주가 눈썹을 꼿꼿이 세우고 눈을 다 접은 채 깔깔대는 걸 보고만 있어도 그냥 웃음이 나고 마음은 차분해진다. 어린아이 같고, 힘 있는 웃음이다. 네가 뭐라고 해도 나는 웃겠어 하는 듯한, 말릴 수 없는 웃음. 그렇지만 불쾌한 농담에는 한 올의 웃음도 주지 않을 것 같은.


 해주는 나와 취업 준비를 함께 했다. 해주의 와일드한 심장과 불온하고 예민한 감성은 가부장적이고 억압적인 환경을 특유의 꼿꼿한 태도로 탈주하거나 밴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하고 어리석은 파티를 기획하며 더 반짝이게 노는 것엔 걸맞았지만, 취준엔 적합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주가 한국의 기업이 담아내기 어려운 엄청난 인재라거나 자기소개서의 밋밋한 언어가 해주의 특별함을 살려내지 못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고, 취준은 뭐랄까, 해주가 아니라도 누구에게나 잘 맞지 않는 일이었다. 학생을 회사원으로 뜯어맞추는 일은 대학 내내 그것만을 위해 달려온 사람에게도 어색하고 힘겨웠으니까.

 해주가 한강에 앉아 "난 이제 내가 루저라고 느껴져" 하고 말했을 때, 난 29번째 서류에서 탈락하던 날보다도 마음이 아팠다. 저렇게 빛나고 예쁜 내 친구가 루저라니. 그때 우리가 각자의 고통 속에 끊임없이 의심했던 것은, 충분히 불온하지 않았던 탈주는 아무 결과도 보여주지 못하는 패배의 예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줄곧 ‘난 다르게 살거야’ 하고 금 그어 왔던 삶의 모습과 태도가 넘실 경계선을 넘어와 어느덧 목끝까지 차는 걸 호흡으로 느끼며. 우리의 부모와 언니와 선배와 동료들도 그런 방식을 선택한 적이 없고, 삶은 우리에게 선택의 기회를 제공한 적이 없고, 다만 넘실대는 파도에 휩쓸리는 것에 가까웠음을 아스라이 공감하며. 이제 내가 되어갈 것은 무엇일까 두려우면서도, 어서 그것이 되길 간절히 바라며. 그리고 비록 나는 그러지 못할지라도, 누구보다 꼿꼿하고 반짝이는 내 친구만큼은 모두와 다른 삶을 살길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을 숨기며.

 

 그렇지만 지겨운 몇 년간의 취준이 끝나고, 취준의 끝은 취업뿐이라는 말처럼 우리 모두는 어쨌거나 취업에 성공했다. 해주도 나보다 2년 늦게, 회사원이 되었다. 회사원이 되었다고 인생이 멈추는 건 아니라서, 우리에겐 또 그만큼의 나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성희롱을 당하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종종 나타난 것도 그 중 하나였다. 그때마다 나는 열심히 들어주었고, 열심히 편들어주었지만, 선뜻 ‘신고해’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신고를 한다는 건 어렵게 입사한 우리에게 있어 최후의 수단을 의미했다. 내 친구들은 계속해서 참았고, 참은 일들은 차츰 지나갔다.

 그렇게 다른 누구도 아닌 해주가 내게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이미 그건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사건이 지나감으로써 해결됨을 가장하길 기다리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생각나질 않았다. 그것이 마음에 어떤 종류의 흔적을 남기는 일인지 알면서도 그랬다. 당장 그 회사로 달려가 가장 폭력적인 방식으로 해주가 당한 일들을 앙갚음 하고싶다는 마음에 손끝이 떨리면서도, 속으로는 버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해주는, 나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 중 하나였는데.

 정해주는 꼿꼿한 사람이다. 해주는 참았지만 결국엔 나쁜 일이 자기를 나쁘게 만드는 것을 더는 견딜 수 없다고 판단했고, 몇 달 뒤 팀장을 신고했다. 그 일을 전하며 사실은 결과에 대한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그러나 스스로가 무기력해지는 것이 싫다고 했다. 며칠 뒤에 해주와 팀원들은 팀내 성희롱을 비롯한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조직문화에 대한 사과를 받았다. 더이상 팀장은 해주를 성희롱하지 못한다. 그리고 해주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 가능성을 끝내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주의 성격이 겁이 없고 화끈하거나 차갑고 냉철한 것은 아니다. 해주는 아무런 걱정도 없는 사람처럼 명쾌하게 웃지만, 아무도 무너뜨릴 수 없는 사람처럼 씩씩하게 웃지만, 그만큼이나 얼굴 전체를 구기면서 우와앙하고 울어버린다. 해주가 그렇게 우는 걸 본 것은 내게 아픈 일이 찾아왔을 때였다. 울먹이며 조금씩 새어나오던 내 울음은 해주의 폭탄이 터진 듯한 울음 아래 묻혀 다소 어안이 벙벙한 채로 잦아들었다. 얘는 웃는 것만 그런 게 아니라 울 때도 와일드하구나. 어쩌면 그게 해주가 중요한 순간에 단단한 비결인걸까.

 내가 겪은 일에 자기가 아파 우는 그 얼굴을 가끔 떠올린다. 나는 이 자매들의 손을 잡고 21세기를 나아가고 있다는 걸 감각한다.


 내게 고등학생 시기는 이유없이 심란한 시절이었는데,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학교가 있던 언덕길을 걸어나와 버스를 타러가던 어둑한 하굣길은 매번 그 심란함을 배가시키던 것으로 기억한다. 초여름의 향긋하면서도 서늘한 밤공기를 맡으며, 나는 이대로 대학생이 되는걸까 곱씹으며, 무엇 때문에 마음이 어지럽고 아플까 되짚으며, 열기가 남은 아스팔트를 타박타박 걷고 있을 때, 버스 정류장에 서있던 해주를 봤다.

 교복치마 아래 납작한 운동화를 신고 머리를 하나로 묶은, 지금은 사라진 가지런한 앞머리를 한 해주. 검은 가방에 상어와 해마 열쇠고리 따위를 달고 손목엔 목적없는 형광 고리를 차고 있는, 분명히 좋은 음악이 나오고 있을 흰 유선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가만히 까만 도로를 향한 해주의 옆얼굴을 보았을 때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놓였다. 그 정적인 해주의 옆모습과 그 아래 뛰고 있을 와일드한 심장을 상상하면서, 마음이 놓임과 동시에 약간 울고 싶은 기분이 되어, "해주!" 하고 불렀다.

나를 돌아보던 해주의 웃는 얼굴. 늘 그렇듯 양 눈썹을 꼿꼿이 세우고 눈을 다 접으며 꼬마처럼 온 얼굴을 다 구겨서 웃는, 정해주의 가지런하고 개구진 표정이 지금도 선명한 건, 그때 예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이 얼굴을 보며 계속 웃게 될 것이고, 그게 내 스산하고 소란한 마음을 지금처럼 가라앉혀줄 거라는. 그때의 예감은 지금까지 들어맞아, 정해주는 내 곁의 가장 철없고 단단한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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