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자 Jun 29. 2023

소실로 완성되는 책상의 역사

작은 이야기 1

서른이 되기 전까지 내가 가졌던 책상은 부모님 댁 내 방 모퉁이에 놓여있는 체리색 학생용 책상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또는 그조차 이전에 샀던 것으로 기억하는 그 책상의 숨겨진 면 가장자리에는 내가 초등학교 때 좋아하던 아이의 이름이 낙서되어 있었고 상판에는 책상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두꺼운 유리 덮개가 덮여 있었다. 부모님 집에서 독립하던 26살까지 그 책상에 앉아 글을 썼다. 독립한 후에는 4년 가까이 수원의 6.2평짜리 원룸에서 지냈기 때문에 책상이랄 게 없었다. 큰 좌식 탁자는 몇 번의 손님 초대 후에 곧바로 불어난 책들을 쌓아두는 창고가 되었고, 나중에 마련한 가로 세로 20cm의 입식 탁자는 노트북 하나를 간신히 올려둘 수 있는 크기였다.

원룸살이에 질려 입사 만 4년 만인 21년 11월, 수도권의 구축 아파트로 옮겨오면서 내 두 번째 책상이 생겼다. 이사를 하며 침실에 들어올 물건 중 가장 먼저 침대를 골랐고, 가장 고심해서 책장을 골랐으며, 가장 마지막으로 책상을 골랐다. 모든 가구들이 더는 학생의 느낌을 갖지 않길 바랐기 때문에, 책장과 책상을 고르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고른 단순한 생김새의 책상은 상판은 나무, 다리는 철제로 되어있고 상판의 테두리가 밝은 갈색인 것 외에는 모두 검은색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느낌으로 지금 나의 침대 옆 한구석에 놓여있다. 그 위에는 차례차례 구입한 조명, 모니터, 정리함 같은 것들이 올라와 있고 늘 책장에 꽂히지 못한 책들이 위태롭게 쌓여있다. 코로나 시절 재택근무를 하면서나, 유튜브 편집과 글쓰기로 시간을 보낼 때면 식탁 외에 책상을 따로 산 게 얼마나 잘한 일이었는가 자꾸만 새로 깨달아 내내 뿌듯했다.

내 손으로 고르고, 주문하고, 조립한 그 책상이 아주 단순한 형태와 디자인을 하고 있으며 구석에 빌트인 된 멀티탭 외에 별다른 수납도 없어 가뿐한 것과 다르게, 부모님 댁의 체리색 책상은 전형적인 수납 많은 학생용 책상 세트였다. 벽면에는 책장이 기대어 있고, 맞은편에는 서랍장 겸 컴퓨터 책상(예전에는 책상 세트 한편의 서랍장을 컴퓨터 책상으로 썼다. 서랍장의 맨 위칸에는 키보드를 넣고 슬라이딩 형태로 빼서 쓸 수 있는 선반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세로로 긴 수납장이 있어 길고 커다란 컴퓨터 본체를 넣었다. 마지막으로 서랍장 위에 모니터를 올려놓으면 그게 책상 옆에 붙은 별도의 컴퓨터 책상이었다)이 있었으며, 그 책장의 선반 하나와 다른 쪽 끝의 서랍장 위에 상판을 얹어 책상이 되는 식이었다. 그렇게 책장과 서랍장까지 하나의 세트다 보니 그 안에는 온갖 자질구레한 초중고 심지어 대학시절의 추억과 잡동사니가 대량 거주하고 있었다. 몇 번의 이사와, 대청소와, 본격적인 시험 기간 중 방정리까지 피해 살아남은 강력한 추억들.

얼마 전 부모님이 오래 살아온 집을 정리하고 이사를 결정하시면서 나는 그 이십 년 넘게 묵은 (대충 초등학교 입학 전후로 샀다고 쳐도) 책상과 격렬한 전투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주말에 시간을 빼 비장한 마음으로 마스크를 쓰고 달려들어 장장 하루하고 반나절 정도의 시간을 쏟아부은 끝에 달성한 쾌거는, 텅 빈 여러 칸의 서랍과 책꽂이들 그리고 역시 비워진 책상 위와 발아래 공간이었다. 남겨진 것은 파란 이삿짐 박스 하나만큼 또다시 살아남은 추억들(지독하다)과 노끈에 묶여 나의 아파트로 옮겨가길 기다리는 책 더미들. 나의 학창 시절은 그렇게 몇 권의 노트와 일기장, 졸업장과 졸업사진,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받은 편지들로 추려졌다.

정리하는 내내 나도 모르게 “추억이 짐이다 추억이 짐이야”하고 중얼거렸다. 엄두가 안 날 만큼 먼지 쌓인 물건이 많았고, 그냥 막 버리자면 간단하겠지만 하나하나 살펴보며 이걸 보관할 가치가 있을지, 버리는 게 나을지, 버린다면 어떻게 분리하거나 처리해서 버려야 할지, 보관한다면 부모님 댁에 둘지 우리 집에 가져올지 판단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게다가 과거의 흔적들은 원치 않는 감상에 젖게 하거나 잊고 싶은 덜 익은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법. 과거가 짐스럽고, 추억은 짐이고, 다 버리고 오늘만 살자 오늘만 하면서 종일 일하고 나니 책을 제외하고 남은 건 어이없게 간소화되어 박스 하나만큼이었다.

그러고 보면 역사와 추억이란 건 디지털화되기 전에도 그다지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았던 것 같다. 디지털 데이터는 축적되지만 아날로그 기록은 소실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난 삼십여 년의 시간은 잃어버리고 선별되어 하나의 박스로 남았다. 추억이란 건 그 짐스러운 과정을 견디고 견뎌 짐을 덜어내려는 노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도 소실되지 않고 살아남은 한 줌. 어쩌면 오히려 잃어버린 것들의 기록이다.

체리색 책상은 부모님의 이사와 함께 대형폐기물 딱지를 붙이고 버려질 예정이다. 아빠는 ‘너희가 집에 오면 필요할지도 모르고’ 하면서 책상 세트를 그대로 끌고 가고 싶어 했으나, 또는 ‘아직 쓸만한데’ 하면서 당근마켓에 무료 나눔이라도 하고 싶어 했으나 모두 말렸다. 어떤 것은 버림으로써 완성되기 때문이다. 물론 내 기준 그 책상이 더 이상 남주기는 물론이요 갖고 가기에 전혀 마땅치 않다는 점은 차치하고(사랑해 아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