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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미래 전략

핵, AI, 중국 속 생존의 길

by 드라이트리

한반도의 근현대사는 늘 거대한 격랑 속에서 흔들려왔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스스로의 힘을 지니지 못한 채 강대국들의 전쟁터가 되었고, 냉전기에는 미·소 대립의 최전선으로 놓였다. 소련 붕괴 이후에는 미국 단극체제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었지만, 동시에 북한의 핵 개발이라는 새로운 불안을 떠안았다.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러시아의 재부상, 나토의 확장, 우크라이나 전쟁, 드론과 AI의 전장 혁신, 그리고 중국의 기술 패권 도전이 이어지며, 한반도는 다시금 세계 질서의 균열선 위에 서 있다. 역사의 궤적은 분명하다. 한반도는 결코 세계 질서의 주변부가 아니었으며, 늘 힘의 경계선이었다.


미래 전략을 고민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여전히 핵이다. 북한의 핵무기는 단순한 군사적 수단을 넘어 체제 생존의 보증수표로 작동한다. 비핵화 협상은 반복적으로 시도되었으나 근본적 진전은 없었다. 핵은 북한에게 있어 협상의 카드이자 억지력이며, 동시에 국제정치에서 유일하게 체제를 존속시킬 수 있는 무기다. 한국 역시 이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한미동맹의 확장억제 공약은 강화되고 있지만, 한국 내에서는 독자적 핵무장론도 끊임없이 제기된다. 핵을 둘러싼 선택은 한반도의 안보와 외교, 심지어는 국내 정치까지 규정하는 변수가 되고 있다.


그러나 21세기의 미래를 규정하는 또 다른 축은 AI다. 인공지능은 더 이상 단순한 산업기술이 아니라 국가 경쟁의 본질이다. 미국과 중국은 이미 AI 패권 경쟁을 ‘신냉전’의 핵심 전장으로 삼고 있다. 군사·경제·사회 전반에서 AI는 압도적 차이를 만드는 도구이며, 특히 군사 영역에서는 드론, 자율 무기, 사이버전, 우주 영역까지 확장되었다. 한국이 세계적 반도체 강국으로서 AI 생태계에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은 크지만, 동시에 미국의 동맹망과 중국 시장 의존 사이에서 전략적 딜레마를 피할 수 없다. 한국이 AI를 단순히 산업 경쟁력의 문제로만 다룬다면, 미·중 경쟁의 변방으로 밀려날 위험이 크다.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변수는 중국의 부상이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에서 기술 패권 경쟁자로 변모했다. AI, 반도체, 5G, 신에너지차, 배터리 등 전략 산업에서 미국과 정면 승부를 벌이고 있으며, 군사력과 외교력까지 결합해 새로운 대국 질서를 모색하고 있다. 한국에게 중국은 최대 교역국이자 불가피한 경제 파트너이지만, 동시에 안보적 위협과 압박의 원천이기도 하다. 사드 배치 사태에서 확인했듯, 한국은 미국 동맹과 중국 경제 사이의 선택을 강요받는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다.


이처럼 핵, AI, 중국이라는 세 가지 축은 한반도의 미래 전략을 결정하는 거대한 변수가 된다. 한국은 이 앞에서 세 가지 길을 놓고 고민할 수밖에 없다. 첫째, 미국 중심 동맹을 강화하며 확실한 편승 전략을 택하는 길. 둘째, 중국과의 협력과 균형을 모색하며 양쪽의 충돌을 완화하는 줄타기 외교. 셋째, 독자적 기술 역량과 안보 체계를 강화해 자주적 생존 전략을 구축하는 길. 각각의 길은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품고 있다. 어느 길을 선택하든 한국은 세계 질서의 변방이 아니라, 여전히 힘의 경계선 위에서 생존을 모색해야 한다.


결국 핵심은 단순히 ‘어느 편에 설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주체적으로 미래를 설계할 것인가가 진정한 질문이다. 핵 문제를 단순한 위협 관리가 아니라 전략적 억지와 협상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가, AI를 산업 기술이 아닌 국가안보와 경제전략의 축으로 삼을 수 있는가, 중국의 부상을 위협이자 동시에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야말로 한반도의 21세기를 규정하게 될 것이다.


역사는 한반도에 반복해서 같은 교훈을 던져왔다. 힘 없는 국가는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역사는 늘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한반도가 제국주의 시대의 희생양이었고, 냉전의 최전선이었으며, 지금은 미·중 AI 패권 경쟁의 경계선이라면, 미래는 다를 수도 있다. 주체적 전략과 기술 역량, 그리고 유연한 외교가 결합될 때, 한반도는 더 이상 세계 질서의 말이 아니라 주체로 설 수 있다.


“우리는 단순히 생존할 것인가, 아니면 미래를 설계할 것인가?”

이 물음은 한반도의 내일을 향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다. 핵과 AI, 그리고 중국이라는 도전을 넘어설 수 있는 전략적 상상력, 그것이야말로 한국이 세계 질서 속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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