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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부상

경제 대국에서 기술 패권으로

by 드라이트리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중국은 세계의 변방에 가까웠습니다. 1970년대 말만 하더라도 1인당 GDP는 개발도상국 평균에도 못 미쳤고, 수억의 인민은 절대적 빈곤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한 세대 만에 중국은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고, 이제는 단순한 제조업 중심 국가를 넘어 기술과 안보를 결합한 21세기형 패권 경쟁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전환은 단순한 경제 성장이 아니라, 세계 질서의 균형을 흔드는 구조적 변화였습니다.


개혁개방과 ‘세계의 공장’


1978년 덩샤오핑은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내세우며 개혁개방을 단행했습니다. 이념보다 실리를 우선시하는 정책은 중국 사회에 거대한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국영기업 중심의 계획경제는 점차 시장경제 요소를 받아들였고, 외국 자본과 기술을 흡수하면서 광대한 인구를 바탕으로 세계 제조업의 중심지로 변모했습니다. “세계의 공장”이라는 별명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실제로 전 세계 공급망의 핵심 고리가 되었음을 의미했습니다.


2001년 중국의 WTO 가입은 이러한 흐름을 제도적으로 완성했습니다. 중국은 값싼 노동력과 저렴한 생산비를 무기로 세계의 투자와 수출을 끌어들였고, 도시들은 공장과 항만, 도로와 철도로 가득 차며 세계 시장을 향해 열렸습니다. 30여 년 동안 두 자릿수에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한 중국은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축적하며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단순한 ‘공장 국가’로 머무를 생각이 없었습니다.


대국굴기(大國崛起) ― 경제에서 기술로


2000년대 후반부터 중국 지도부는 ‘대국굴기’라는 담론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경제 성장의 지속이 아니라, 종합국력의 상승을 의미하는 개념이었습니다. 중국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사력, 외교력, 그리고 무엇보다 기술력을 집중적으로 강화했습니다.


시진핑 집권 이후 이러한 기조는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중국몽(中國夢)”이라는 구호 아래 중국은 21세기 중반까지 미국을 능가하는 초강대국으로 성장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핵심 정책이 바로 중국제조 2025와 군민융합 전략이었습니다. 중국제조 2025는 반도체, 로봇, 항공, 신에너지차, AI 등 10대 전략산업을 집중 육성하는 계획이었으며, 군민융합 전략은 민간 첨단기술을 군사력과 결합하여 국가안보의 무기로 전환하는 정책이었습니다.


AI·반도체·5G ― 기술 패권의 3축


중국이 선택한 기술 패권 전략의 핵심 축은 AI, 반도체, 그리고 5G였습니다.


AI 분야에서 중국은 이미 세계적인 경쟁자로 부상했습니다.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화웨이 같은 거대 IT 기업들은 막대한 자본과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공지능 연구를 가속화했습니다. 중국 정부는 AI를 ‘새로운 산업혁명의 엔진’으로 규정하고, 2030년까지 세계 AI 선도국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AI 인재 육성, 데이터 개방, 군사적 활용까지 국가 차원의 총동원령이 내려진 셈이었습니다.


반도체는 중국의 가장 큰 취약점이자 동시에 전략적 도전 과제였습니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반도체 수요국이지만, 첨단 반도체 생산 기술에서는 여전히 미국·한국·대만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중국은 국가 반도체 펀드를 조성하고 SMIC, YMTC 같은 기업에 막대한 투자를 쏟아부었습니다. 미국의 수출 통제와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자국 내 공급망을 강화하며 기술 자립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5G 분야에서 중국은 한발 앞섰습니다. 화웨이는 전 세계 5G 네트워크 구축의 핵심 기업으로 부상했으며, 이는 곧 서방 국가들의 안보 우려를 자극했습니다.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화웨이 장비를 배제할 것을 요구했고, 이는 미·중 간 기술 패권 경쟁이 단순한 상업적 경쟁을 넘어 국가안보 문제로 확산되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군사력과 기술의 결합


중국의 부상은 경제와 기술을 넘어 곧바로 군사력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중국군은 ‘스마트 전쟁(智能化戰爭)’이라는 개념을 내세우며 AI·드론·사이버전·우주기술을 통합하는 새로운 전쟁 방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남중국해 인공섬 건설,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 항공모함 전력 확충은 모두 단순한 군사적 도발이 아니라, 기술과 안보의 결합 전략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특히 드론과 AI는 중국 군사 전략의 핵심 무기입니다. 드론 전쟁이 우크라이나에서 입증된 이후, 중국은 군집 드론·AI 자율 전투 시스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이는 한반도와 대만해협 같은 분쟁 가능 지역에서 미국과의 경쟁을 뒷받침할 핵심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미국과의 충돌 ― 기술 냉전


중국의 부상은 필연적으로 미국과의 정면 충돌을 불러왔습니다. 미국은 중국을 단순한 ‘무역 경쟁자’가 아니라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시작된 무역전쟁은 곧바로 반도체·AI·5G를 둘러싼 기술전쟁으로 비화했습니다. 미국은 반도체 장비·소프트웨어 수출을 통제했고, 화웨이·SMIC 같은 기업에 제재를 가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국들과 함께 ‘반도체 동맹’을 결성하며 중국을 견제했습니다. 유럽, 일본, 한국, 대만이 모두 이 경쟁의 한 축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는 단순한 양국 간 갈등이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는 신냉전의 양상으로 발전했습니다.


한반도에 드리운 그림자


중국의 부상은 한국에게는 기회이자 위협입니다. 경제적으로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지만, 안보적으로는 미국 동맹에 의존하는 구조적 모순이 존재합니다. 사드(THAAD) 배치 때 중국의 경제 보복이 보여주었듯, 한국은 미·중 전략 경쟁의 최전선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반도체·배터리·AI 같은 첨단 산업에서 한국과 중국은 협력자이자 경쟁자입니다. 한국이 미국의 공급망 전략에 동참할 경우, 중국 시장을 잃을 위험이 있습니다. 반대로 중국과 협력을 강화하면, 미국의 불신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 딜레마는 한국 외교와 산업 전략의 가장 어려운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결론 ― 기술 패권 시대의 중국


중국의 부상은 단순한 경제 성장 스토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기술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패권 질서의 등장이며,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21세기 국제정치의 본질을 규정하는 구도가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한반도는 냉전의 기억을 간직한 채, 다시금 ‘힘의 경계선’에 서 있습니다. 중국이 경제 대국에서 기술 패권국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한국에게 다시 묻습니다.


“우리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생존을 위한 줄타기인가, 아니면 주체적 전략의 구축인가?”


이 질문은 단순히 외교의 기술이 아니라, 한반도의 미래를 결정짓는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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