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패러다임의 변화
20세기 전쟁은 하늘을 지배하는 자가 전장을 지배한다는 명제를 보여주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투기, 한국전쟁의 공중 폭격, 걸프전의 정밀유도폭탄까지, 공군력은 전쟁의 승패를 좌우했습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 드론(무인항공기, UAV)은 하늘의 주인이 바뀌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더 이상 하늘은 값비싼 전투기와 숙련된 조종사만의 영역이 아니라, 값싸고 작으며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새로운 무기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드론은 사실 새로운 무기가 아닙니다. 제1차 세계대전 시기에도 원격 조종 비행체가 실험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폭격용 무인기 프로젝트가 추진되었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인 무기 체계로 자리 잡은 것은 1990년대 이후입니다. 걸프전에서 미국은 정찰용 드론 ‘프레데터’를 투입했고, 이는 곧 무장 드론으로 발전했습니다.
21세기 초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서 드론은 ‘테러와의 전쟁’의 상징이었습니다. 조종사는 미국 네바다 사막의 기지에서 조이스틱을 잡고,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파키스탄 산악지대의 목표물을 정밀 타격할 수 있었습니다. 드론은 전쟁의 비용 구조와 윤리적 논쟁을 동시에 바꾸어놓았습니다.
드론이 전장의 ‘주연’으로 떠오른 결정적 순간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었습니다. 터키제 바이락타르 TB2, 상업용 드론을 개조한 자폭기, 이란제 샤헤드 드론이 하늘을 메우며, 전쟁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었습니다.
정찰의 혁명: 실시간 영상 송출로 포병의 정확도가 획기적으로 높아졌습니다.
가난한 자의 공군: 값싼 상업용 드론에 폭발물을 달아 수백만 달러짜리 전차를 무력화했습니다.
군집 전술: 수십 대 드론이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해 방공망을 압도하는 방식이 등장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하늘은 부자 국가의 전유물’이라는 기존의 전제를 깨뜨렸습니다. 이제 전쟁은 누가 더 많은 드론과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운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드론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플랫폼입니다. 여기에 인공지능, 빅데이터, 통신 기술이 결합하면서 전쟁의 양상은 더욱 혁신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AI 타겟팅: 드론은 영상인식 AI로 스스로 목표물을 식별할 수 있습니다.
5G/위성 네트워크: 실시간 데이터 전송으로 지휘-타격 체계가 통합됩니다.
소프트웨어 전쟁: 드론을 무력화하는 전자전·해킹 기술 역시 새로운 전장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드론은 더 이상 단독 무기가 아니라, 네트워크 중심 전쟁(Network Centric Warfare)의 핵심 노드가 되었습니다.
드론 전쟁은 새로운 윤리적·법적 논쟁을 불러왔습니다. 조종사가 안전한 공간에서 버튼을 누르는 전쟁은 ‘비인간적’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민간인 피해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AI가 목표를 스스로 결정하는 ‘킬러 로봇’ 시대가 다가오면서, 전쟁의 책임과 통제 문제는 인류 전체의 과제가 되었습니다.
한반도는 이 새로운 전쟁 패러다임의 시험장이 될 수 있습니다. 북한은 이미 소형 드론을 서울 상공에 침투시켰고, 군집 드론 개발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만약 북한이 드론과 사이버전을 결합한다면, 수도권의 전력망·통신망·교통망은 단시간에 마비될 수 있습니다.
한국 역시 드론 전력 확보에 나서고 있습니다. 정찰·타격·방공용 드론을 개발 중이며, 군집 드론 훈련도 확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전투기·미사일 위주의 ‘고비용 체계’에 비해, 드론·AI 기반 비대칭 전력 대비는 미흡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드론은 단순한 무기의 변화를 넘어, 전쟁의 철학과 전략을 바꾸고 있습니다. 더 이상 전쟁은 ‘누가 더 큰 무기를 가지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더 빠르게 혁신적 기술을 결합하는가’의 문제입니다.
한국은 기술 강국으로서 드론·AI·반도체·통신망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국가안보 전략과 결합하는 데는 더 큰 상상력과 과감함이 필요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보여주었듯, 미래의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하늘을 지배하는 자가 전장을 지배한다”는 명제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 하늘을 나는 것은 전투기가 아니라, 수천 대의 드론입니다. 한국은 이 변화를 따라잡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